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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해명 '박정훈 대령 대응 문건', 의혹 더 커졌다

'해병대 순직사고 조사 관련 논란에 대한 진실' 문건 파장... 작성 의도, 유포 경위 납득 어려워

등록 2023.10.05 16:18수정 2023.10.05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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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강: 5일 오후 5시 32분]

국방부 정책실이 전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의 입장을 반박하기 위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병대 순직사고 조사 관련 논란에 대한 진실> 문건을 놓고 의혹이 점차 증폭되고 있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5일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문건을 국방부에서 작성한 것이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문건은) 지금까지 (국회나 언론에) 설명 드렸던 내용들을 정리한 것이다. 이 문서는 언론에 공식적으로 제공하거나 퍼블리시(공개)된 사안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문건 작성 의도에 대해 전 대변인은 국방부 주요 직위자들과 정책 자문위원들을 대상으로 관련 내용을 공유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성 일자나 유출 경로는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해당 문건은 지난 추석 연휴 기간 예비역 군인들을 중심으로 유통되었고,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언론에도 전해진 바 있다.

A4용지 12쪽 분량의 문건은 ▲해병대 수사단 조사 결과의 문제점과 이첩 보류 지시의 정당성 ▲문서 결재 이후 지침 변경의 정당성 ▲장관의 이첩 보류 지시는 적법한 권한의 행사 ▲수사개입 주장의 허구성 ▲국방부 차관과 법무관리관의 직권남용 주장의 허구성 ▲대통령실 개입 주장의 허구성 등 1~11번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납득하기 어려운 문건


그런데 해당 문건은 사실관계에도 오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작성 의도나 유포 경위 역시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건에서 국방부는 전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이 임성근 해병1사단장을 비롯해 8명에 대해 '인지통보서'의 양식에 따라 죄명을 적시한 것과 관련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업무상과실'과 '사망'과의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하나, 해병대 수사단은 무리하게 범죄로 판단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사건 초기 박 대령의 법률대리인이었던 김경호 변호사는 임 사단장 등에 대한 죄명을 적시한 것은 국방부 장관의 명령인 '법원이 재판권을 가지는 군인 등의 범죄에 대한 수사절차 등에 관한 훈령'에 규정된 '인지통보서' 서식에 따라 작성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직접적 인과관계는 수사를 통해서만 밝힐 수 있지만, 3대 범죄(군내 성폭력 범죄, 군인 등의 사망 사건이 되는 범죄, 입대 전 범죄)를 민간 수사기관에 이첩하도록 군사법원법이 개정된 이후에는 군사경찰에는 그런 권한 자체가 없었다는 지적이다.

김 변호사는 "'입건'을 통해 '업무상과실'과 '사망'과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수사해 보아야 하나,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입건 권한이 없어, 업무상과실치사의 구성요건에 관한 인과관계를 수사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서 "내사한 사실 자체로 국방부 장관 훈령에 따라 인지통보서 및 그 양식에 따라 혐의자 및 혐의 사실을 적어서 보낸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또 국방부는 문건을 통해 지난 7월 30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해병대 수사단 보고서에 서명한 뒤 바로 다음 날 예정되었던 언론 브리핑을 취소하고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고 지시한 것과 관련해 이 장관의 최초 결재는 보고서 '열람·확인' 차원의 결재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서 결재 이후 관련된 지침 변경에는 아무런 법적 제한이 없고, 결재 후 관련 지침을 변경한 사례들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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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3.9.13 ⓒ 남소연

 
이에 대해 김경호 변호사는 "군에 수사권이 없는 사건은 군 수사 기관인 군사경찰과 군 검사도 관여할 수 없게 군사법원법에서 이첩과 송치 의무를 지우고 대통령령인 수사절차 규정에서 '지체 없이'라고 시기까지 규정한 이상 적어도 이 사건은 통상의 경우와 달리 국방부 장관과 해병대 사령관도 여하한 명령과 지시, 결재 행위조차 권한이 없다"고 지적했다.

국방부가 작성한 문건은 사실관계에서도 여러 곳에서 오류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를 비판하면서 "해병 1사단장은 순직 해병 소속 부대장이라는 이유로 범죄혐의자로 분류"되었다는 기술이 대표적이다.

