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영화제 폐막식 포스터24~25일 이틀간 영화 5편이 상영됐다.
제주4.3평화재단
제주4.3평화재단이 지난 6월 시작한 제1회 제주4.3영화제(집행위원장 이정원)가 21편의 영화를 상영하고 25일 폐막했다. 마지막 이틀간 상영한 영화는 5편으로 <레드헌트> <레드헌트2: 국가폭력> <쉰들러 리스트> <곤도 하지메의 증언> <포수>였다. 10시간에 걸쳐 모든 영화를 다 보고 난 느낌은 학살의 원인과 양상이 유사하다는 점이다. 극우세력의 등장과 부화뇌동, 합법의 탈을 쓴 국가폭력, 언론의 외면 또는 찬양 보도는 장소와 시간을 달리해 끝없이 반복되는 역사다.
특히 <레드 헌트>와 <쉰들러 리스트>는 극우정권 등장과 제주4.3학살, 유대인 학살과 가자지구 학살이 지나간 과거사나 딴 나라 현실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친일파의 후예는 여전히 지배세력임을 과시하고 있고, 반공은 지배 이데올로기의 한 축으로서 한국사회를 갈라놓는다. <레드 헌트>를 만든 조성봉 감독에게 혐의를 씌운 보안법은 여전히 살아있고, 서북청년단 정신을 계승했다는 이들이 제주4.3추모식 현장에 나타났다. 미국과 이승만 정권의 책임이 제대로 규명되기는커녕 트루먼과 이승만의 거대한 동상이 올해 세워졌다.
4.3의 진상규명은 미흡하나마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권에서 어느 정도 이뤄졌다. 그러나 조성봉은 오늘의 현실을 예언한 걸까? 그는 그 이전인 1997년에 만든 <레드 헌트> 마지막 내레이션에서 '제주4.3은 과연 끝났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쉽지 않은 과제임을 암시했다.
'제 몸을 찾지 못해 머리 하나에 다리 하나 팔 하나씩 끼워 맞춰 7년 만에 수습했다는 132구의 시신, 원혼들은 그렇게 뼈가 섞이며 한 몸이 되었다. 백조일손, 백 할아버지에 한 자손, 살아남은 이들이 그들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보도연맹 가입자, 입산자 가족들이 예비검속이라는 미명하에 바다에 수장되고, 제주비행장, 사라봉 등지에서 학살됐으며, 육지형무소에 수감됐던 4.3연루자들이 즉결처분되었다. 이것이 4.3의 마지막 학살이었다. 그러나 4.3은 과연 끝났는가? 은폐되고 왜곡된 역사를 앞에 두고 4.3은 끝났다고 말할 수 있는가?'
초토화작전에서 노획한 총 세 자루의 의미
조성봉은 초토화작전을 수행한 토벌대 지휘부의 명단을 자막으로 실었다. 김재능 서북청년단장, 탁성록 9연대 정보과장(마약복용자), 최난수 특별수사대 경감(일제 고등계 형사), 일본군 출신 홍순봉 제주도 경찰국장, 일본군 학도병 소위 출신 서종철 9연대 부연대장(육참총장 국방장관), 일본군 출신 함병선 2연대장, 일본군 지원군 준위 출신 송요찬 9연대장(육참총장 국방장관 국무총리), F.V. Burgess 9연대 미군사고문 등이 그 주역이다.
한민당을 빼고 좌우 가릴 것 없이 전국의 거의 모든 정당, 사회단체가 남한단독 5.10총선거를 반대하는 상황에서 미군정과 이승만정권이 본때를 보이려고 선택한 곳이 총선 거부를 단체행동으로 실천한 제주였다. 토벌대의 최고 지휘관인 로스웰 브라운 대령은 "사태의 원인에는 흥미가 없다, 나의 사명은 오직 진압뿐이다"라고 선언했다.
5월 말까지 3천여 제주민이 검거돼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그런데 노획된 무기는 고작 장총 3자루와 죽창 12개뿐이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 본부'라며 공개한 병원에서 나온 무기도 총 11자루, 수류탄 9개가 고작이었다. 제주도와 가자지구는 전쟁터가 아니라 압도적 무력을 가진 쪽의 일방적 학살터였다.
'인종청소' 현장이 가려지는 언론 현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의 미진한 통계에 따르더라도 가자지구에서 숨진 팔레스타인 사람은 1만4500명에 이른다. 그중 어린이가 6천여명, 여성이 4천여명이나 된다. 노인도 600여명에 이르러 열에 일곱이 노약자였다. 유엔 난민구호직원 108명과 의료진도 최소 225명이 숨졌다.
언론인 희생자도 지난달 말에 벌써 34명에 이르렀다. '전쟁의 첫 희생자는 진실'이라는 말도 있지만 언론인도 무차별 공격대상이 되는 바람에 학살의 진실은 가려지고 있다. 현지시각 25일 전세계 언론은 하마스에 납치됐다가 석방된 9세 소녀의 생환을 크게 보도했다. 그에 앞서 아버지는 딸이 납치돼 숨졌다는 얘기를 듣고 "그들(하마스)이 가자지구에서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는지 안다면 숨진 게 다행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세계를 울렸다'는 상봉 뉴스에는 멀쩡하게 돌아온 딸에 관한 묘사는 찾기 힘들다.
3만 가까운 제주민을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학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