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3일 서울 시내 아파트의 모습.
연합뉴스
이론을 가지고 논하기 전에 과거 김수현 실장이 참여했던 '참여정부' 시기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우리가 알고 있듯 참여정부 원년인 2003년에는 집값이 상승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2년 차였던 2004년에는 부동산시장은 상당히 안정됐다. 경제 환경만 보면 2004년이 더 불리했는데도 말이다.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주는 경제성장률만 비교해봐도 그렇다. 2003년엔 3.1%고 2004년엔 5.2%로, 무려 2.1%p나 높았다. 김 실장이 강조하는 금융요인, 즉 기준금리도 마찬가지다. 2003년 7월 3.75%였던 기준금리는 2004년 8월 3.5%로, 같은 해 11월에는 3.25%로 하락했다. 2003년에 비해 2004년에 돈 빌리는 값이 더 쌌다는 뜻이다. 요컨대 다른 변수가 같다면 2004년에 집값은 더 올랐어야 정상이라는 뜻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집권 1년 차인 2003년 10월 13일 노무현 대통령의 국회 연설에서 강력한 토지공개념 도입 검토 발언과 뒤이어 나온 10.29대책이 주된 원인이라고 본다. 김수현 실장도 참여한 10.29대책에서 참여정부는 고가 다주택자와 부동산 과다 보유 개인과 법인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시행 시기를 2006년에서 2005년으로 앞당기고, 재산세도 강화하며, 1세대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강화, 특히 3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한 양도세율 60%로 인상할 것이란 대책을 발표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보유세로 불로소득을 '차단'하고 양도소득세로 발생한 불로소득에 대한 '환수' 비율을 높이겠다고 천명한 건데, 나는 이것이 2004년 부동산시장이 안정된 핵심 원인이었다고 본다. 또한 2004년 4월 15일 17대 총선에서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의 총선 압승으로 10.29대책의 입법 가능성이 더 커진 것도 부동산시장 안정에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2004년 말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입법한 내용은 크게 실망스러운 것이었고, 이후 2005년부터 집값은 버블 세븐 지역을 중심으로 미친 듯이 오르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청와대는 그 해에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대책, 즉 종부세와 재산세와 양도세를 강화하는 내용을, 더구나 보유세(종부세+재산세)는 2017년까지 강화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8.31대책'을 발표하고 그해 말 입법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미 참여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크게 하락한 정권 후반기이기도 했고, 보유세 강화의 상징인 종부세를 저주했던 한나라당으로 정권이 넘어갈 분위기가 무르익은 상태였던 까닭에 부동산시장은 2006년에도 계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그런 부동산시장이 2006년 하반기 LTV, DTI 등 강한 금융규제가 도입되고 강화된 종부세 고지서가 2006년 말 개인과 법인에게 배달되자, 즉, 보유세 강화가 현실로 다가오자 2007년 부동산시장은 안정 국면으로 들어서게 된다.
실제 2006년의 종부세는 개인의 경우 2005년보다 인원이 5배 늘었고, 세액은 8.6배 늘었으며, 주택으로만 좁혀보면 2006년의 주택분 종부세액은 2005년의 무려 13.4배나 되었고, 2007년에도 더 늘어날 것이 예상됐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생각해보면 불로소득 환수 및 차단을 위한 세제 강화가 부차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2016년 '촛불혁명'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이미 사회적 합의가 돼 있는 보유세 강화를, 위와 같은 참여정부의 경험을 교훈 삼아 집권 초반에 계획을 발표하고 차근차근 밀고 가지 못한 것이 문재인 정부의 집값 폭등의 중대한 원인 중 하나라고 하면 이것도 명분에 입각한 해석인 걸까?
다른 부분도 그렇지만 부동산 정책은 최고 집권자 혹은 정책 책임자의 '첫 일성'이 중요하다. 일종의 '공고효과'가 극대화할 수 있는 때가 집권 초기라는 것이다. 집권 초에 부동산에 대한 철학과 앞으로 정책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시장이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적응해 간다.
그러나 적어도 문재인 정부 전반기의 부동산 정책 담당자였던 김수현 실장은 보유세 강화에 대해서 미온적이었다. 이런 정책 방향은 용어 사용에서도 드러나기 마련인데 이번에 발간한 책에서도 그랬고, 실제 발표된 정책에서도 '불로소득' '토지공개념'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부동산 불로소득인 매매차익을 노리는 '갭투기'도 '갭투자'라고 부를 정도다.
