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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갈등의 시대, 헬싱키의 역할을 생각하다

[핀란드] 중간자의 땅

등록 2023.09.19 08:04수정 2023.09.19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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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을 떠나는 날, 이번에는 바닷가로 향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거대한 배가 눈에 들어옵니다. 제가 오늘 탈 배였습니다. 옅은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항구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큰 배를 타고 하룻밤, 저녁에 출발한 배는 아침이면 헬싱키에 도착합니다. 배는 정시에 출발해, 예정 시간보다 10분도 늦지 않게 헬싱키에 닿았습니다. 승선과 하선도 전혀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하룻밤을 편히 보내고 새로운 도시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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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로 향하는 배 ⓒ Widerstand


그렇게 쉽게 도착한 도시라서일까요, 저는 헬싱키가 스톡홀름과 비슷한 모습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모두 북유럽 국가들이니까요. 실제로 그간 지나친 북유럽의 여러 도시들이 서로 비슷한 모습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제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스톡홀름은 복잡한 구조나, 오래된 건물에서부터 그 역사성을 느낄 수 있는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헬싱키에는 현대적인 건축물이 훨씬 많이 보였습니다. 트램을 타고 도착한 시내에서부터, 제가 새로운 나라에 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같은 북유럽 국가라고 말하지만, 핀란드는 역사적으로도 많은 점에서 달랐으니까요.

당장 핀란드어가 그렇습니다. 스웨덴어나 노르웨이어, 덴마크어는 모두 게르만어파에 속합니다. 더 동쪽의 러시아어는 슬라브어파에 속하죠. 하지만 핀란드어는 아예 인도-유럽어족에 속하지 않는 언어입니다. 우랄어족에 속해서, 에스토니아어나 헝가리어 정도가 그나마 유사한 언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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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국기 ⓒ Widerstand


주변 국가와 이질적이었던 핀란드 지역을 처음 장악한 것은 스웨덴이었습니다. 핀란드에서는 주로 화전 농업이 이루어졌고, 때문에 12세기까지 중앙집권적인 국가가 형성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스웨덴은 '북방 십자군'이라는 군대를 꾸려 핀란드를 침공합니다.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위한 십자군이 아니라, 북방의 '이교도'를 정복해 기독교를 퍼뜨리겠다는 목표였죠. 스웨덴은 점차 동방으로 영토를 확장했고, 핀란드라는 '이민족'의 땅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스웨덴이 여러 정치적 격동을 겪는 동안에서 핀란드는 스웨덴의 영토였습니다. 스웨덴의 왕위 계승 전쟁이 벌어지고, 칼마르 연합이 탄생하고 붕괴할 때까지도 그랬습니다. 지금의 헬싱키를 건설한 것도, 칼마르 연합에서 스웨덴을 독립시킨 구스타프 1세의 지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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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펜스키 성당 ⓒ Widerstand

 
하지만 곧 핀란드를 노리는 다른 세력이 나타났습니다. 동쪽에서 성장하고 있던 러시아였죠. 스웨덴과 러시아는 북유럽의 패권자 지위를 두고 다툼을 계속했습니다. 둘 사이에 위치한 핀란드는 전쟁터가 될 수밖에 없었죠.


1700년부터 21년 동안 이어진 대북방전쟁의 결과 스웨덴은 패배했습니다. 러시아가 북유럽의 새로운 패권자가 되었죠. 핀란드는 스웨덴의 영토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도 몇 차례의 전쟁이 이어졌죠. 결국 1809년 나폴레옹 전쟁 과정에서 핀란드는 러시아의 땅으로 편입됩니다.

수 차례 전쟁에서 핀란드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핀란드인들은 스웨덴과 러시아 사이에서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 민족적 상황에 대해 자각하기 시작합니다. 중간자의 위치에 놓인 핀란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심했죠. 독립과 자치를 위한 목소리도 힘을 얻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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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 대성당 ⓒ Widerstand


러시아 제국은 1917년 2월 혁명으로 무너졌습니다. 핀란드도 독립을 선언했죠. 러시아 안에서는 핀란드의 독립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곧 내전에 빠져들었습니다. 소비에트 러시아는 핀란드 문제에까지 힘을 쓸 수는 없었죠.

