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5월23일 이랜드일반노조와 뉴코아 노조가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매장 인근 공터에서 총파업 결의대회를 할때의 이경옥.
이경옥
영화 <카트>는 이랜드일반노동조합(이랜드노조와 한국까르푸노조 통합)의 투쟁을 담은 이야기다. 이경옥은 그 투쟁으로 해고되었고, 현장에 복귀하지 못했다. 그 후, 2009년부터 2019년까지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비정규특별위원장 2년, 사무처장으로 9년을 지냈다. 현재 홈플러스일반노동조합의 지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인생의 반전은 그렇게 이경옥에게 왔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생전 처음으로 임금노동자가 되었다. 부당한 노동현실에 눈을 떴다. 온실속의 화초처럼 살았던 이경옥은 40대 중반에 두 눈을 부릅뜬 '투사'가 되어 있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라더니 딱 맞는 말이다.
"여성 퇴직자를 밖으로 나오게 하고 싶어요"
이제 아름다운(?) 인생 2막을 위해 '이음나눔유니온'을 만들고 공동위원장이 되었다. 그의 포부를 들어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년 퇴직후에 어떻게 살지 구체적인 계획이 없어요. 그냥 살던 대로 살아지겠지 해요. 하지만 퇴직 후의 삶은 준비해야 해요.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가족들을 위해 산 여성 퇴직자를 밖으로 나오게 하고 싶어요. 그동안 힘들었던 것들을 마음껏 이야기하고,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봉사활동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건강이 좋지 않은 여성노동자가 많아요. 그분들에게 퇴직 후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조사하고 그 욕구를 채울 수 있는 교육을 했으면 좋겠어요. 가족에게 기대는 노후생활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퇴직자들의 공동체를 만들어야죠. 활기찬 인생 2막을 함께 만들어야죠."
이경옥은 퇴직 후에도 합창단 단원으로, 홈플러스일반노동조합의 지도위원으로, 퇴직자노조의 공동위원장으로 바쁘게 살고 있다. 그런 그가 지난 3년을 코로나19로 감옥생활과 다름없는 시간을 보냈다. 노동조합과 결혼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활발히 활동했는데 모임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이지 못하고 활동하지 못하고 있을 때, 딸아이로부터 연락이 왔다. "엄마, 베이비시터가 그만 뒀어요. 아이들 육아 좀 부탁해요." 활동을 못 해 집에만 있으니 딸아이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손주의 육아를 맡지 않겠다는 결심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딸아이의 집에서 3년 동안 살았다. 손주들 등교와 등원을 맡았다. 그 외 시간엔 틈틈이 활동을 했다. 이경옥은 그 시절을 떠올리며 말했다.
"너무 답답했어요. 하마터면 우울증이 올 뻔했어요. 올해 5월에 육아가 끝났어요. 드디어 자유를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작년에 돌아가셨어요. 어머니는 10년 전에 치매가 왔어요.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돌보고 있어요. 저는 주말을 맡았어요."
손주의 육아가 끝났지만 부모님 돌봄은 끝나지 않았다. 울상 지으며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서 다음 말을 읽었다.
'돌봄은 사회가 책임져야 해요. 그렇지 않으니 초저출산 사회가 되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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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인터뷰집,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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