물론 김 실장이 비판하듯 보유세 강화로, 세제로 모든 부동산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는가. 김 실장이 입버릇처럼 말하듯 부동산 문제 해결에 있어서 '한 방'이라는 것은 없다. 내가 속한 부동산개혁 진영이 강조하는 바는 보유세 강화가 부동산 투기 차단의 필수적인 정책 수단이라는 것이다. 물론 김 실장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보유세 1%인 미국도 집값이 폭등했는데?
김 실장은 보유세 강화의 효과가 부차적이고 본질이 아니라는 걸 역설하면서 보유세가 우리나라보다 높은 영국, 프랑스, 미국, 캐나다 등에서도 집값이 폭등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자칭 시장주의자들이 이렇게 주장한 건 봤어도 김 실장에게서 똑같은 이야기를 들으니 좀 당혹스럽다.
김 실장이 책에서 말하듯 미국, 영국, 프랑스는 보유세를 부동산 투기의 해법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나라가 그렇다는 것이 보유세 강화를 투기의 해법, 즉 불로소득 차단의 방법으로 제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유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보유세가 높은 나라도 보유세에 변동이 없는 상태에서 투기 분위기가 완연하고 유동성의 파도가 밀려오면 어김없이 집값이 폭등한다는 건 사실 너무 당연한 현상 아닌가?
왜냐면 높은 보유세 실효세율이 '상수'라면 다른 '변수', 즉 기준금리가 바닥에 붙어 유동성이 밀려오면 기대수익률이 높아져 가격이 폭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높은 보유세가 일종의 '균형상태'가 되면 금융 상황 변화가 집값 변화를 초래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므로 질문은 이렇게 해야 했었다. 부동산 금융 환경이 같으면 보유세가 높은 나라와 낮은 나라 중에 어디가 집값 상승률이 높을까, 이렇게 말이다. 물어보나 마나 보유세가 낮은 나라가 상승률이 높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참여정부의 경험을 교훈 삼아 정권 초기, 즉 투기적 상승 초입 국면에서 보유세 강화의 중장기 목표를 발표하고 이를 꾸준히 실행에 옮겼다면 집값은 어떻게 됐을까? 부동산 기대수익률이 떨어져 투기가 가라앉을 가능성이 커지지 않겠는가? 금융 환경에 변화가 없으면 부동산 가격은 하락했을 것이고, 유동성이 풀렸다면 금융으로 인한 상승의 힘과 보유세로 인한 하락의 힘이 만나 가격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 알 수 없지 않은가? 다시 말해서 보유세의 중장기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보유세 가격 하락 효과는 꾸준히 나타난다는 것이다.
2011년과 달라진 김 실장의 생각
그러나 김 실장에게 이런 인식은 없어 보인다. 아마도 주택 금융화가 집값 상승의 핵심 원인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말해서 그는 강력한 금융규제가 부동산 투기 차단의 핵심 정책 수단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그의 생각은 그가 2011년에 낸 <부동산은 끝났다>(오월의봄)와 많이 다르다. 이 책에서 그는 금융규제가 만병통치약이라고 하는 이명박 정부의 강만수, 윤증현 장관을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해 우리나라에서 금융규제는 결코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강만수, 윤증현 장관은 "부동산 정책은 금융으로 하는 것"이라며 높은 세금을 비난하거나 불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 2006년 하반기 DTI 규제를 강화했기 때문에 집값이 잡혔다는 것은 착시현상이다. 그 이전에 시행된 정책들의 누적된 효과와 집값이 일정 수준을 이미 초과한 상태에서 일종의 마지막 발악 같은 상태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만약 다른 조치 없이, 유동성이 넘치는 국면에서 대출 규제만으로 집값을 잡으려 했다면 여러 부작용 내지는 편법들로 인해 실효를 얻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157쪽).
그렇다. 김 실장은 2011년에 발간한 책에서 분명히 말한다. 금융규제가 만능이 아니라고. 투기 차단에 효과를 발휘하는 세제와 금융규제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이 바뀐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금융규제는 필요하다. 김 실장이 후회하듯이 DSR 같은 조치를 조기에 도입하고, 집권 초기에 보유세 강화를 필두로 하는 세제 정책을 추진하지 못했던 참여정부의 경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보유세의 중장기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면 효과가 극대화되고 투기가 시작되던 시기, 즉 박근혜 정부 최경환 장관의 "빚내서 집사라"던 2014년으로 집값을 되돌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했다면 2020년 코로나 상황에서 유동성 홍수가 밀려왔다고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폭등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하면 이것도 억측일까.
[* 다음 기사 <부동산 개혁, '김수현'이라는 한계를 극복해야>(클릭)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