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프루스트의 전락대로라면 이 과정이 나답게 사는 길 위에 있는 것이겠죠?
박미연
고통스런 기억을 만나는 것... 내 인생을 사는 길
그 기억은 이렇습니다. 2살짜리 폴이 보는 앞에서 엄마와 아빠가 죽었는데요. 2층에 있던 피아노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천장이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1층에 있던 부모님이 피아노에 깔려 압사한 것이지요. 그 피아노는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것이기도 하고, 폴이 지금까지 30년동안 치고 있던 것이기도 해요.
너무 잔인하지 않나요? 지금 폴이 치고 있는 피아노가 부모님을 덮친 피아노라는 사실이. 이모들은 폴이 그걸 기억을 못한다고 생각했었던 거죠. 그의 엄마랑 아빠가 어떻게 죽었는지 말이에요. 거기다 그녀들의 욕심껏 폴을 피아니스트로 만든 것이고요.
흔히 그렇듯 폴도 두 살 때 부모님이 돌아가신 광경에 대한 기억이 없었을 거에요. 그런 기억은 생존에 굉장히 위협적이라, 뇌가 자체적으로 편집해서 망각의 세계로 옮겨놓았지 싶어요. 하지만 그의 무의식에는 그 때의 슬픔과 고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거죠, 그것이 지금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만들었죠.
프루스트 부인은 이것을 꿰뚫어 본 것 같아요. 그래서 충격 요법을 쓴 것이지요. 그 기억을 낚아서 만나고 곧 흘려버리라고요. 이모들의 꼭두각시적인 삶,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에서 벗어나도록 말이지요.
프루스트 부인은 사실 암 환자예요. 이제는 자신이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알고, 폴에게 편지를 남기는데요. 거기엔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나쁜 추억은 우릴 행복의 홍수 아래 가라앉게 해. 수도꼭지를 트는 건 네 몫이란다. 네 인생을 살아라."
이 영화를 본 느낌은 한편의 동화책을 읽은 것 같아요. 배경음악으로 폴의 피아노 연주와 프루스트 부인의 우쿨렐레 연주가 교차하죠. 눈과 귀가 아름다운데, 거기다 심오함까지 곁들여 있네요.
실은 저에게도 깊이 묻어두었던 기억이 있었어요. 제가 첫째 아이를 낳은 지 20여일 만에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저는 장례식에도 가지 못했죠, 그때 저는 일본에 살고 있었거든요. 저는 엄마의 죽음을 제대로 애도할 수 없었어요.
저는 당시 엄마 사진도 쳐다볼 수가 없었어요. 그것도 그 뒤로 20년이나 말이죠. 특히 엄마가 기독교 신앙 없이 돌아가셨다는 것이 저에겐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고통을 한 번도 제대로 표현한 적이 없었어요. 이렇게 저렇게 바빴던 삶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제, 나이가 들어 암 진단을 받고서야 비로소 엄마의 죽음을 직시하고 애도하게 되었네요. 암이 나에겐 낚시바늘이었던 거죠. 엄마를 잃은 슬픔과 고통을 낚아 눈물로 흘려보내니 삶이 조금씩 가벼워지더라고요. 마담 프루스트의 전략대로라면 이 과정이 내 인생을 사는 길 위에 있는 것이겠죠?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공유하기
당신이 잊은 고통스런 기억, 어쩌면 당신을 살릴 수도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