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쩍 갈라진 예천 회룡포 탐방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주장] 수해복구 현장 직접 가보니, 폭 10m짜리인 구간도 있어... 문화재청의 적극 개입 필요해 보여

등록 2023.10.04 13:48수정 2023.10.04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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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복구공사를 한다면서 오솔길 산책로를 신작로 길을 만들어놓은 예천군.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지난 1일 회룡포를 다시 찾았다. 회룡포 안쪽의 물돌이마을인 회룡포마을 맞은편의 용포마을(제2뿅뿅다리 끝쪽)을 통해서 회룡포전망대로 이어지는 탐방로 구간 수해복구 사업 현장을 다시 정밀하게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지난달 16일 강 건너 회룡포마을에서부터 확인한 결과, 도저히 수해복구사업이라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산지가 훼손돼 있었기 때문에 그 실체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관련기사 : 예천군이 국가명승지 회룡포에서 벌인 일... 이게 맞습니까? https://omn.kr/25pot). 

며칠 전 적지 않은 비가 내리고 영주댐에서 많은 물을 방류한 탓인지 강물은 아직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세차게 강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난 장마기간 끊어진 제2뿅뿅다리도 여전히 복구돼 있지 않았다. 하지만 강을 건널 수는 있는 수위여서, 천천히 강을 가로질렀다. 

폭 1.5m 탐방로를 폭 10m 도로로 만들어버린 예천군

제2뿅뿅다리가 끝나는 곳부터 바로 공사판이었다. 사석들이 놓여 있었고 포크레인으로 땅을 긁어놓은 흔적이 역력했다. 큰 너럭바위를 끼고 강 옆으로 난 길의 폭은 3m 이상이었다. 그 입구부터 시작해서 마치 신작로처럼 길이 닦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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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로 초입부터 큰 너럭바위를 끼고 위태로운 길을 닦아놓았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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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을 자동차가 3대가 들어설 정도로 넓은 길을 내어놓았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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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자로 재니 폭이 10미터가 넘어갔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산지로 난 길을 이렇게 넓게 닦아도 되나 싶은 수준이었다. 암반지대를 지나니 갈수록 길은 넓어졌다. 가장 넓어 보이는 곳을 줄자로 쟀더니, 10m가 넘었다. 자동차가 폭이 3미터 정도니, 자동차 3대가 나란히 설 수 있는 정도의 넓이다.

'산지 벼랑에 이렇게 넓은 길을 내도 되는 걸까? 이것이 수해복구사업이라고?'라는 물음표들이 내 머릿속에 쏟아졌다. 지난 오마이뉴스 보도 당시 예천군 문화관광과 담당자는 "나무들이 많이 쓰러져 그것을 치우기 위해 장비를 동원해 수해복구사업을 벌인 것"이라 해명했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해 보였다.

2017년 예천군은 문화재청의 승인을 받아 옛 용포마을 주민들이 이용하던 산지벼랑의 좁은 오솔길을 관광객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탐방로로 재정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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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용포마을 사람들은 대략 폭 50~70cm 정도의 오솔길을 이용해왔다. 이 길을 2017년 예천군이 폭 1.5m 정도의 탐방로로 정비했고, 이번 수해복구공사를 핑계로 평균 4m 이상 되는 신작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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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당시 산책로 정비사업 설계도. 당시 산책로 폭은 1.5미터로 되어 있다.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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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이 보내온 2017년 당시 문제의 탐방로 설계 자료에 보면 노면정비로 폭 1.5미터라고 분명히 표기돼 있다. ⓒ 예천군

     
정의당 이은주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당시 정비사업의 설계도를 보면, 해당 탐방로 폭은 1.5m다. 그것이 최근 최대 10m까지 넓혀진 것이다. 아무리 수해복구라지만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그 '정비된 길'이란 것도 불안해 보였다. 포크레인으로 닦아놓은 길 중엔 균열이 가 절반 정도가 쪼개져 있는 곳도 있었다. 이어진 600여m의 길은 평균 폭이 4~5m 정도는 됐다. 이건 탐방로라 할 수 없다. 차량이 드나드는 임도를 닦아놓은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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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를 건설해놓은 곳에서 산지 쪽이 무너져내렸다. 지난 장맛비로 산사태가 난 것으로 보이는 장면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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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 쪽이 무너져내렸다. 그려면서 나무들이 쓰려졌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길을 절반 정도 지나자 나무들이 쓰러진 이유를 알 수 있는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길의 왼쪽 사면이 무너져 있었다. 즉 산지쪽에서부터 침식이 일어나 산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거기 있던 나무들이 쓰러진 것이다. 길 아래쪽도 마찬가지였다. 오른쪽 하천쪽으로도 길이 무너지면서 나무들이 쓰러진 것이다.

