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한 노동자의 투쟁과 함께

[기획] 한노보연 20년, 그간 무엇을 말해왔나 ①-1

등록 2023.11.03 17:27수정 2023.11.0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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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2003년 출범해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2003년부터 2023년까지 한노보연은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노동자의 몸에 맞춘 노동 현장을 만들기 위해 여러 활동을 해왔다. 이번 기획에서는 한노보연이 지난 20년간 집중해 온 주요 의제 다섯 가지를 선정하여 지난 활동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방향과 전망을 세워보고자 했다. 첫 번째 기사에서는 노동시간 의제를 다루었다. 

노동자 건강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노동시간. 이를 줄이기 위한 노동자들의 오랜 투쟁이 있었고, 그 결과 점차 줄어들고 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이하 '연구소')는 노동시간을 줄여 노동자 건강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20년 간 투쟁해 왔다. 특히 연구소는 노동시간, 심야노동, 노동강도의 문제를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주요한 문제라고 인식했다.

2012년에는 현장에 기반을 둔 실천적인 연구를 하고 정책 대안을 제시하면서, 현장과 함께 실천하고 연대하기 위해 노동시간센터를 설립했다. 여전히 장시간 노동과 변칙적 노동시간제는 노동자들을 병들게 하는 문제다. 지금까지 연구소에서 펼친 투쟁, 노동시간센터 설립을 통해 만들어 보려한 변화, 제도 개선 등의 시도, 그리고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와 앞으로의 활동 방향에 대해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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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규칙 노동을 줄이고, 노동자가 노동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사회가 되는 투쟁을 앞으로도 해나갈 것이다.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심야노동, 교대제에 제동을 걸다

연구소는 자본의 생산효율을 높이는 전략으로 사용된 장시간 노동, 심야노동 체계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24시간 생산하는 체제, 24시간 소비하는 체제에 대한 문제제기가 필요했다. 24시간 생산하는 자동차 부품 공장의 노동자, 24시간 운영하는 대형 마트의 노동자들에게는 교대로 수행하는 심야노동이 있었다. 병원, 경찰, 소방 같은 야간에 불가피하게 일해야 하는 공공영역을 제외하면 생산을 목적으로 반드시 야간에 노동해야 하는 경우는 없다.

연구소는 2006년 4대 실천의제를 제안하며, 그 중 "교대제로부터 생명 지키기-심야노동 철폐"를 첫 번째 실천의제로 제시하였다. 당시의 문제의식은 생산을 이유로 24시간 운영하는 제조업의 질서에 제동을 걸고, 노동자 건강권을 근거로 심야 노동을 제한하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시도는 여러 완성차, 부품사들의 심야노동을 줄이는 주간연속2교대제로의 전환으로 이어졌다.

연구소는 생산과 소비를 목적으로 하는 야간교대노동에 대해 원칙적인 반대가 필요하지만, 공공영역의 불가피한 야간노동에 대해서도 노동자 건강을 지키기 위한 원칙의 제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2007년 연구소 상임활동가들과 몇몇 회원들이 함께 심야노동과 교대제의 건강영향, 개선 방안을 담은 책을 발간하였다. 교대제 개편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야간노동이 꼭 필요한지에 대한 점검이며, 필요하더라도 이를 최소화하고, 야간에 이루어지는 노동의 강도를 줄이고, 일상의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 야간에 가면 형태의 수면을 제공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하였다.

완성차를 비롯하여 금속노조 여러 사업장에서 주간연속2교대 전환이 이루어졌다. 수 년간의 투쟁을 통해 2010년 이후 시행에 들어간 것이다. 연구소는 현장의 요구를 조직하는 작업을 수행하였고, 이 과정에서 노동강도 강화 없고, 임금삭감 없고, 고용불안 없는 주간연속2교대가 되어야 함을 주장하였다. 자동차 부품사였던 두원정공은 이러한 원칙을 바탕으로 주간연속2교대제를 모범적으로 관철시켰다. 완성차부터 시행된 주간연속2교대제는 이후 부품사까지 이어졌다. 절대적인 노동시간의 단축이 동반됨으로써 긍정적인 효과가 확인되었다.


그러나 노동강도를 강화하는 방식의 노동시간 단축은 지속적인 노동시간 단축 투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평가가 필요했다. 시간제 임금체계가 유도한 장시간 노동으로 유지되던 실질 임금의 감소가 있었고 자동화와 비정규직 확대, 라인의 재배치 등이 이뤄졌다. 명확한 정량화는 어려웠으나, 이러한 변화 속에서 노동강도가 강화되기도 했다.

