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와 함께 바닥에 붙어버린 문틀
최지혜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평생 뽑기 운이라고는 1도 없었던 내가 그러면 그렇지. 사전점검 업체를 쓸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30만 원 아끼려다가 300만 원 들어갑니다'라는 업체의 광고 문구가 떠올랐다. 그 와중에 줄줄이 올라오는 운 좋은 사람들이 남긴 후기가 가슴을 후벼 팠다.
"저희는 같이 간 지인이 집 잘 지었다고 놀라더라고요. 10개도 못 찾았어요."
"내 집을 처음 볼 생각에 설레서 잠을 못 잤는데 실제로 와보니 너무 좋아요."
반면 나는 그날 이후 과연 하자를 제대로 고쳐줄까 걱정되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선분양 후시공' 계속 이래야 할까?
생각해 보니, 집을 제대로 짓지 않는 건 건설사인데 왜 내가 이렇게 속앓이를 해야 하나 억울했다. 사전점검이라는 건 말 그대로 가서 둘러보는 개념이 아니었나? 집을 짓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한두 곳 정도 빼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100개씩 하자체크를 해야 할 상황을 사전점검이라 부를 수는 없다.
사실, 사전점검을 대행하는 업체가 있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아니, 얼마나 전국적으로 엉터리로 아파트를 지으면 그걸 전문적으로 하는 업체가 성행한단 말인가. 이쯤 되면 단순히 운이 좋아서 뽑기를 잘하기를 바라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부터 살 집을 보지도 않고 계약부터 하고 보는 이 기묘한 시스템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하물며 배추 한 포기를 살 때도 마트에서 직접 보고 싱싱한 것을 고르는데, 몇 억짜리 아파트를 보지도 않고 산다고? 과거에는 집이 부족했기 때문에 돈이 없는 건설사들이 집을 빨리, 많이 지을 수 있도록 특혜를 준 거라 쳐도, 지금까지 그 시스템을 계속 유지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걸까.
얼마 전 이슈가 된 일명 '순살 아파트', 철근이 빠진 아파트의 탄생 배경에는 '선분양 후시공'이라는 일종의 특혜가 있다. 시공사와 감리사에서 아파트 전 동을 다 살펴볼 수 없다면, 그래서 일부 특정 구간에 대한 샘플을 확인하고 합격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면, '선시공 후분양'을 해야 한다. 구매자가 다 지어진 집을 보고 살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되면 적어도 지금과 같이 업체를 써야만 하는 사전점검은 없어지지 않을까.
'순살 아파트'처럼 꼭 어디가 무너져야만 부실 아파트가 아니다. 새시가 들떠 겨울이면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아파트, 볕이 들어오지 않아 베란다 곳곳에 곰팡이가 피는 아파트도 제대로 지어지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전국적으로 수많은 아파트를 짓다 보면 그럴 수 있다고? 건설사들에겐 여러 아파트 중 하나일지 모르지만 당첨자들에게 내 집은 딱 하나, 여기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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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 한 달 전, 아파트 사전점검 뒤 잠을 못 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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