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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윤석열 너네 일자리부터 내놔" 대한민국 최초로 점거농성

[인터뷰] '동료지원가 예산삭감 항의' 발달장애인 문석영·소형민·남태준씨 "우린 실적이 아니다"

등록 2023.09.21 10:27수정 2023.09.21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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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발달장애인 문석영·남태준·소형민 피플퍼스트 활동가(왼쪽부터)가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인근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발달장애인 문석영·남태준·소형민 피플퍼스트 활동가(왼쪽부터)가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인근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소중한

 
"중증장애인 일자리(동료지원가) 예산을 다 깎아버리면 우리는 옷도 못 입고, 차도 못 타고, 집도 못 사잖아요." (소형민)
"발달장애인을 실적으로만 보지 말고 우리가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주세요." (문석영)


지난 18일 발달장애인 당사자 단체 '피플퍼스트' 활동가 20여 명이 서울 중구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 로비를 기습 점거했다. 이날의 발달장애인 점거 농성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이었다.

동료지원가 사업으로 알려진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사업'은 중증장애인이 다른 장애인의 취업 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2019년 고용노동부가 신설한 것으로, 현재 전국에서 187명의 중증장애인이 동료지원가로 일하고 있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중증장애인은 올해 기준 1인당 실수령액 75만 원을 받으며 월 60시간 동안 일한다. 하지만 올해 23억 원으로 책정된 동료지원가 예산은 내년도 전액 삭감돼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활동가들은 경찰이 포위하자 로비 한가운데 동그렇게 누워 서로의 팔을 꽉 붙잡았다. 삭감된 예산 23억 원을 복구하라고 요구하며 이들은 100분을 버텼다. 
 
a  18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 로비에서 발달장애인 당사자단체 '피플퍼스트' 활동가 등이 동료지원가 사업 예산 삭감과 관련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의 면담을 요구하던 중 경찰 연행이 시작되자 동그랗게 누워 버티고 있다.

18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 로비에서 발달장애인 당사자단체 '피플퍼스트' 활동가 등이 동료지원가 사업 예산 삭감과 관련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의 면담을 요구하던 중 경찰 연행이 시작되자 동그랗게 누워 버티고 있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결국 경찰에 줄줄이 연행됐지만, 이들은 석방 후 이틀 만에 다시 거리로 나섰다. 20일 오후 장애인 노동정책 규탄결의대회에 참석해 "발달장애인 일자리 돌려달라", "남의 일자리 뺏지마", "나는 동료지원가로 계속 일한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었다.

바닥에 누워 서로의 팔을 붙들었던 피플퍼스트 서울센터·성북센터 동료지원가 문석영(32)·소형민(27)·남태준(24)씨를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한국장애인개발원) 인근 카페에서 인터뷰했다.

"이야기조차 듣지 않은 경찰, 무턱대고 무시했다"
 
a  발달장애인 문석영 피플퍼스트 활동가가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인근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발달장애인 문석영 피플퍼스트 활동가가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인근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소중한

 
"고용노동부가 잡혀가야지 발달장애인들이 잡혀가는 게 맞나요. 하늘도 참 무심하지... 동료지원가 예산을 되살리려고 오늘 또 나왔어요. 정부는 실적이 안 좋다는데, 우리 진짜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피플퍼스트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실적이 부진하고 다른 사업과 중복된다는 이유로 내년도 동료지원가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세 사람이 들고 나온 팻말엔 알록달록한 글씨로 "우리 일자리가 만만하냐", "발달장애인 얘기를 들으라", "이정식·추경호· 윤석열·오세훈 너네 일자리부터 내놔라"라고 적혀 있었다. 모두 이들이 직접 만든 팻말이다.


이달 초 동료지원가 사업이 없어진다는 소식을 들은 문석영씨는 동료들과 함께 점거 농성에 참여했다. 그가 일하는 피플퍼스트 서울센터에는 5명의 발달장애인이 동료지원가로 일하고 있다. 문씨는 경찰들이 들이닥쳐 동료들을 강하게 진압하는 모습을 보고 두려움과 답답함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경찰들이 우리를 무턱대고 무시하는 느낌이었어요. 우리 말도 안 들어주고, 이야기도 안 들어주고, 그냥 시위하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았어요."
 
a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폐지 규탄 전국 결의대회'가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 앞에서 열렸다.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폐지 규탄 전국 결의대회'가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 앞에서 열렸다. ⓒ 소중한


발달장애와 시각장애가 있는 문씨는 태어난 지 넉 달 만에 시설에 들어가 25년을 살았다. 날짜와 기간도 정확히 기억한다.


"1992년 11월 7일부터 2017년 5월 15일까지 시설에서 살다 나왔어요. 그러다가 피플퍼스트 서울센터에서 일하면서 발달장애인 동료들을 만난 거죠."

문씨는 발달장애인 동료들의 일자리를 지키고 싶다. 지금도 스스로 "괴로워하는 동료들을 공감해주고 상담해주는 진정한 동료지원가가 되고 싶다"고 되새긴다. 문씨는 옆에 앉은 동료 소씨를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기존의 장애인복지 일자리랑 다르게 동료지원가 사업은 영원해야 해요(웃음).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호흡을 맞춰야 오래 일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우리는 동료지원가로 일하면서 혼자가 아니라 하나가 될 수 있었어요. 예산을 깎으려는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동료지원가, 일터이자 기회"
 
a  발달장애인 소형민 피플퍼스트 활동가가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인근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발달장애인 소형민 피플퍼스트 활동가가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인근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소중한


소형민씨는 문씨와 같은 센터에서 역시 동료지원가로 일하고 있다. 그는 1년 전 이맘 때 삭발을 했다. 그때도 동료지원가 예산을 삭감하려는 윤석열 정부에 항의하며 대통령실이 있는 삼각지역 승강장에서 머리를 밀었다. 그리고 준비해 온 발언문을 읽어 내려갔다.

