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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군인 순직 최종심사하는 제도, 반드시 바꿔야"

[인터뷰] 고상만 전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위 사무국장

등록 2023.10.06 16:06수정 2023.10.0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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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만 ⓒ 고상만

 
고상만은 인권운동가이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 여러 의문사 관련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관련기사 : "장준하, 명백한 타살... 이제라도 기록 공개해야" https://omn.kr/fbil) 그가 의문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뭘까?

그의 인생의 전환점은 아마도 1990년 3월이 아닐까 싶다. 그가 대학 2학년이었을 때였다. 학생운동을 함께 하던 학생회장 김용갑(1966~1990)이 새벽 2시, 거리에서 차디찬 시신으로 발견되었다(관련기사 : 비극으로 끝난 수석 입학생의 짧은 삶 https://omn.kr/1o789).

당시 운동권 출신으로 처음 학생회장이 된 김용갑에 대한 부패한 사학재단 측의 폭력적 탄압은 대단했다. 결국 그는 불과 24세의 나이에 목숨까지 잃었다. 당시 20세였던 고상만은 '그는 죽고 나만 살았다는' 죄책감이 너무나 컸다. 김용갑의 죽음에 드리워진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의무감이 20대 고상만의 삶을 지배했다.

다음은 9월 13일까지 전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을 지낸 고상만과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인터뷰는 지난 한 달간 이메일과 페이스북 메신저로 이뤄졌다. 

- 김용갑의 의문사가 이후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아래 의문사위) 조사관으로 일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인가?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 같다. 김용갑의 죽음 이후 그해 여름 방학 때 대학에서 제적이 되었다. 그의 죽음 이후 대학 수업에 아예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수업엔 왜 들어가지 않았나?


"그는 죽었는데 나는 학점을 받아 졸업하는 일상이 너무나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에 들어가지 않는 대신 그 시간에 김용갑 의문사 사건 현장을 찾아가 단서를 추적했다. 심지어 사건이 일어난 시간인 새벽 2시에 영혼을 만날까 싶어 현장에 울며 앉아 있기도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자연스레 관련된 법률 공부도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런 나의 열정을 곁에서 지켜본 분들이 지난 2000년에 출범한 의문사위 조사관으로 일해 보면 어떻겠냐고 조언했다. 그래서 시험을 보게 되었는데 합격해 그 후 재야인사 장준하(1918-1975) 선생 의문사 담당 조사관을 맡게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 지금까지 9권의 저서를 낸 것으로 알고 있다. 그중에 지난 1975년 장준하 선생 의문사를 다룬 책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과 함께 1998년 김훈 중위 의문사를 다룬 <그날 공동경비구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도 있다. 군의문사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

"1998년 천주교 인권위 활동가로 일할 때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을 접하게 되었다. 이후 '나도 군에서 자식을 잃었다'는 사연을 가진 이등병의 엄마 500명을 만나게 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런 분들의 사연 중 가슴 아픈 게 뭐였냐면, 억울함을 입증할 증거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군이 아닌 유족 입장에서 '공정하고 객관적인 국가 조사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절실히 느꼈다."

- 그래서 만든 것이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위>였나?

"맞다. 지난 2018년 9월 14일 문재인 정부 하에서 출범해 지난 9월 13일까지 5년간 운영된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아래 위원회)가 바로 그것이다. 흔히 노무현 정부하에서 운영된 <대통령소속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를 1기라 하고 위원회는 2기라 칭하는데, 1기 위원회보다 권한과 조사대상도 확대된 역할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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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병의 엄마 국회 영상 상영회를 마치고 ⓒ 고상만

 
- 위원회를 만드는 과정에서 연극 <이등병의 엄마>도 직접 기획, 제작하기도 했는데?

"위원회를 만드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이명박 정부에 의해 1기 위원회가 2009년 12월 말 법적 활동종료로 해산되었다. 사실 나는 그때부터 2기 위원회의 구성을 위해 노력했다. 대한민국은 의무복무 제도를 유지하고 있고, 많게는 100여명의 군인이 매년 사망하고 있는데 유족이 신뢰할 수 있는 조사기관을 폐지하는 것에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더구나 1948년 국군조직법 제정 이후 '복무중 사망했으나 아무런 예우 없이 죽어간 군인이' 약 3만 8천명이나 되는데 국가가 이를 방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다시 조사해서 해결해야할 기관을 폐지하는 것이 말이 되나? 이러면서 군인에게 무슨 애국을 요구한다 말인가? 그래서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고민을 하던 중에 지난 2017년 5월, 연극을 만들어 이 현실을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 위원회는 언제, 어떻게 합류하게 된 것인지?

