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 양을 꼼꼼히 계산해본다
권유정
고기를 구워 먹겠다고 계획한 조만 먼저 정육점에 내렸다. 각 조의 인원수에 따라 구매할 양을 계산해갔는데, 주문하는 만큼만 썰어주면 좋으련만 정육점에서는 미리 포장해 놓은 고기 중에서 골라 구매하라고 한다.
당황해하는 아이들에게 두 팩 정도면 비슷할 거라고 힌트를 주었다. 대충 두 팩을 골라 가는 아이도 있고, 야무지게 휴대폰을 꺼내 두 팩의 무게를 더해보는 아이도 있었다. 양이 달라져 예상금액과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크진 않았기에 그대로 결제를 하고 영수증을 챙기도록 했다.
계획과 실제는 항상 다르다. 발달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에겐 교실 안 공부보다 경험과 상황 속에서 배우는 삶의 교육이 필요하다. 대형마트 홈페이지를 검색해 예산안을 짰지만 실제 금액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설명했다. 예상 금액보다 더 싸거나 약간 넘는 건 괜찮지만 너무 비싸면 안 된다고.
아이들은 카트와 장보기 목록을 들고 분주하게 마트를 돌아다녔다. 계획한 상품을 구매하고 남은 돈은 각 조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원하면 간식 등을 더 구매해도 된다고 했으나 잠시 고민하던 아이들은 입을 모아 다시 저축을 하겠다고 말했다.
늘 용돈을 있는 대로 탕진하기 바쁘던 아이도 친구들의 의견을 따라 저축을 택했다. 아직 2학기는 한참 남았고, 캠핑 이후에도 버킷리스트를 실행하려면 저축은 계속 필요했다. 아이들은 서서히, 불필요한 소비를 줄여야 더 즐거운 것들을 할 수 있음을 깨달아가는 듯했다.
예산이 초과된 조는 급하게 계획을 수정하기도 했다. 프렌치토스트를 먹겠다며 연유에 버터, 딸기잼, 슬라이스햄, 체다치즈, 계란, 우유 등을 빠짐없이 골라 담은 덕분이었다. 동네마트는 대형마트와 달리 종류나 용량이 다양하지 않았다. 개중 제일 작고 저렴한 걸 골랐는데도 예산을 초과해 별 수 없이 내용물 일부를 포기해야 했다.
"돈이 모자라서 다 살 수 없어. 우선순위를 정해서 이 중에 너희가 꼭 먹고 싶은 건 남기고, 없어도 되는 걸 몇 개 빼."
그렇게 화려했던 계획보다 다소 소박해진 장보기가 완료되었다. 마지막으로 식재료를 포함한 조별 준비물을 최종 확인한 뒤 전부 트럭에 실었다. 1톤 트럭을 가득 채우고서야 짐 챙기기가 끝이 났다.
오전 내내 준비물을 챙기고, 학교에서 점심식사를 한 뒤 캠핑장으로 출발했다. 자라섬 오토캠핑장에 도착을 하고 나니 하늘이 어두컴컴했다. 한 줄기 희망마저 가린 먹구름이 머리 위에 드리워져 있었다.
어느샌가 슬그머니 바뀐 일기예보에도 비 그림이 점점 늘어나 비, 비, 계속 비, 내일까지 쭉 비를 나타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비가 올 것이 확실했다. 헛된 기대보다 빠른 대안을 마련해야 할 때였다.
"……우선 타프를 전부 다 칩시다."
조금이라도 수고를 덜어보고자 두 조당 타프 하나를 사용하는 걸로 머리를 굴렸건만, 헛수고였다. 우중캠핑에 타프는 필수다. 텐트만으로는 비를 피하기 어렵고, 습기도 감당할 수 없다.
작년에 텐트와 타프 열두 개를 치고 밤새 몸살로 앓았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벌써 삭신이 쑤시는 기분이었지만 눈물을 머금고 조별 자리마다 타프를 하나씩 설치했다.
그래도 텐트 설치에 선택과 집중을 한 성과가 없지는 않아 교사들이 타프를 치는 사이에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텐트를 완성했다. 캠핑의자와 테이블도 척척. 간헐적 개입이 필요했으나 그 정도면 충분히 훌륭한 결과물이었다.
부족한 타프는 학교에 남아있는 동료들에게 SOS를 보냈다. 수업 및 각자의 업무가 끝나는 대로, 하나둘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캠핑장에 모였다. 프로젝트 수업에는 담당교사가 정해져 있지만 때로는 활동내용에 따라 또 다른 인력을 필요로 할 때가 있다.
특히 이런 캠핑 같은 경우는 담당교사들이 각 조별 아이들을 챙기다 보면, 정작 우리의 식사나 잠자리는 챙기기가 버거워서 지원인력이 간절했다. 의무가 아님에도 내 일처럼 나서주는 동료들이 있어 얼마나 고맙고 든든한지.
어쩌다 보니 글을 쓰고 방송에도 출연을 하게 되었지만 사실 내가 이야기하는 것들이 오롯이 나 혼자 해낸 일들은 아니다. 아마 혼자였더라면 결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남들만큼 보상받지 못해도, 각자의 사명감으로 제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 비단 우리 학교 교사들 뿐만 아니라 아마 내가 모르는 사회 어딘가에서 그렇게 책임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사회를 지탱하는 건 대단하고 특별한 누구 한 사람이 아니라 묵묵히 제 몫을 해내는 수많은 사람들이다.
그런 믿음으로 나 역시 오늘도 나의 일을 한다.
우중캠프의 매력이 아무리 좋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