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라고 말할 때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픽사베이
먼저 '기분'이라는 단어의 뜻을 생각해 봤다. 기분은 뭘까. 기분이라고 말할 때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이렇게 막상 그 의미를 따져보면 태어나서 처음 듣는 말처럼 생소하고 낯설게 여겨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사전을 찾는다. 머리로 생각하는 단어의 뜻과 사전에 정의된 뜻을 맞춰보는 게 은근히 재밌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막상 내가 입으로 설명하려면 어려운 단어가 얼마나 많던지. '이게 이런 뜻이었다고?' 하며 놀라게 될 때도 있고. 사전에서 기분은 이렇게 정의되고 있다.
1. 명사 대상·환경 따위에 따라 마음에 절로 생기며 한동안 지속되는, 유쾌함이나 불쾌함 따위의 감정.
2. 명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나 분위기.
이런 설명은 사실 감이 잘 안 온다. 그래서 기분이 뭐라는 건지. 더 알쏭달쏭하다. 그때 '어린이 지식백과'가 눈에 띈다. 기분이란 단어를 어린이들에게는 어떻게 설명할까 싶어 내용을 들여다봤다.
기분[feeling, mood] (천재학습백과 초등 국어 용어사전)
어떤 일에 대해서 생기는 마음의 상태를 기분이라고 해요. 감정이나 느낌도 기분과 비슷한 말이지요. 즐겁다, 심심하다, 놀랍다, 부끄럽다, 슬프다와 같은 말들은 모두 마음을 나타내는 말, 즉 '기분'을 나타내는 말이랍니다.
[비슷한말] 감정이나 느낌.
역시 쉽다. 쉽게 쏙 이해된다. 기분이 뭔지 이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펼쳐놓고 보니 확실히 알겠다. 제목에도 기분(혹은 감정)이 있다! 이런 제목들이 그렇다.
우리는 왜 전두광을 전두환이라 부르지 못하나
지난 연말 영화 <서울의 봄>이 화제였다. 관객 수가 천만을 향해 가고 있을 무렵 보게 된 글이다. 누가 봐도 영화 속 인물 전두광은 전두환인데, '사실을 적시하더라도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는 한국의 법체계'를 피해 가기 위해 전두환으로 부르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했다. 한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거다.
나는 분노한다
시리즈 타이틀인데 대놓고 '분노한다'라고 말한다. 20대 청년이 정치 현수막 과열 사태를 보고 쓴 '동네 엉망으로 만드는 정치인들... 이 현수막 좀 보세요', 프랜차이즈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방관하는 국가를 지적하는 '평생 모은 돈 한순간 빼앗겨... 유명브랜드가 이래도 됩니까', 보수 정권의 언론 장악을 비판하는 "이게 뉴스냐"... 사장 바뀐 이후 KBS는 어떻게 바뀌었나까지. 따로 부연 설명하지 않아도 글쓴이의 화나고 어처구니없는 기분을 제목 한 줄에서 느낄 수 있다.
한국시리즈는 TV로 만족... 노년의 야구광은 서럽습니다
오랜 야구팬이지만 '온라인 예매' 앞에서 작아지는 노인의 현실을 담은 글로, 제목만 읽어도 서러운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공감하는 동년배들은 누구라도 눌러 볼 만한 제목이 아니었을까.
이 외에도 알고 보면 그게 다 감정이 드러나는 제목이었구나 싶은 문장은 지금 포털 사이트 뉴스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날의 기분과 감정이 표정에 다 드러나는 사람처럼 좋으면 좋은 대로, 화나고 억울한 대로, 슬프고 비통한 감정을 담은 제목들. 그걸 마주하고 있자면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는 듯한 착각도 든다.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한 현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이런 생각도 하게 된다. 사람들이 뉴스 기사를 굳이 챙겨보지 않는 이유가 어쩌면 보고 싶은 걸 더 많이 보고 싶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감정은 피하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하지만 모두가 아는 것처럼 인생을 살면서 좋은 일만 보고 듣고 경험할 수만은 없다.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 폴 에크먼이 인류의 보편 감정으로 꼽은 '기쁨, 슬픔, 혐오, 분노, 놀람, 공포'를 시시때때로 겪으며 사는 게 인생이다. 그 외 수많은 다른 감정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면에서 보자면 뉴스 역시 인간의 삶을 다루는 일이기에 감정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제목이 글의 얼굴이라면 그 표정에 다양한 감정을 불어넣어 독자에게 끌리는 혹은 독자가 궁금하게끔 포장하는 것도 나의 일일 테고.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