주간연속2교대로 전환되었지만, 야근과 특근 또한 여전히 남아있음을 확인하였다. 임금삭감 없고 노동시간 연장이 없는 교대제 변화를 만드는 대신, 실질적인 노동강도 증가를 받아들였던 완성차 방식의 교대제 전환을 부품사에도 도입해도 될 것인지 의문이었다. 자동차 부품사는 이미 상당한 노동강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간연속2교대 전환의 과정에서 우리는 노동시간의 길이뿐 아니라 노동 밀도의 증가, 자동화 및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고용의 문제, 임금과 연동되어 있는 노동시간의 문제 등에 대해 주목해야 할 필요성을 확인하였다. 교대제 개선이 가져온 일부 긍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현장 대응의 문제를 짚어내고자 한 것은, 노동시간 단축과 심야 노동의 철폐가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현장의 힘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면, 더 이상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만들어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절실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로 없는 현장을 위해, 제도 개선과 현장 대응

연구소는 2013년부터 과로사 판정에 있어서, 단기 과로 중심의 과로사 인정기준에 대한 문제제기, 과로를 판단하는 질적 요소의 부재, 질병발생의 기전을 무시한 개인 요인에 대한 과도한 고려 등의 문제를 지적하였다. 기존 판례를 분석하여,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의 방향을 제시하는 활동도 이어갔다. 이를 근거로 과로의 인정기준이 개선되는 성과를 만들었다.

보상 측면으로 뇌혈관, 심장질환 등의 직업병이 더 많이 인정되었지만, 여기에 머물 수는 없었다. 이를 계기로 과로를 예방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 현장의 변화를 만들어 낼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과로가 이루어지는 수많은 현장을 확인하고 드러내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한편 기술 및 산업구조의 변화와 함께, 노동의 형식과 내용에서도 뚜렷한 변화가 나타났다. 플랫폼 노동의 경우처럼 법제도가 담아내지 못하는 영역이 발생하면서 노동권과 사회보장의 사각지대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주류 산업으로 급속히 등장하고 있는 IT, 게임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과로가 전면적으로 드러났다.

IT 노동자들은 건설현장의 다단계 구조와 유사한 고용구조에 놓여 있었고, 프로젝트 기반의 노동, 잦은 심야 노동과 성과 압박에 시달렸다. 수많은 노동자가 우울증에 시달렸고, 자살을 하거나 과로사가 발생한 사례도 자주 있었다. 연구소는 현장의 노동자들과 함께 장시간 노동 체계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버스 노동자의 과로는 노동자 건강과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였다. 일주일에 80시간에 육박하는 운전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안전을 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노동시간특례제도를 통해 오히려 장시간 노동이 합법화되고 있는 문제를 제기하였다.

다행히 노선버스가 노동시간특례제도에서 빠지게 되어 극도의 장시간 노동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중소규모 사업장에는 장시간 노동의 문제가 남아 있다. 집배 노동자의 과로와 이로 인한 사망과 관련한 문제도 심각했다. 연구소는 문제제기와 해결을 위한 노력을 현장의 노동자들과 함께 추진하였다.

물류센터, 유통물류 노동자 노동조건, 건강실태를 드러내다

연구소는 2021년 온라인 판매를 위해 물류센터에서 포장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일용직, 단기계약직 등으로 매우 불안정한 고용상태에서, 엄청난 노동강도를 가진 야간 고정 노동을 하고 있다. 연구소는 노동시간의 문제를 야간노동, 고용 형태, 노동강도의 문제와 연결하여 문제제기하고, 24시간 노동하게 하는 우리 사회의 24시간 생산-소비체계에 대한 문제제기를 시도하였다.

2022년에는 마트, 배송기사, PP 센터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건강실태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특고형태로 근무하는 새벽배송 운전노동자들은 하루 15시간 이상, 한 달에 4일 쉬며 밤에 잠을 안 자며 일하고 있다. 온라인 유통의 확장은 오프라인 매장의 변화를 가져왔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주문한 물건을 담아 포장하는 업무를 하는 노동자는 물류센터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와 비슷한 노동을 하고 있고, 이는 오프라인 매장의 주요 노동의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불안한 고용상태에서 수행하는 야간노동과 불규칙 노동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고 있다. 한 명의 노동자가 이전에 하던 일의 2-3배를 해야 하고 해야 할 일의 가지 수도 늘어났다. 연구소는 심각해지는 노동강도 및 노동시간 문제로 인한 건강 침해 문제를 드러내고 사회적으로 제기하는 역할을 꾸준히 하고 있다.

노동시간은 언제나 현장의 최대 현안이었다. 노동을 결정하고 임금을 결정하고 노동자의 삶에 영향을 주었다. 두원정공의 노동자들은 노동시간에 대한 투쟁을 통해 밤에는 집에 가서 잘 수 있었고, 자신의 삶을 되찾고 재구성할 수 있었다. 투쟁의 성과로 노동자 개인 뿐 아니라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노동시간을 둘러싼 자본의 공격은 더욱 매서워지고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자를 개별화 시키며 노동시간의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전형적인 임노동관계를 벗어난 노동이 늘어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증가하고 있다. 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노동자도 노동 강도가 증가하고, 분절된 노동시간에 놓이거나 자본에 의해 통제되는 불규칙한 노동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노동시간을 둘러싼 투쟁은 더 복잡해지고, 첨예해지고 있다. 노동자 건강권을 중심으로 노동시간의 문제를 접근해 왔던 노동시간센터는 노동강도 강화를 저지해 내고, 불규칙한 노동을 줄이고, 노동자가 노동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사회가 되는 투쟁을 해나갈 것이다. 현장의 노동자와 함께.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장이신 김형렬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10, 11월 합본호에도 실립니다.
#노동시간 #노동시간센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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