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관해 최근에 들은 인상적인 표현은 '독자에게 제목은 집의 창문 같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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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말부터 '제목의 이해'를 쓰는 동안 제목에 대한 독자의 생각을 엿볼 기회가 더러 있었다(주로 댓글을 통해).
'제목은 (글의) 첫인상'이라든가, '책은 제목이 50%다'라든가. 가장 최근에 들은 인상적인 표현은 '독자에게 제목은 집의 창문 같다'는 말이었다. '그 뒤에 뭐가 있을까, 나랑 잘 맞는 공간일까 탐색하게 된다'면서. 그럴듯한 비유였다.
박연준 시인은 책 <쓰는 기분>에서 말한 바 있다. '유머와 메타포를 자주 사용하는 사람은 분명 매력적'이라고, '잘만 사용한다면 메타포는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다'면서. 그분은 알까. '제목은 집의 창문 같다'는 말로 단번에 나를 사로잡은 것을. 시인은 또 이렇게 덧붙였다.
메타포는 세상의 별명을 지어주는 일입니다. 대단한 능력이 필요한 일이 아닙니다. 놀이지요. 끝내주는 메타포를 찾아내 사용한 사람은 독점권이 생깁니다.
별명을 지어주는 일을 그저 말놀이가 아닌 '독점권'을 갖는 거라고 쓰다니.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된 그'만큼이나 근사한 표현이었다. 돌아보니 그동안 나도 썼다. '제목은 안테나'라고. 독자에게 수신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쓰는 것이기에. 또 '제목은 소통'이라고. 잘 뽑은 제목은 글쓴이와 독자 모두에게 공감을 사기 때문에. 여기에 별명을 하나 더 추가하고 싶다. '제목은 쇼윈도'라고.
쇼윈도가 어떤 곳인가. 디자이너가 공들여 만든 최신 디자인의 제품을 가장 먼저 소비자에게 선보이는 곳이다. 여기는 이런 옷이나 구두를 판매하는 곳이구나, 각인시키는 것과 동시에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번 입어볼까 혹은 신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 쇼윈도의 역할이다.
글의 제목도 그렇잖나. 나의 경우, 기자들이 공들여 쓴 글을 뉴스 가치에 따라 배치한다. 매장으로 치면 쇼윈도에 내놓을 제품을 선별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타깃 소비자에 따라 상품의 진열이 달라지듯, 타깃 독자에 따라 기사 선별을 다양하게 할 수도 있다.
쇼윈도가 손님의 마음을 움직여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처럼 제목은 독자의 마음을 움직여 본문에 조금이라도 체류하는 시간을 늘리고자 한다. 공유까지 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고. 10초 만에 이탈할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제목이 글을 '읽게는' 하는 거다. 그래서 내용만큼이나 제목이 중요하다고 하는 거겠지.
그 별명에 관심 있습니다
또 뭐가 없을까. 제목에 대한 여러가지 별명을 생각하던 중 열세 살 아이가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려도 되냐며 방으로 들어왔다. 기회를 놓칠세라 물었다.
"넌 제목이 뭐라고 생각하니?"
"말해주면 하게 해줄 거야?"
"(끄응) 그런 건 아닌데, 네 생각이 궁금해서... 제목에 별명을 지어준다면 뭐라고 하고 싶어?"
"글쎄 별명은 모르겠고... '제목은 관심'이지."
"(오!) 왜 그렇게 생각했어?"
"사람들이 제목을 보고 그 글에 대해 관심을 갖잖아. 그래서 '제목은 관심'이야... 이제 됐지? 나 아이패드 쓴다."
여운을 즐길 새도 없이 문 닫고 가버리는 아이의 뒤통수를 보며 생각한다. 세상에... 그 독점권 우리 집 어린이에게도 있었네. 물론 세상에 대고 '제목은 OOO'이라는 말의 독점권을 주장할 일이 딱히 있겠냐마는 독점권이 있는 자와 없는 자가 보는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는 조금 다를 것 같다.
일도 그런 게 있지 않나. 얼마 전 tvN 예능 <유퀴즈 온 더 블럭>에서 L타워 외벽을 청소하는 분들이 나와 이런 말을 하셨다.
"저희 부모님도 그러세요. 이런 거 말고 안전한 일 했으면 좋겠다고 그런 이야기 많이 하시는데, 이 L타워가 아무리 강한 바람이 불고 비를 하루 종일 맞아도 사람의 손을 타지 않으면 깨끗하지 않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랜드마크를 봤을 때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굉장히 자부심이 생깁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일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일은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의 말처럼 내 일은 '우리만 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생각하면, 그런 자부심이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견뎌볼 만할 것 같다.
여러분은 제목에 대해 어떤 별명을 지어주고 싶은가요? 그 별명에 제가 완전 '관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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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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