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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한반도 내 위안부 동원 불법 인정... 일본, 배상하라"

위안부 피해자들, 일본 정부 상대 손배소 승소... 1심 판결 뒤집혀... 1인당 2억

등록 2023.11.23 14:18수정 2023.11.23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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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23일 오후 5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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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신 감사하는 이용수 할머니 재판이 끝난 후 위안부 피해자 중 한 명인 이용수 할머니가 기뻐하며 감사의 말을 하고 있다. ⓒ 이정민

 
"한반도에서 일어난 위안부 동원 과정에서의 불법행위를 인정한다."
 
23일 서울고법 민사합의33부(재판장 구회근)가 이용수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청구를 인용하고 1인당 2억 원 위자료 지급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현재까지 형성된 국제 관습법상 일본국에 대한 대한민국의 재판권을 인정함이 타당하다"며 원심 판결을 깨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소멸 문제 등에 대해 피고 측 항변이 없어서 판단하지 않는다"면서 "피고 측 답변이 일절 없었다"라고 밝혔다.

앞서 1심 재판부는 국가의 주권 행위를 다른 나라에서 재판할 수 없다는 '국가면제'를 이유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각하한 바 있다.

박근혜 정권 당시인 2015년 이뤄진 한일합의에 대해 불복하며 이용수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및 유족은 2016년 12월 일본 정부를 상대로 1인당 2억 원 배상을 요구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2억 원은 2015년 한일합의에 따라 설치된 화해치유재단의 위로금인 1억 원보다 2배 높은 수준이다.

유일한 생존자 이용수 할머니, 눈물 흘리며 연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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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 부르는 이용수 할머니 재판이 끝난 후 위안부 피해자 중 한 명인 이용수 할머니가 기뻐하며 만세를 부르고 있다. ⓒ 이정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따로 할 말이 없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날 현장에서 판결을 지켜본 원고 중 한명인 이용수 할머니의 첫 반응이다. 그는 이번 소송에 참여한 원고 16명 중 현재 유일한 생존 피해자다. 휠체어에 몸을 맡긴 이 할머니는 2심 재판부의 판결이 믿기지 않는 듯 눈물을 흘리며 두 손을 번쩍 들고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는 "하늘에 계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도 감사를 드린다"라고 말했다.

피해자들을 대리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대응 TF 단장 이상희 변호사 역시 "법원에서 엄청난 결단을 내렸다고 생각한다"며 "법원 입장에서 사실 편한 길이라고 한다면 1심 판결처럼 하면 되는데 인권 중심의 국제법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시도되고 있다는 (대리인단의) 끊임없는 설득을 받아들였고, 결국 어려운 결단을 했다고 생각한다"라고 평가했다.

피해자와 대리인단의 반응에서 보듯 이날 판결은 쉽게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앞서 2021년 4월 서울중앙지방법원 1심 재판부는 '국가면제'를 이유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각하한 바 있다. 이 법리는 '주권면제'로도 불리는데,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삼아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관습법을 뜻한다. 즉, 일본 정부를 대한민국 법원에 피고로 세울 수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항소심은 이 논리를 버리고 '국가를 초월한 인권의 보편타당성'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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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하는 이용수 할머니 재판이 끝난 후 위안부 피해자 중 한 명인 이용수 할머니가 기뻐하며 만세를 부르고 있다. ⓒ 이정민


'국가면제' 법리 버리고 '보편타당한 인권' 움켜쥔 2심
세계 판결 흐름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1심 뒤집은 이유 설명


고등법원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은 만큼 이러한 결정을 내린 이유를 별도 자료를 내면서 자세히 설명했다. 특히 최대 쟁점이었던 '국가면제'에 대해 재판부는 "현재까지 형성된 국제 관습법상 일본국에 대한 대한민국의 재판권을 인정함이 타당하다"며 구체적인 사례를 덧붙여 입장을 밝혔다.