"지난 2018년 9월 14일 위원회가 출범하고 같은 해 12월 3일 조사총괄과장(별정직 3급)으로 합격해 출근하면서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이듬해인 2019년 12월, 사무국장(별정직 고위공무원 나급)으로 승진해 2023년 9월 13일까지 근무한 것이다."

- 위원회 활동의 주요성과를 평가하면?

"1기와 2기 위원회는 군인권적 측면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먼저 1기 위원회는 '의무복무 중 자해 사망한 군인도 순직결정을 받을 수 있는' 역사적 길을 열어놓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군인사법은 자해로 목숨을 끊은 경우 순직에서 '무조건 제외'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규정이다. 부대 내 구타 가혹행위를 못 견뎌 목숨을 끊은 것인데 그 잘못을 군이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잘못된 규정이다. 이것을 1기 위원회가 바꾸도록 권고를 한 것이다."

-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위는 그럼 어떤 성과를 남겼나?

"1기 성과를 이어, 보다 더 포괄적인 성과를 냈다고 평가한다. 바로 '의무복무 중 사망한 군인은 기본적 순직'이 되도록 군인사법을 개정한 것이 성과다. 또한 지금까지 위원회가 조사한 1860건의 안건처리 선례를 통해 앞으로는 의무복무 중 사망할 경우 본인의 중대 과실이나 고의가 아니라면 기본적으로 명예회복이 가능하도록 현실화 시켰다. 이것은 군인권 역사에 있어 큰 발전으로 평가될 것이다."

- 위원회 활동 중 느꼈던 아쉬운 점, 한계가 있었을 것 같은데?

"위원회에 들어오기 전인 2017년과 2018년 초에 문재인 정부에서 국방부 적폐청산위원회와 국방개혁 자문위원회 간사 위원을 각각 역임했다. 이때 내가 국방부에 권고해 약속받았던 사안들이 몇 가지 있었다. 특히 복무 중 사망한 군인들의 순직 결정과 관련하여 '타 국가기관에서 조사해 국방부에 순직 권고할 시, 이를 전면수용 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했었는데 당시 송영무 장관 시절에는 이 약속을 잘 지켰다. 그런데 이후 장관으로 넘어가면서 점점 흐지부지 되었다. 이건 정말 문제다.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그야말로 대통령도 속이고 유족도, 국민도 모두 속인 정말 나쁜 선례다. 이것이야말로 또 다른 적폐가 아니고 무엇인가?

결국 우리 위원회가 재심사 권고해 국방부에 넘긴 사건 중 현재 30여건이 넘는 사건이 다시 기각되고 있다. 결국 군 유족에게 희망 고문으로 또 못을 박고 있는 것이다. 이건 적폐 놀이다. 도대체 가해자(국방부)가 왜 피해자(군 희생자)를 심사한단 말인가? 이런 곳이 어디 또 있단 말인가? 나는 국방부의 대국민 약속위반 문제에 대해 반드시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또 싸워 나갈 작정이다."

- 위원회 활동을 통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포기하고 있던 진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며 감사하다는 유족의 편지를 받았을 때다. 그리고 죽기 전에 자식의 일을 해결해 이제 저 세상에 가서 자식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연부터 부모님에게 장남으로서 동생의 일을 해결하고 왔다며 인사드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연담은 기억에 남아 있다. 무엇보다 1860건의 사건을 위원회가 해결했다는 것이다. 과거 1기 위원회가 4년간 600건의 사건을 다뤘는데 2기 위원회는 5년의 시간동안 3배가 넘는 사건을 해결했다는 점에서 참 열심히 일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 성과가 있기까지 참 열심히 일한 우리 위원회 모든 구성원 분들이 자랑스럽다. 지난 5년간 정말 열심히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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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망사고위원회가 발간한 피해자 사례 기록집 ⓒ 고상만

 
- 가장 가슴 아팠던 군의문사 사례를 소개하면?