현재 박정훈 대령의 변호를 맡고 있는 김정민 변호사는 "당시 해병1사단장은 부대가 출동한 직후부터 현장에 상주하며 중대급 부대까지 직접 지휘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해병1사단장이 혐의자로 포함된 것은 단순히 순직해병의 소속 부대장이라는 이유만이 아니라, 출발 전 안전 장비를 갖도록 조치하지 않은 것 등을 비롯해 여러 가지 과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수사 자료는 법무관리관실에서 최종 정리를 해야 하는데, 혐의자를 특정하지 않고, 경찰에 필요한 자료만 주면 된다'는 내용의 이종섭 장관 지시사항을 김계환 해병대사령관 등에게 전달한 정종범 해병대 부사령관의 진술과 관련해서도 국방부는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문건은 "일각에서는 전 수사단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서에 기재된 내용에 근거하여 특정인을 혐의자에서 제외하라거나 수사자료는 법무관리관실에서 최종 정리해야 한다는 등의 장관 지시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라고 적시했다. 이어 "하지만 영장에 기재된 내용은 군검사가 해병대 부사령관의 진술서를 바탕으로 요약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당시 국방부 회의에 참석했던 해병대 부사령관은 장관의 지시 사항을 추후에 복기하는 과정에서 장관의 지시 사항과 법무관리관의 법리 설명을 혼동하여 모두 장관 지시로 잘못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난 8월 21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7월) 31일 오후 미팅 시 (이종섭) 장관이 뭐라고 말했느냐?"는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정 부사령관은 "제 기억으로는 장관께서 '수사자료는 경찰 이첩 이전에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에서 최종 검토가 필요하고, 관련해서 경찰과 유족께서 오해가 없도록' 당부 말씀을 했다"고 분명히 답변했다. 설령 해병대 부사령관의 진술이 잘못된 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는 군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서에 오류가 있었다고 국방부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된다.

박 대령 변호인 "문건 배포, 피의사실공표죄에 해당"

국방부에서 작성한 문건이 외부로 유포된 경위 역시 의심을 사고 있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국방부 내부 인사들뿐만 아니라 국방부 정책 자문위원들에게도 문건이 제공됐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국방부는 지난 5월 초 국방정책 수립 및 추진 과정에서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하고 반영하기 위해 정책기획, 기획예산, 인사복지, 전력, 국방혁신 등 12개 분과 140여 명을 정책자문위원으로 위촉한 바 있다. 이들을 대상으로 문건을 배포했다면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과 관련한 일방적 주장을 배포한 셈이어서 향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 등을 대비한 여론전을 펼치려고 했던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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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피해 실종자 수색작전 중에 발생한 해병대 고 채 모 상병 사망사고를 수사하다가 항명 등의 혐의로 군검찰에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검찰단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2023.9.20 ⓒ 유성호


박정훈 대령의 법률대리인 김정민 변호사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수사 관련 내용을 정책자문위원들에게 배포했다면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면서 "국방부 정례브리핑 때 박정훈 대령이 직접 출석해서 반론을 하겠다고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김 변호사는 "단 한 명의 정책자문위원에게 문건을 전달했다 하더라도 이는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이자 피의사실공표죄에 해당한다"라고 주장했다.

문건에 대해서는 더불어민주당도 발끈하고 있다. 국방부가 해당 문건을 통해 야당의 주장을 공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문건에서 "혐의가 불분명한 경우 혐의자와 혐의사실을 특정하지 않고 보내는 것도 법의 취지상 가능하다"고 했던 유재은 법무관리관의 언급을 직권남용이라고 지적한 야당에 대해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라고 비난했다.

또 '대통령실 개입 주장의 허구성'이란 항목에서는 "야당은 전 수사단장이 해병대 사령관으로부터 들었다는 '사단장 처벌에 대한 대통령의 격노'에 관한 일방적 진술을 근거로 대통령실의 외압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적시했다.

더불어민주당 해병대원 사망사건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 소속 박주민 의원은 <오마이뉴스>에 "'앞뒤가 맞지 않다', '허위 주장' 등의 표현을 써가며 사실과는 다른 내용으로 야당과 수사단장을 맹비난하는 문서를 국가기관인 국방부가 작성해 배포까지 한 경위가 매우 의문"이라면서 "논란에 대한 진실이라기보다는 진실을 덮기 위해 만들어져 공유된 문서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정훈 대령 #국방부 정책실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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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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