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년 전 지리산 장터목 산장에서 장인어른과 둘이 바라보았던 일몰이 아직도 기억난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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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어른과 나중에 처남과 아들도 데려가 넷이서 꼭 다시 오자고 약속을 했었는데, 올해 초 장인어른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작년부터 급격히 몸이 안 좋아지셨을 때도, 장인어른께서는 얼른 회복할테니 곧 지리산에 꼭 다시 가자는 말씀을 하시곤 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다시 다녀올 것을, 뭐가 그리 바쁘다고 내내 못 갔는지 후회가 되었다(관련 기사:
단 세 편의 수필, 다음 작품은 읽을 수 없습니다 https://omn.kr/244dj ).
장인어른과 한 약속을 아들과 지키다
그리고 어느새 11월이 다가왔다. 최근에 회사일로 만난 분이 주말에 가족들과 지리산 둘레길을 간다고 했다. '지리산'이란 단어를 듣는 순간 내 안 깊숙한 곳에 묻어둔 그 무언가가 꿈틀댔다. '아 가고 싶다. 정말 가고 싶다...' 혼자 가긴 왜인지 아쉽고, 마침 아들이 그때쯤 중학교의 마지막 시험이 끝날 때였다.
아들이 이제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공부하느라 더는 시간내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이 적시였다. 아들의 기분이 몹시 좋아 보이는 날 내가 물었다.
"아들, 이번에 시험 끝나고 아빠랑 11월 11일부터 12일까지 토, 일로 1박 2일간 지리산 둘레길 갈래?"
"난 상관없어."
'좋다'도 아니고, 그렇다고 '싫다'도 아닌 상관없다는 말. 하지만 그건 아들이 습관적으로 반응하는 긍정의 메시지였다. 사춘기가 한창이던 시절보다는 나아졌지만, 아들은 여전히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가고 있었다. 이러다 언제 안 간다고 할지 모르니 나는 얼른 버스표를 예매했다. 그다음 날 곧바로 아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아빠가 이미 버스표 예매를 다했다."
"그래? 아직 생각 중인데.... 일단 알았어."
역시 미리 끊길 잘했다. 다음엔 코스와 숙소를 정해야 했다. 가장 유명한 지리산 1,2,3코스를 모두 가고 싶었지만 일요일 저녁에 아들이 학원 일정이 있어서 서둘러 돌아와야 했다. 일단 토요일 오후에 도착해서 주천을 시작으로 운봉에서 마무리하는 1코스를 완주하는 게 목표다. 이렇게 하면 대략 15km 길이로, 약 6시간이 걸릴 것이다. 부지런히 가면 저녁때까지 종착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