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예회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북을 치고 있다
이지애
다음 차례를 위해 울긋불긋 공연복을 입고 강당 한쪽으로 줄지어 들어오는 1학년 어린이들은 입장만으로도 어찌나 앙증맞은지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아이들은 강당을 가득 채운 부모들의 열기에 놀라면서도 설레어 방실거렸다.
엄마들은 마치 수년 만에 상봉한 듯 손을 흔들며 연신 'OO야' 자녀 이름을 불러댔다. 학교라는 공적 공간이 주는 특별한 감흥 때문에 아이들이 의젓하게 느껴져 더 반가운 듯했다.
엄마와 눈 마주치며 샐쭉 웃는 아이, 손으로 V자 만드는 아이, "우리 엄마는 왔나?" 두리번거리는 아이, 제각각 모습이지만 무대 위에서 만큼은 모두들 집중해 실로폰을 연주하며 '가을바람' 동요를 열창했다.
맑디 맑은 아이들 목소리에 묻혀 있던 나의 동심도 깨어나 함께 손뼉 치며 따라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터지는 박수와 함성소리로 강당 안 열기는 유명 아이돌 콘서트장 못지 않았다.
한 무대, 한 무대 즐기다 보니 낯익은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초등학교 도서관과 지역 아동복지센터에서 만나는 아이들이다. 수년 동안 동네 초등학교에서 그림책 읽어주기 봉사를 하고 있는데, 올해부터는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 지역 아동센터에도 방문하고 있다. 여러 번 만나자 자연스레 아이들 얼굴을 기억하게 되었고, 그때문에 애들이 대학생인 내가 초등학교 학예회에 발걸음을 하게 된 것이다.
지난번 아동센터 방문 때 아이들의 대화를 우연히 옆에서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학예회에 엄마가 오느냐 서로 물어보는데, 한 아이가 기운 없이 아마 못 오실 거라고 했다.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 엄마가 사정이 있으시거나 바쁘신 모양이었다.
그림책을 읽어주고 뒤돌아 나오면서부터 풀 죽은 그 아이의 표정이 며칠간 마음에 남았다. 아이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에 더해 엄마 없이 보냈던 나의 옛 시절이 겹쳐 떠올랐기 때문이다.
일하셨던 엄마는 나의 학교 행사를 위해 잠시라도 시간을 내는 게 불가능했다. 당연히 소풍이고, 운동회고, 공개수업이고 홀로 버텼다. 행사 당일도 당일이지만, 그 당시 운동회엔 아이들에게 무슨 연습을 그리 혹독하게 시켰는지... 두어 달씩 계속되는 땡볕 아래 부채춤 연습과 각종 집단체조 연습이 참 고생스러웠던 기억이다. 열심히 해본들 와서 봐 줄 엄마도 없는데. 당연히 의욕은 안 났고 내내 투덜댔다.
운동회 날 점심식사 시간은 특히 싫었다. 운동장 여기저기에 돗자리를 펼치고 옹기종기 마주 앉아 맛있는 점심을 함께 먹는 가족들이 부러웠기 때문이다. 물론 친한 친구가 불러줘 친구네 가족과 같이 먹을 때도 있었지만, 대개는 교실에서 혼자 먹을 때가 많았다. 아침 일찍 엄마가 정성껏 싸주신 김밥을 먹으면서도 갑자기 교실이 낯설게 느껴지고 입속 밥알은 또 얼마나 깔깔하던지.
물론 어릴 적 그런 경험들이 이후 독립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된 측면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 번쯤은 나도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기도 하다. 옛 기억과 당시 심정이 다시 생생해지다 보니, 엄마가 못 오신다 했던 그 아이를 위해 나라도 가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가서 아이를 눈여겨 봐주고 다음에 만났을 때 참 멋졌다는 말을 꼭 전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는 아이들이 무대 위에 오를 때마다 열심히 사진을 찍고, 박수를 치며 응원을 했다. 강당 뒤쪽 정해진 구역 안에서만 사진을 찍어야 해서 줌인을 최대치로 하고 아이들을 잡느라 왔다 갔다 하는데, 문득 프레임 안에 나보다 더 바쁘게 종횡무진하시는 한 어른이 잡혔다. 학교 도서관의 사서 선생님이셨는데, 그분도 무대 앞에서 허리를 굽혀 요리조리 다니며 아이들 사진과 영상을 바쁘게 담고 계셨다.
아이들이 입장과 퇴장, 대기 중일 때에는 아이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웃으며 칭찬하고 격려의 말을 건네셨다. 가만 보니 사서님 주변에 금발의 원어민 선생님과 학교 보안관님도 아이들 곁에서 상냥하게 대해 주고 계셨다. 순간 모든 아이들을 다정하게 대해 주시는 그분들을 뵈며 얼마나 마음이 따뜻해지든지!
비록 몇몇 아이들의 엄마는 못 오셨을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과 매일매일을 함께하시는 학교의 많은 분들이 아이들의 무대를 지켜봐 주고 계셨던 것이다. 아이 혼자 외롭고 쓸쓸하지만은 않을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안심이 되었다. 한 아이가 성장하는 데에는 알게 모르게 아이 주변의 여러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도 함께 하고 있음이 실감되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학예회를 준비하고 무대에 오르며 아이들은 여러모로 성장했을 것이다. 각자 맡은 역할들이 모여 한 '작품'을 이뤄내며 느끼는 일체감, 소속감 등은 물론 자신을 지켜봐 주는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을 체험하는 귀한 경험을 쌓으며 말이다.
그런 경험들이 오래 간직될 수 있도록 다음번 그림책은 학예회를 소재로 한 책을 찾아봐야겠다. 아이들과 나눌 이야기가 벌써 궁금해진다. 무대 위에서 진지한 모습이 멋졌다는 말도 잊지 않고 꼭 전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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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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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은 대학생인데요, 초등 학예회에 가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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