탐방로에서부터 침식 일어나 지난 장마기간 수해피해 난 것

지난 장마기간 집중호우로 이 탐방로 일대에서 산사태와 가까운 산지 침식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장마기간 예천 등지의 산사태가 임도를 따라 일어난 것처럼 이곳도 2017년 정비해둔 길 쪽에서부터 산사태에 가까운 침식이 일어난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산지 사면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었다.

즉 좁은 오솔길을 넓혀 무리한 탐방로 사업을 벌인 결과, 지난 장마기간 이 일대가 무너지면서 나무들이 쓰러졌고, 불어난 강물이 이를 휘감으면서 탐방로를 가로지르면서 나무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이번에 정비한다면서 중장비를 동원해 넓은 신작로 수준의 길을 내어버린 것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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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난 길을 따라 왼쪽 산지가 무너지면서 나무들이 마구 쓰려져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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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신작로 길처럼 새로 정비한 길도 금이 가 위태로원 보인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인재(人災)로 보인다. 이 탐방로를 만들면서 산을 건드리지 않았다면 이런 수해가 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 증거로 탐방로가 닦이지 않은 곳을 보면 된다. 그곳은 멀쩡했기 때문이다. 회룡산을 바라봤을 때, 탐방로 사업을 벌인 왼쪽은 산이 무너져 내렸고, 오른쪽은 멀쩡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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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를 벌인 곳(왼쪽)은 산의 속살이 드러날 정도로 산지가 훼손됐지만, 애초에 하천을 따라 산책길을 만들지 않은 반대편(오른쪽)은 멀쩡하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이은주 의원실은 국가 문화재를 관리하는 문화재청에 해당 사업에 대한 입장을 물었고, 문화재청은 추석 직전 다음과 같은 해명을 보내왔다.

"해당공사는 지난 7월에 발생한 수해피해 복구를 위해 예천군에서 시행한 공사로 문화재보호법 제35조 및 시행령 제21조의3에서 정한 경미한 현상변경 행위에 해당합니다. 문화재 지정구역과 그 외곽인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내 행하여지는 경미한 현상변경 행위는 상기 법령에 따라 지자체 허가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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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미한 현상변경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길이 넓어 마치 신작로를 보는 듯하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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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 1.5미터 산책로를 차량이 다닐 수 있을 정도의 신작로로 만들어버렸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즉 해당 사업 구간은 문화재 구간 외곽의 역사문화환경 보전지역으로, 경미한 현상변경 행위라 지자체인 예천군이 셀프 허가를 내 스스로 벌인 복구사업이란 설명인 것이다. 그런데 현장에서 확인해보니, '경미한 현상변경'이란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수준이어서 의아함이 들었다. 

문화재청이 적극 개입해 원형에 가깝게 복원해야

지난달 22일 필자는 문화재청 담당자에게 이에 대해 질문했고, 그는 "지자체 소관으로 예천군이 벌인 일로 현장에서 보니 과도한 부분이 있어 보인다"라며 "정비를 하고 훼손 현장 복구할 때 관여해 이전 모습대로 복원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폭 3~10미터에 이르는 길로 정비를 해놓으면 이전 모습으로 되돌리긴 어려울 것이다. 다시 집중호우가 내리면 또다시 이 일대는 수해가 날 확률이 굉장히 높다. 따라서 길 폐쇄와 같은 극단적인 조처도 고려한 종합적인 진단이 필요해 보인다. 아무래도 과거 용포마을 주민들이 이용하던 수준의 좁은 오솔길로 복원하지 않는 이상 안심하긴 어려울 듯하다. 

이 일대는 문화재청이 관리하는 국가 명승지이다. 국가 명승지 회룡포가 보기에도 흉물스럽게 훼손되고 있다. 문화재청의 특단의 관리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덧붙이는 글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회룡포 #예천군 #문화재청 #수해복구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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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깎이지 않아야 하고, 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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