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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수 부족인데... '간 큰' 정부의 이해할 수 없는 결정

[주장] 내년도 공정시장가액비율과 공시가격현실화율 동결하겠단 정부... 이 결정의 문제점

등록 2023.12.03 19:38수정 2023.12.03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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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우체국에서 직원들이 종합부동산세 고지서를 분류하고 있다. 올해 종부세 납부 대상자는 공시 가격 하락 등 영향으로 지난해보다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는 내년도 공정시장가액비율과 공시가격현실화율 모두 올해 수준으로 동결하겠다는 방침이다. 

두 값은 부동산 보유세, 즉 종부세와 재산세의 규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공시가격현실화율은 시가에 대비해 공시가격을 얼마로 산정할 것인지, 공정시장가액비율은 공시가격에서 얼마나 세금의 대상인 과표로 인정할 것인지 정하는 비율이다. 과표에 세율을 곱한 것이 세금이니, 과표를 결정하는 저 두 숫자는 세율만큼이나 중요하다. 

올해 아파트 공시가격현실화율 69%, 종부세 공정시장가액비율 60%로 어림을 해 보면 시세 30억 원짜리 아파트의 종부세 과표는 5억 4000만 원(시세의 18%) 수준이다. 만약 기존의 정부 로드맵에 따라 올해 적용되어야 할 공시가격현실화율 72.7%과 공정시장가액비율 100%를 대입하면 과표는 9억 8000만 원(시세의 33%)까지 올라간다. 윤석열 정부의 비율 조정 조치로 말미암아 과표가 무려 45%나 축소된 셈이다. 종부세는 누진구조이므로 과표축소는 그 이상의 세액하락을 동반한다. 그만큼 이 두 숫자는 종부세 세수에 결정적이다. 

세수부족에도 과표 동결, '간 큰' 정부

정부는 내년 공정시장가액비율과 공시가격 현실화율 모두 올해 수준으로 동결한다고 발표했으니 내년도 종부세 세수는 올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기재부는 올해 종부세 세수를 4조 7000억 원으로 예측하는데, 내년 세입예산안에서는 종부세 세수를 4조 1098억 원으로 봤다. 예상 세수가 줄어든 이유를 특별히 밝히지는 않고 있지만, 분납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023년에는 종부세가 많이 걷힌 2022년 종부세의 분납분이 상반기에 들어왔고, 올해 종부세 감소에 따라 내년에는 올해만큼 분납분이 들어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과년도 분납을 제외하면 순수한 내년도 종부세는 올해와는 차이가 별로 없다는 얘기다. 

문제는 정부의 세수부족 상황이다.


올해 59조 원 세수결손 사태의 대미를 장식할 세목은 다름 아닌 종부세다. 윤석열 정부는 이 결손사태의 주된 이유로 경기침체를 지목하고 있고, 이는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수출대기업들의 실적부진과 자산시장 경기 하락이 법인세와 양도소득세 실적을 무자비하게 끌어내렸다. 그러나 정부의 무분별한 부자감세 드라이브 역시 세수감소의 책임을 면할 수는 없는데, 그 증거가 다주택자 중과세 세율 완화, 공정시장가액비율과 공시가격 현실화율 축소라는 '삼단 콤보'를 맞은 종부세 세수의 드라마틱한 감소다. 

기획재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주택분 종부세 과세 인원은 지난해의 1/3 수준인 41만 명으로 급락했다. 이에 따라 주택분 종부세의 경우 약 1조 8000억 원이 줄어 지난해 절반 이하로 추락했다. 공정시장가액비율과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동결했고, 세법 역시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올해 세법개정안에는 종부세 개정안이 포함되지 않았다) 대폭 축소된 종부세 세수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3대 세목(법인세, 소득세, 부가세)만큼 결정적이지는 않지만 세입에 연 2조~3조 원 가량의 부정적 효과를 누적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종부세를 재원으로 하는 부동산교부세가 감소하면서 지방재정에 타격을 입힐 것이다. 올해 세수결손의 직격탄을 그대로 맞고 23조 원에 달하는 '삭감 절벽'에 내몰린 지자체들은 앞으로도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어야 한다.  

