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두머리 친구초원 한 복판에 텐트를 치면 말 무리와 함께 사는 느낌이 든다.
안사을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계속 식사를 하던 가까운 유르트로 가 저녁을 주문했다. 메뉴는 따로 없고 가격은 일 인당 500솜(com)으로 고정이다. 동행인은 어떤 문화권에서도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는 사람인데 이때만큼은 나온 음식을 잘 먹지 못했다. 고산증 증세 때는 속이 안 좋아도 음식을 잘 먹어야 한다. 잘 먹지 않아도 급격히 나빠지기 때문이다.
좋지 않은 안색으로 도통 음식을 먹지 못하자 주인 아주머니께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동행인을 보더니, 갑자기 "김취?"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잠깐 귀를 의심했다. 곧이어 그의 눈이 왕구슬만하게 커지면서 안색이 밝아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포크로 김치통을 푹푹 쑤셔가며 김치 투약을 시작하자마자 동행인의 얼굴에 그늘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처방전까지 받아 구매한 약보다 푹 익은 배추김치 한 포기가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두통도, 몸살 기운도 거의 사라졌다고 했다.
참 얄궂게도 그 김치는 어제 그토록 우리를 괴롭혔던 한국인 무리가 놓고 간 것이라고 했다. 밤잠을 못 이루게 고성방가로 메아리를 울리던 그들을 원망하고 낯부끄러워하던 것이 불과 하루 전인데, 우리 앞에 보물단지처럼 놓인 김치 한 통에 감사하는 상황이 참 재미있었다.
순탄치 않았던 복귀 여정
송쿨에서의 마지막 아침, 말끔하게 회복된 동행인과 여전히 화창한 호수를 바라보며 떠날 채비를 했다. 다시 코치코르로 나가 하룻밤을 보내고 촐폰아타를 거쳐 카라콜로 갈 계획이었다. 송쿨을 벗어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보통은 1박2일 패키지로 오기 때문에 왕복의 차편을 준비하지만 우리는 좀 더 머물고자 편도로 왔기 때문이다.
아침에 동분서주하며 유르트들을 돌아다니던 동행인이 희소식을 가져왔다. 단체 관광객을 태우고 어제 들어왔던 마슈르카(미니버스)가 자기들 나가는 길에 단돈 500솜에 우리를 태워주겠다고 했단다. 택시 한 대에 5000솜을 내야 하는데 두 명에 1000솜이면 거저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샤슬릭 값이 굳었다며 행복하게 남은 짐을 꾸렸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우린 그 차를 탈 수 없었다. 우리에게 호객하던 택시 운전사 한 명이 그 사람에게 가서 따진 모양이었다. 그 사람이 우리에게 오더니, 미안하지만 우리를 태우지 못하겠다고 했다. 사정을 듣고 보니 이해가 갔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다른 지역의 영업 택시가 사람을 태우는 꼴이니 그들 사이에서는 불문율을 어기게 되는 것이었다.
이해는 갔지만 저 사람의 택시는 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짐을 꾸려놓은 곳으로 돌아왔는데 글쎄, 우리를 훼방 놓았던 택시 운전사가 세상에서 가장 해맑은 표정으로 그네를 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우리를 보며 활짝 웃은 채 "코치코오르?(코치코르로 나가겠냐는 뜻)"라고 외쳤다.
오히려 기가 막혀서 마음의 빗장이 풀리기도 했고, 그 택시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어서 우리는 거금 5000솜(7만 5천원 정도)를 주고 그 택시를 탔다. 대신 내려오는 동안 자유롭게 차를 세워서 풍경을 담기로 했다. 보름이 넘는 여행 동안 몇 만원 정도는 큰 돈이 아니니 마음 쓰지 않기로 했다. 기분 좋게 여행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일테니 말이다.
그런데 내려오는 도중 배낭에서 카메라를 꺼내어 보니 카메라 렌즈가 두 동강이 나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일인지. 짜증이 솟구쳐 올라왔지만, 그 역시 몇 초 만에 가라앉았다. 잘 묶으면 촬영은 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동행인의 머리끈과 텐트 로프로 잘 고정된 렌즈는 실제로 여행의 끝날까지 자신의 소임을 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