"그런 사례가 너무 많아서 참 어렵다. 굳이 꼽자면 신원식씨가 중대장으로 있었던 1985년 박격포 오폭 의혹으로 사망한 병사 사건을 들 수 있다. 이 사건의 진실은 명확하다. 신원식 의원은 진실을 알 수 없는 국민을 상대로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사망한 병사가 불발탄을 밟았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위원회 조사 결과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신 의원은 우리 위원회 대면 조사에 응하여 충분히 소명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서면조사만 응했고 대면조사는 거부했다. 왜 그랬는지 정말 묻고 싶다. 반면 날아온 박격포탄을 봤다는 증언을 하는 중대원이 한두 명이 아닌데 그들이 왜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는지 답답할 뿐이다.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이외에도 1989년 전남 외딴섬 경계부대에서 발생한 류 모 상병 사건 역시 안타까운 사건 중 하나다. 간단히 설명하면 당시 부대 지하벙커 안에 네 명이 있었는데 말 다툼 중 두 명이 사살되고 나머지 두 명이 총기를 휴대한 채 도주한다. 그러다가 그중 한명만 살아 돌아왔는데 그가 헌병대에서 진술하기를 '함께 도주한 류 상병이 벙커에서 두 명을 총기로 살해한 후 도주했다가 나까지 죽이려 해 도망치자 수류탄으로 자폭했다'고 했다. 그렇게 범인이 류 상병으로 종결 처리되고 30년이 흘렀다. 위원회는 유족의 진정을 받아 이 사건을 조사했다. 그 결과, 진실은 달랐다. 류 상병은 범인이 아니었다. 사살된 벙커 안 두 명의 사망자에게 발사된 15발의 실탄은, 놀랍게도 유일한 생존자의 총기에서 발사된 사실을 확인했고 이 기록이 담긴 서류를 당시 헌병대가 숨겼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우리가 찾아낸 것이다. 내가 조사총괄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2019년에 직접 담당했던 마지막 사건이었기에 기억에 남는 사건이기도 하다."

- 향후 군의문사를 예방하기 위해서 정부의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보는지?

"앞서 1, 2기 위원회가 이룬 성과를 이어 이제 남은 과제는 하나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건이 그것이다. 바로 '가해자는 피해자 사건에서 완벽하게 손을 떼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이를 위해서 나는 완벽한 형태의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국가 차원의 조사기구 구성>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새로운 캠페인을 구상하고 있다. 먼저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 국가인권위에서 23명으로 운영되고 있는 차관급 군인권보호관 제도를 장관급으로 격상해 조사인원을 100명~150명 단위의 완전 독립된 군인권 조사기구로 개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방부가 장관급인데 지금의 차관급인 군인권보호관은 격이 맞지 않는다. 실제로 일을 할 수 없다. 우리 위원회가 110명 단위로 조사 업무를 해 왔다. 그런데도 밀려오는 민원을 다 할 수 없었다. 아직도 3만 8000여 명의 미순직 군인이 그대로 있는데도 법적 활동기간이 끝나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가해자인 국방부가 군인의 순직여부를 최종심사하는 잘못된 지금의 제도는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해자가 왜 피해자를 심사한다는 말인가? 이게 말이 되나? 이런 일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는 이를 바꾸기 위해 국민 여러분에게 알리는 캠페인을 또 준비하고 있다. 함께해 주시리라 믿는다."

- 끝으로 향후 계획은?

"당분간 유튜브 방송을 진행할 예정이다. 예전에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았던 <고상만의 수사반장 시즌3>를 비롯해 <고상만의 고수처>와 <고상만의 DP>를 김성수TV와 서울의소리 등에서 곧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난 1998년부터 내가 성과를 얻은 군인권 개혁과 관련한 일들을 정리한 열 번째 책을 집필중이다. 책이 정리되면 말씀드린 가해자가 피해자의 순직결정을 최종심사하는 잘못된 구조를 완전히 바꾸는 캠페인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한다. 함께 힘을 보태주시리라 믿는다. 나는 이 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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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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