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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가 머리 내밀고 후투티와 수달이 노는 팔현습지

금호강 팔현습지 생태 모니터링... 이 살아있는 습지에 환경부가 '삽질'을?

등록 2023.09.30 10:49수정 2023.09.3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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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봉에서 바라본 팔현습지.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지난 28일 대구 금호강 팔현습지를 다시 찾았다. 모니터링을 위해 팔현습지를 다시 찾은 것이다. 이번 모니터링의 시작은 무제부 구간인 산지 절벽의 꼭대기 쪽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혹시나 담비를 다시 만나지 않을까 혹은 수리부엉이의 서식처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제봉의 꼭대기 쪽으로 길을 잡은 것이다.

호텔 인터불고를 지나 팔현마을에서부터 걸어서 야트막한 산인 제봉의 꼭대기 쪽으로 접근했다. 걸어서 접근할 수 있는 마지막까지 다다르니 깎아지른 하식애의 단면이 보이고 그 너머에 팔현습지가 보인다. 낭떠러지로 이어져 더는 내려갈 수 없다. 이 어딘가에 수리부엉이의 집이 있을 것이다. 절벽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 보고 싶었지만 장비가 없는지라 내려가는 것은 포기하고 옆으로 길을 잡아 절벽을 따라 아래로 계속 걸었다.

자라가 쑥 머리를 내밀고 후투티가 찾아오는 이곳 팔현습지

사람의 흔적이 없는 산인지라 제법 깊은 산의 향기가 났다. 이러니 이곳에 담비가 찾아오는 것일 터였다. 혹여나 담비가 다시 지나가지 않을지 매의 눈을 하고 내려다봤지만 담비는 나타나지 않았다.

접근 가능한 곳까지 제봉을 둘러보고 내려올 수밖에 없다. 제봉을 내려와 다시 건너편 방촌동 쪽으로 가서 금호강 제방을 통해서 팔현습지에 다시 들었다. 강촌햇살교를 넘어 팔현습지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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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습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팔현습지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오후 2시경 날은 너무 화창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가운데 하천숲으로 들었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다. 며칠 전 내린 비로 하천숲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습지의 모습을 보여줬다. 바닥이 빗물로 흥건히 젖은 촉촉한 습지대는 왕버들로 둘러싸여 한 폭의 그림을 선사해 주었다.

강가로 갔다. 강 수위가 아직 떨어지지 않아 세찬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직도 흙탕물이 완전히 가라앉지 않아서 탁수가 흘렀다. 강이 깊어 들어가 볼 수는 없고 가장자리에 서서 세차게 흘러가는 물줄기를 바라보았다.

그때 뭔가 머리를 쑥 내밀고 올라온다. 자라였다. 이 예민한 녀석이 어쩐 일인지 사람 앞으로 쑥 머리를 내민 것이다. 그 바람에 가까이서 자라를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그러나 인기척을 느낀 녀석은 이내 쏜살같이 다시 강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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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가 머리를 쑥 내밀고 올라오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그렇지만 강물 속으로 머리를 쑥 내민 자라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비록 법정보호종은 아니지만 수생태 건강성을 보여주는 지표로서 자라의 발견은 흥미로웠다. 이미 남생이와 붉은귀거북도 확인됐기 때문에 이들 거북이 3총사가 모두 이곳 팔현습지에서 목격된 것이다.


강 가장자리를 따라 하천숲의 하류로 내려갔다. 왕버들 가지가 넘어져 수변에 굵은 가지를 드리운 채 자라난 곳에 흥미로운 것이 보였다. 생선 가시가 삐죽삐죽 보이는 배설물로 바로 수달의 똥이다.

수달도 이 하천숲을 찾아 놀다가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왕버들 가지의 한가운데다가 똥을 싸지른 것이다. 배설물은 3곳에서 동시에 목격됐다. 이곳에서 수달이 활발히 놀다가 간 흔적으로 이곳이 바로 수달의 놀이터인 것을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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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수달의 배설물 이곳은 수달의 영역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수달의 배설물을 뒤로 하고 계속해서 강을 따라 내려갔다. 이번엔 저 앞에 반가운 새가 눈에 들어온다. 인디언 추장 머리를 한 새 후투티가 저 앞에서 그 긴 부리를 이용해 열심히 뭔가를 쪼아대고 있었다. 이윽고 애벌레 한 마리를 잡아 올려 맛있게 꿀꺽했다.

