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어리 매운탕은 오두막 시절에도 자주 끓여먹던 메뉴다.
유신준
정을 나누는 데는 먹는 것을 나누는 만큼 중요한 게 없다. 내가 매운탕을 끓여서 할배와 나눠 먹을 때도 있다. 원래 내 음식솜씨는 허당중 상 허당인데 매운탕 재료가 싱싱하니까 여기서는 뭘 끓여도 맛있는 것 같다.
역시 음식맛은 재료가 중요하다. 문제는 매운맛이다. 매운 맛을 조절하지 않으면 이사람들 입도 대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매운탕이라 부를 수도 없는 국적불명 음식이 만들어진다. 매운맛을 줄이고 간만 맞춘 것이니 말하자면 맹탕 매운탕이다.
내 입맛에는 맹탕이지만 할배는 무척 좋아한다. 첫 번째 냄비는 이와시(정어리)였다. 정어리 매운탕은 오두막 시절에도 자주 끓여먹던 메뉴다. 무와 대파, 숙주나물만 있으면 된다. 원래는 콩나물을 넣어야 제 맛이겠으나 이곳에는 콩나물이란 게 없다.
정어리 한팩에 200엔. 홋카이도에서 생산된 단단한 무 한개 200엔. 숙주나물 35엔. 합계 435엔(한화 약 4350원)이면 매운탕 한 냄비가 뚝딱 완성된다. 싸고 맛있고 게다가 손쉬운 '한일 퓨전음식'이다.
레시피랄 것도 없다. 무 절반을 뚝 잘라 냄비에 적당히 깔고 그 위에 정어리를 올린다. 정어리는 내장을 제거하지 않아야 쌉싸름하게 제 맛이 난다. 그 위에 고추가루 다대기와 간마늘을 적당량 올려서 물을 붓고 한숨 끓인다.
정어리 감칠 맛이 무에 배어들게 하려는 것이다. 한숨 끓고 나면 숙주나물을 올리고 잠시 익힌 다음 대파를 썰어 넣고 불을 끄면 완성된다. 콩나물을 넣으면 맛이 더 좋아질 것 같은데 아쉽다.
정어리대신 방어를 넣어도 괜찮다. 방어회를 뜨고 난 머리와 뼈들은 팩에 넣어 판다. 듬뿍 넣어서 200엔 정도. 할배는 정어리보다 방어를 더 좋아한다. 이열치열. 삼복더위에 땀 흘리며 함께 먹는 맹탕 매운탕은 별미다. 내가 이렇게 음식을 잘 하는지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