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안에 호구 들었다.
최혜선
그 말을 듣고보니 남편이 무게와 부피가 다 돈인 항공수하물에 5kg가 넘는 호구를 꾸역꾸역 가져가고 죽도를 공항에서 따로 박스 포장을 해가면서까지 들고 간 것이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남편은 낯설고 물설은 곳에서 지금처럼 정기적으로 현지의 사람들과 만나서 운동하고 밥도 먹고 집에 초대도 받는 경험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롱디 결혼 생활의 나비효과
때로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전혀 알지 못한 채로 시작하거나 선택한 일이 인생의 방향을 바꿔놓기도 한다.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검도를 시작했던 일이, 취직 후에도 계속 운동을 하겠다고 회사 근처 검도장을 찾았던 일이 결혼할 상대를 결정한 것처럼. 공부를 하면서 운동을 꾸준히 계속한 것이, 비용의 압박을 무릅쓰고 호구를 챙겨온 것이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데 큰 힘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남편 삶의 궤적을 살피다 보면 산다는 건 무슨 씨앗을 뿌리는지 모르는 채 농사를 짓는 농부와 닮은 듯싶다. 뭘 키우는지 모르고 언제 싹이 날지 모르면서도 하루하루 정성을 들이며 뭔가가 안에서 자라나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는 점이 그렇다.
그렇게 아주 작은 싹을 땅 위로 틔워낸 사람을 옆에서 보고 있으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도 나의 시간과 정성을 흠뻑 머금은 후에는 땅 위로 싹을 틔워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우리집 십대 청소년들에게도 당장 눈에 보이는 성적이라는 결과물에 연연하기보다는 좀 더 긴 호흡으로 기다려줄 여유가 생겼다.
외롭게 지내는 남편을 위해 혼자서도 잘 지내는 법을 모색하다가 20대에 멋모르고 시작한 검도가 40대의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새삼 깨닫는다. 그러고나니 40대의 내가 60대의 나를 위해 시작하고 계속해야 할 일이 무엇일지도 생각하게 된다. 롱디 결혼 생활의 나비효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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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가는 남편이 누룽지보다 소중하게 챙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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