"영토 내에서 그 법정지국 국민에 대하여 발생한 불법행위에 대하여는 그 행위가 주권적 행위인지 여부와 무관하게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 내용의 국제관습법이 존재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UN 국가면제협약, 유럽 국가면제협약 및 미국, 영국, 일본 등 다수 국가의 국내법 입법 내용에 더하여 이탈리아 법원의 페리니 판결, 브라질 최고재판소의 판결, 2022 선고된 우크라이나 대법원 판결 등 '법정지국 영토 내 인신상 사망이나 상해를 야기하는 등의 불법행위'에 관하여 가해 국가의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 내용의 국가 실행이 다수 확인된다."

재판부가 언급한 '페리니 판결'은 국가면제를 적용한 대표적 판결이다. 1998년 이탈리아 1심과 2심 법원은 국가면제를 이유로 이탈리아인 루이지 페리니에 대한 독일의 2차 세계대전 중 불법행위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2004년 이탈리아 대법원은 '인권보호는 불가침'이라며 원심을 파기했다.

하지만 이 법리는 쉽게 정립되지 않았다. 독일이 2008년 12월 국제사법재판소에 이를 제소했고, 2012년 2월 국제사법재판소는 다수 의견으로 독일의 국가면제권을 인정했다. 이에 이탈리아 의회는 국제사법재판소의 다수 의견을 존중해 국내 법원에 국가면제 적용을 강제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그러자 이 법률에 대한 위헌심판이 제기됐고,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2014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판결을 내렸다.

고등법원 재판부는 원고 위안부 피해자들이 피고 일본을 상대로 어떤 피해를 겪었는지도 상세히 설명했다. "피고(일본)는 전쟁 중 군인들의 사기 진작 등을 목적으로 위안소를 설치·운영하면서, 당시 10·20대에 불과하였던 이 사건 피해자들을 기망·유인하거나 강제로 납치하여 위안부로 동원하였다"며 "피고의 위와 같은 행위는 대한민국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이 사건 피해자별 위자료는 원고들이 이 사건에서 일부 청구로 주장하는 각 2억 원은 초과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1965년 청구권 협정이나 위안부 관련 2015년 한일 합의 등이 위 손해배상청구권을 소멸시킬 수 있는지 여부, 소멸시효의 완성 여부 등은 피고(일본)가 변론하지 않아 이 사건의 쟁점 자체가 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역사적 판결... 일본, 지체 없이 배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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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판결 환영한다!"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의 일본국 상대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 선고 결과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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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기애애한 기자회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들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의 일본국 상대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 선고 결과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들으며 웃고 있다. ⓒ 이정민

 
이날 선고 후 이 할머니와 대리인단은 민변 대회의장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새로운 지평을 연 역사적 판결을 환영한다"며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원고 상당수가 운명을 달리했다. 일본은 피해자들에게 지체 없이 배상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소송 참여) 피해 생존자는 (이용수 할머니) 한 명이다. 시간이 없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솔직히 인정하고, 법적 책임을 전면적으로 이행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또 역사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세력에 강력히 대처해야 한다.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의 명예와 존엄이 회복되길 바란다."

이 자리까지 함께 한 이용수 할머니는 "내 소원은 할머니들이 눈감기 전에 일본이 진심으로 사죄하고 판결에 따라서 법적 배상을 해주시는 것"이라면서 "할머니가 한 분이라도 더 계실 때 일본이 잘못을 뉘우치고 사죄하고 법적 배상을 해야만 우리 일본과 한국은 이웃이 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상희 변호사는 향후 대응을 묻는 질문에 "기업이 피고인 강제동원 문제와 달리 이번 소송의 피고가 국가(일본)이기 때문에 강제집행 등에 대해서는 아직 법리적 검토가 필요하다"라며 "이번 판결은 인권회복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국제사회가 협력해서 일본 정부의 자발적인 사죄와 이행촉구를 하는데 이 판결이 충분히 활용될 거다. 이 판결이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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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 꽃다발 받는 이용수 할머니 이용수 할머니가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의 일본국 상대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 선고 결과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축하 꽃다발을 받고 있다. ⓒ 이정민

  
#위안부 #2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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