"최저시급도 안 주고, 일자리도 빼앗아 가면 장애인이 이 세상에서 살기가 너무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예산을 세우고 지원을 해줘야 하는데 왜 이것마저도 빼앗아 갑니까."

소씨는 지난 18일 연행될 각오를 하고 새벽부터 일어나 점거 농성에 나섰다. 경찰들이 농성 중인 발달장애인 동료들을 포위하자, 그는 "무서움보다 치욕스러움"을 느꼈다. 오전 9시께 연행된 소씨는 그날 오후 6시가 넘어 성북경찰서에서 석방됐다.

"동료지원가 예산을 지켜달라는 우리를 현행범으로 체포했어요. 범죄자로 취급하는 말들, 저한테 비수를 꽂는 말들을 했어요. 기분이 안 좋았어요."

소씨에게 동료지원가 사업은 '관계'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같은 장애 유형의 동료라도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고, 다툼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러면서 더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는 "장애인이 일을 못한다고 무시하니까, 장애인을 우습게 보는 것 같았어요. 동료지원가 예산이 정말 잘리면 다시 항의하러 갈 거예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제게 동료지원가는 일터이자 '베스트 프렌드'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우리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이 많아져야 해요."

"장애인 노동 비하 멈춰라"
 
a  발달장애인 남태준 피플퍼스트 활동가가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인근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발달장애인 남태준 피플퍼스트 활동가가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인근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소중한

 
남태준씨는 피플퍼스트 성북센터에서 일한다. 남씨를 포함한 3명의 발달장애인이 그곳에서 동료지원가로 활동한다. 남씨은 장애인 권익옹호 활동을 비롯해 동료상담을 위해 필요한 자료를 만드는 일을 한다. 센터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페이지에 게시글을 올리고 관리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남씨 역시 이번 동료지원가 예산 전액 삭감으로 일자리를 잃을 처지에 내몰렸다. 남씨는 18일 점거 농성 현장에서 가까스로 연행을 피했다. 경찰은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로비로 들이닥쳤다. 그는 "잠깐 화장실에 있었는데 밖에서 동료들이 끌려가는 소리가 들려서 기분이 진짜 안 좋았어요"라며 눈살을 찌푸렸다.

남씨는 지난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지하철 타기 400일차를 맞아 국회의사당역을 다녀왔다. 그날은 피플퍼스트 활동가들이 발언자로 참여하는 '피플데이(pepole day)'였다. 남씨는 직접 만든 팻말을 들어 보이며 "장애인 노동 비하를 멈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료지원가 사업이 발달장애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묻자, 남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동료지원가 사업이 계속 유지되면, 동료지원가가 늘어나고, 우리와 같은 동료지원가가 장애인 동료들의 취업 연계를 계속 해줄 수 있어요. 정부와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가 동료지원가 예산을 폐기하는 걸 멈춰야 합니다."
 
a  발달장애인 문석영·소형민·남태준 피플퍼스트 활동가(왼쪽부터)가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인근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발달장애인 문석영·소형민·남태준 피플퍼스트 활동가(왼쪽부터)가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인근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소중한


세 사람은 오는 10월 서울에서 열리는 '한국피플퍼스트' 대회를 앞두고 있다. 이들은 앞으로도 자신을 위해, 서로를 위해, 동료지원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계속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1일 설명자료를 통해 "(예산이 사라지더라도) 동료지원가가 신속히 다른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나,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세 사람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이렇게 입을 모아 말했다.

"평생교육 선생님들도, 동료 상담 선생님들도, 자조 모임 참여자들도 모두 동료지원가 일자리에 만족하고 있어요. 이번 일을 계기로 사람들이 발달장애인과 우리의 노동을 많이 알아주면 좋겠어요. 동료지원가 예산 삭감 절대 금지!"
 
a  발달장애인 문석영·남태준·소형민 피플퍼스트 활동가(왼쪽부터)가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인근 카페에서 <오마이뉴스>를 만나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발달장애인 문석영·남태준·소형민 피플퍼스트 활동가(왼쪽부터)가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인근 카페에서 <오마이뉴스>를 만나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소중한

 
피플퍼스트(people first)는 발달장애인이 주축이 되어 스스로 활동하는 조직과 운동을 뜻한다. 1974년 미국 오리건주 발달장애인 대회에서 한 참가자가 '나는 먼저 사람으로 알려지길 원한다(I wanna be known to people first)'라고 말한 데서 유래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 처음 문을 열었다. 서울에는 현재 피플퍼스트 서울센터, 성북센터, 광진센터가 있다.

피플퍼스트 활동가들은 각 지역에 있는 센터에서 동료지원가로 일하고 있다. 이들은 상담, 정보 제공, 자조 모임 등을 통해 장애인 동료가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 동료지원가 사업으로 알려진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사업' 예산이 내년에 전액 삭감되면, 이들은 일자리를 잃는다.
 
#발달장애인 #피플퍼스트 #점거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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