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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투병 후 숨진 아내, 가습기살균제 기업 꼭 처벌"

[현장] 피해자·유족·시민단체, SK그룹 앞 항소심 유죄 촉구 기자회견... 탄원서 서명 캠페인도

등록 2023.10.04 14:27수정 2023.10.04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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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및 시민사회단체가 4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SK그룹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사건으로 기소된 피고인들의 항소심 유죄 선고를 촉구했다. 이들은 이날 법복을 입고 CMIT·MIT 성분을 함유한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세 기업의 이름이 적힌 가면을 쓴 활동가들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 복건우


"제 아내는 애경이 만들고 이마트가 PB상품으로 판매한 가습기살균제의 피해자입니다. 13년 투병 끝에 2020년 8월 10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CMIT·MIT 성분으로 제조된 가습기살균제로 많은 사람이 죽고 지금도 투병 중인데, 이걸 만들고 판매한 기업들은 아직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법의 올바른 판단을 내려주십시오. 이들이 잘못한 만큼 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 가습기살균제 참사 유족 김태종씨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유족과 환경운동연합 등 54개 시민단체가 이 사건으로 기소된 기업 관계자들의 항소심(2심) 결심 공판을 3주 앞두고 재판부의 유죄 판결을 촉구했다. 

이들은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에스케이(SK)그룹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1심에서 무죄로 판단한 SK, 애경, 신세계 이마트 측 관계자 13명의 유죄 판결을 요구하며 "너무 늦었지만 재판부가 이제라도 뒤틀린 정의를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발표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김경영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저뿐만 아니라 2009년에 태어난 제 아이들도 숨 한번 크게 쉴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을 겪고 있다. 그저 지나가는 환절기 감기조차 저희에겐 죽음에 이르는 질병과도 같다"며 "이런 피해를 입고도 기업들의 잘못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깨끗하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것이 저희의 죄가 아니라면, 법원은 잘못을 저지른 기업들의 유죄를 제대로 따져줘야 한다"고 했다.

피해자 김기태씨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은 1994년부터 2011년까지 CMIT·MIT를 원료 물질로 하는 '가습기메이트'를 218만 개 이상 만들어 팔았고, 신세계 이마트는 2006년부터 애경 제품을 '이플러스·이마트 가습기살균제'라는 PB상품으로 35만 개 이상 팔았다"며 "가해 기업들의 범죄행위와 수많은 증거의 인멸, 정부의 직무 유기와 검찰의 늑장 수사, 1심 재판부의 무책임한 판결이 한데 얽혀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들, 사죄 대신 면죄부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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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및 시민사회단체가 4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SK그룹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사건으로 기소된 피고인들의 항소심 유죄 선고를 촉구했다. ⓒ 복건우

 
발언자로 나선 이미현 참여연대 정책기획국장은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발생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고 법은 피해자들 편에 서지 않았다. 희생자들의 숫자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며 "사법부의 정의가 바로 설 수 있는 항소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피해자와 유가족 곁에서 목소리를 내겠다"고 했다.

기자회견 측에 서면 발표문을 보내온 조은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환경보건위원회 변호사는 "기업들은 증거로 제출된 CMIT·MIT 위해성 관련 연구를 재판 내내 부정하고, 이것이 피해자 구제를 위해 편향적으로 수행됐다고 주장하기 바빴다. 그러면서 사죄에 앞서 면죄부를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피해자들의 외롭고 힘겨운 싸움이 마무리되는 지금 시점에 이들을 지지하고 함께 싸우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기자회견 후 이들은 청계광장 소라탑 옆에서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할 탄원서 서명 캠페인(https://url.kr/y3wn1i)을 벌였다. 이들은 "가해 기업과 임직원에 대한 형사처벌은 피해자의 권리를 확인하는 마지막 길"이라며 "같은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판결을 통해 이정표를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가습기살균제피해지원종합포털에 따르면 가습기살균제의 원료인 CMIT·MIT 성분이 포함된 제품 피해자 수는 2000여 명(중복 포함)에 달한다. 올해 8월 말까지 집계된 전체 피해자(5041명)에 견주어보더라도 40% 가까이 되는 수치다.

2021년 1월, 이 사건 1심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유영근 부장판사)는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홍아무개 전 이마트 상품본부장 등 피고인 13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이 만들고 판매한 가습기살균제와 폐질환·천식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항소심을 진행 중인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서승렬 부장판사)는 오는 26일 오전 10시 10분 항소심 결심 공판을 열 예정이다. 결심은 재판부의 선고를 앞두고 변론을 마무리하는 절차다. 선고는 결심 공판 후 다음 공판에서 이뤄진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살균제를 사용한 이들이 폐질환을 앓으며 2011년 처음 알려졌고 2014년 첫 공식 피해 판정, 2017년 특별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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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및 시민사회단체가 4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SK그룹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사건으로 기소된 피고인들의 항소심 유죄 선고를 촉구했다. ⓒ 복건우

#SK #이마트 #애경 #가습기살균제 #항소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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