후투티는 비교적 경계가 예민하지 않은 녀석이어서 가까이서 녀석의 사냥 실력을 목격할 수 있었다. 독특한 외모의 소유자 후투티의 아름다움에 넋을 놓고 있다가 녀석이 날아가자 이번엔 왕버들숲으로 향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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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투티가 땅속에서 먹이를 하나 물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야생의 숨은 서식처 왕버들숲에 환경부가 삽질을? 

하천숲이 끝나는 지점에 제봉의 산지 절벽이 나타나고 환삼덩굴이 우점한 들판을 가로질러 왕버들숲으로 들었다. 한낮을 약간 비껴간 시간 왕버들숲은 조용했다. 혹시나 수리부엉이 유조가 눈을 껌뻑이며 조는 장면을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둘러봤지만 수리부엉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름드리 왕버들 바로 앞에 붉은 깃발과 노랑 깃발이 꽂혔다. 이곳이 공사구간임을 알리는 표식을 공사업체에서 해둔 것으로 보인다. 이 고요한 숲에 어울리지 않는 이 공사용 깃발을 뒤로 하고 아래로 내려가 미리 설치해 둔 무인 카메라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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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름다운 왕버들숲에 공사를 알리는 깃발이 꽃혔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무인카메라에 다양한 야생의 친구들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고라니 무리는 수시로 드나들고 삵과 너구리 그리고 수달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이 왕버들숲의 터줏대감들로 이 숲의 주인들이다. 담비와 수리부엉이 모습까지 담겼다면 더욱 완벽했겠지만 그래도 녀석들의 실체를 확인한 순간이다.

이처럼 이 왕버들숲은, 이 팔현습지는 야생의 영역으로 야생동물의 서식처이자 그들의 집인 것이다. 이들의 집 앞에 다릿발을 박고 그 위로 자전거도로 겸 보행 보도교를 설치하겠다는 것이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환경청의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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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현습지 수달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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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현습지 고라니 가족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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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현습지 너구리 ⓒ 정수근

 
낙동강유역환경청이 법정 보호종들이 여럿 사는 이들의 집이자 그들의 최후의 보루요 숨은 서식처인 이 중요하고 오래된 숲을 밀고 보도교를 놓겠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금호강 난개발 저지 대구경북공동대책위원회' 박호석 공동대표는 다음과 같이 낙동강유역환경청을 비판했다

"이곳을 아는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인간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은 이 산지 절벽 아래로까지 새로운 길을 내겠다는 것은 마지막 남은 야생의 영역마저 빼앗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어떻게 이런 일을 환경부가 자행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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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바벨탑과 같은 인공의 시설물을 이곳 멸종위기 야생의 숨은서식처에 환경부가 이런 삽질을 해도 되는 것인가?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개발이 가능한 곳이 있고 개발해서는 안 되는 곳이 있다. 이런 원칙이 지켜졌을 때 공존의 질서가 가능하다. 개발해서는 안 되는 곳까지 '삽질'을 해대면 공존의 질서는 망가지고 그곳엔 인간 탐욕의 결과물만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지키고 보전하는 부서인 환경부가 해야 할 것은 개발이 아니라 건강한 생태계의 보전일 것이다. 특히 야생의 최후 보루인 숨은 서식처를 망치면서까지 환경부가 '삽질'을 자행한다는 것은 상식 밖이다.

낙동강유역환경청은 지금이라도 스스로 결자해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금호강 공대위' 박호석 대표가 다시 나섰다.

"원래 이 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것이 환경부다운 길이다. 낙동강유역환경청의 결단을 시급히 요구한다."
덧붙이는 글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금호강 #팔현습지 #낙동강유역환경청 #환경부 #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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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깎이지 않아야 하고, 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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