하지만 쉽게 얻어낸 독립은 그만큼의 혼란을 불러왔습니다. 핀란드 안에서는 국가 건설의 방향을 두고 좌파와 우파 사이 갈등이 격화되었습니다. 갈등은 곧 4개월 간의 짧은 내전으로 이어졌죠. 사회주의 국가를 원하는 좌파 세력은 물론 소비에트 러시아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우파 세력은 독일의 지원을 받았죠.

핀란드는 이제 독일과 소련 사이 중간자의 위치에 놓였습니다. 내전은 우파 세력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소련은 핀란드를 포기하지 않았죠. 결국 1939년 스탈린은 핀란드를 침공하는 '겨울 전쟁'을 벌였습니다. 소련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핀란드를 장악하는 데 성공합니다.

핀란드 정부는 영토를 회복하기 위한 전쟁을 이어갔죠. 이 과정에서 핀란드 정부는 독일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물론 나치 독일입니다. 하지만 스탈린과 히틀러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했던 상황은, 어쩌면 핀란드가 역사 내내 겪어왔던 아이러니이기도 했습니다.

핀란드는 1944년 소련과 정전협정을 체결합니다. 그렇게 핀란드라는 국토를 지켜냈죠. 이후 핀란드는 독일과의 동맹을 파기하고 독일과 전투를 벌였습니다. 핀란드는 마지막까지 어느 쪽의 편에도 영원히 설 수 없는 중간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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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국방부 앞 겨울전쟁 추모비 ⓒ Widerstand


2차대전 이후 냉전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핀란드는 분명 자유세계에 속했지만, 국경을 접한 소련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핀란드는 미국의 유럽 지원 계획인 마셜 플랜에도 포함되지 않았고, NATO나 EC에도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핀란드는 소련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이번에는 미국과 소련 사이의 중간자였던 셈입니다. 한때는 자유세계에 속하면서도 공산권과 직접 적대하지 않는 모습을 빗대 '핀란드화'라는 용어까지 등장했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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쳄펠리아우키온 교회 ⓒ Widerstand


하지만 핀란드의 이런 중간자적 위치가 단순한 보신주의였던 것은 아닙니다. 핀란드는 언제나 강대국 사이에 선 중간자였지만, 그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내는 국가이기도 했습니다.

1975년 헬싱키에서는 유럽안보협력회의가 열렸습니다. 미국과 소련을 포함해 35개국이 참여한 대규모 회의였죠. 동서유럽의 각국도 이념에 관계 없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각국은 서로의 동등한 주권을 인정하고, 영토의 불가침을 선언했습니다. 모든 인간의 평등과 기본적인 인권을 존중한다는 조항도 포함되었죠.

이 '헬싱키 협정'이 공산권의 몰락과 냉전 해체에 중요한 촉매였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소련에서는 이 협정에 명시된 기본적 인권 보장을 이행하라며 "모스크바 헬싱키 그룹"이라는 시민단체가 만들어졌고, 소련의 인권 문제를 폭로하기 시작했죠.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 운동을 상징하는 '77헌장' 역시 헬싱키 협정의 이행을 촉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헬싱키 협정은 어쩌면 언제나 중간자의 위치에 서 있던 핀란드였기에 만들어낼 수 있는 성과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각지에서 일어난 민주화와 인권을 위한 목소리였습니다. 그리고 20년이 채 지나지 않아 냉전과 이념 갈등의 시대는 끝을 맺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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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 시립도서관 ⓒ Widerstand


새로운 냉전의 시대가 돌아오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주변국을 무력으로 침공했습니다. 중국과 미국은 외교 현장에서 수없이 격돌하고 있습니다. 핀란드는 다시 중간자의 위치에 놓이게 될지도 모릅니다.

최근 핀란드는 NATO에 가입했습니다. 러시아는 올해 초 '모스크바 헬싱키 그룹'의 강제 해산을 명령했습니다. 갈등의 시대는 다시 돌아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핀란드는 언제나 그 사이에서 길을 찾아냈습니다. '핀란드화'라는 표현은 때로 그 중간자적 위치에 대한 비난이 담긴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핀란드는 갈등의 시대에도 그 사이에서 언제나 독립과 발전의 길을 찾아냈습니다.

새로운 갈등의 시대, 헬싱키의 새로운 역할을 생각합니다. 어느새 추워진 헬싱키의 저녁 거리를 걸으며, 이 거리 어딘가에 우리의 미래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덧붙이는 글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CHwiderstand.com)>에 동시 게재됩니다.
#세계일주 #세계여행 #핀란드 #헬싱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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