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떠나기 전 매주 한 번씩 차를 운행할 코스도 정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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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자기가 해외 취업을 할 줄 알았던 건지, 사실은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떨어졌기 때문이겠지만, 작년부터는 나에게 계속 운전을 시키고 본인은 조수석을 자처했다.
남편이 운전하다 졸리고 피곤할 때 운전을 해서 부산까지 간 적도 있고 시댁까지 간 적도 있지만 조수석에 남편이 타지 않은 채로 운전을 해 본 적은 없었다. 남편이 출국하기 전까지는.
내 뇌구조 속에는 운전, 주유, 세차, 차량 검사, 동계 타이어 교체 같은 차와 관련된 영역은 전혀 없었다. 마치 남편의 뇌구조 속에 된장찌개 끓이는 법, 밥솥 안 밥의 상태와 재고, 샐러드의 유통기한과 관련된 영역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남편이 체코에 있는 대학에 채용되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시부모님, 특히 가장 노릇을 여태 맡아온 며느리에게 항상 고마움을 표현해 왔던 시어머니가 가장 반가워하실 줄 알았다. 이때까지 니가 수고했는데 이제 짐을 좀 덜게 되어 다행이다,라고 말이다.
하지만 남편 혼자 외국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게 확실해진 다음 어머님의 표정은 바로 어두워지셨다. "애비가 혼자서 어떻게 하겠냐"며 걱정을 하셨다. "어휴, 애비 나이가 몇인데 자기 한 몸 못 돌볼까요. 걱정 마세요"라고 했지만 사실은 나도 그리 미덥진 않았다. 그래서 출국 전까지 남편에게 없는 부분을 채워주려고 했다.
"끼니는 그냥 때 되면 먹어요. 배가 고프네 안 고프네 하면서 불규칙하게 때우지 말고. 매 식사에는 탄수화물, 단백질, 식물섬유소를 골고루 먹어야 해요. 식물의 피토케미컬은 색깔에 따라서도 다르다고 하니 초록잎만 먹지 말고 파프리카 같은 여러 색깔 채소를 챙겨먹어요."
매일 식사를 차려주면서 염불을 외듯 되풀이해서 말해주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내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려고 애썼다. 차를 내가 몰고 주유소에 갔을 때도 직접 주유를 해본 적이 없다는 걸 떠올리고는 주유소에서 한 단계, 한 단계 가르쳐 주었다. 매주 한 번씩 차를 운행할 코스도 정해주었다.
우회전만으로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대형마트였다. 매주 한 번씩 재택근무 중 점심 시간에 마트에 간다. 길에도 차가 적을 법하고 우리 아파트 주차장도 대형마트의 주차장도 한산할 시간대를 고심해서 고른 것이다.
남편에게 식사하는데 배가 고픈지 안 고픈지에 좌지우지 되지 말라고 한 것처럼 나도 운전을 해야하는 날에는 할까 말까, 다음에 할까 같은 생각은 하지 않는다. 김연아 선수에 빙의한 것처럼 '생각은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를 복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