와해된 조세법률주의

대통령제 국가에서, 특히 여소야대 국면에서 '시행령 정치'는 으레 정치적 옵션으로 행사된다. 윤석열 정부에서 국민들은 그 극한을 봤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이른바 '등'을 이용한 '검수완박' 무력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경찰국을 활용한 경찰 통제 시도가 대표적이다. 넘어서기 어려운 대의기구 국회의 벽을 편리한 행정명령으로 우회하는, 민주주의의 한계를 시험하는 수법들이다. 

이러한 시행령 정치의 또다른 극한은 다름 아닌 공정시장가액비율과 공시가격현실화율을 이용해 정부가 보유세를 대폭 깎아주는 행위다. 헌법적 가치로 인정되고 있는 '조세법률주의'와 정면으로 대결하는 과세 행정이기 때문이다.

근대 민주주의 국가의 탄생은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미국 독립전쟁의 구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부가 국민의 대의를 거치지 않고 세금을 거두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시민혁명의 원천이 되었다. 조세와 관련된 사항들, 특히 세목과 세율은 인민의 의사에 따라 대표에 의해 결정될 일이지 임의로 행정부의 의사에 따라 정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헌정의 기초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종부세는 어떤가. 이명박 정부 시절 종부세법을 폐지할 수는 없으니 정부가 임의로 세액을 조절하기 위해 도입한 공정시장가액비율과 공시가격이 시가에 비해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어 있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공시가격현실화율이 정부의 종부세 감면도구로 기민하게 활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행정부의 의사에 따라 세수가 널뛰기를 한다. '대표 없는 과세'의 전형적 사례지만, 감세의 '달콤함'에 원칙의 와해가 방치되고 있다.

유사한 사례로 유류세가 있다. 정부가 국회 동의 없이 임의로 수년 동안 37%까지 세금을 깎아줄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는 건 문제적이다. 이런 행정부 재량권한은 적시에 소방수로 활용될 수도 있지만, 정치적 이해나 특정 집단의 청원이나 단기주의적 발상에 따라 세율이 요동칠 가능성도 늘 존재한다. 그래서 원칙이 있는 것이다.

보유세 목표세율을 입법으로 정하고, 공정시장가액비율과 공시가격현실화율은 폐지해야 대한민국에 부동산 보유세가 제대로 된 세금으로 정착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정부의 조치에 과세대상자의 2/3가 한방에 사라지는 과세행정이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 어울리는 모습이라 할 수 있을까? 

종부세-재산세 중복부분 계산 문제

공정시장가액비율의 존재 때문에 신경쓸 이유가 없는 관념적 문제가 심각한 논쟁으로 번지기도 한다. 종부세-재산세 중복부분 계산 문제가 대표적이다.

말인즉슨 이렇다. 종부세와 재산세는 같은 부동산을 대상으로 부과하는 세금이다. 그러니 과표가 중복이 되고, 이중과세를 피하기 위해서는 이 중복부분을 빼줘야 한다. 그런데 이 중복부분을 어떻게 계산해야 하는지가 문제가 된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의 존재 때문이다. 

종부세와 재산세에 각각의 과표를 계산할 때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적용한다. 그렇다면 이 중복부분에도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적용해야 하는가? 현행법은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적용한다. 그런데 이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재산세 과세액이 온전히 종부세 과세범위에 포괄되므로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적용하지 말고 재산세액을 종부세에서 그대로 빼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해석의 차이는 매우 크다. 특히 공정시장가액비율이 낮아질수록 차이는 더 커진다. 종부세에서 공제할 재산세액의 크기가 이 비율에 따라 요동치기 때문이다. 사실 공정시장가액비율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경쓸 필요도 없는 문제지만 십수 년째 존재하고 있으니 논쟁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종합부동산세는 그만큼 대한민국의 수많은 욕망과 이해를 건드리는 첨예한 사안이다. 부동산 자본이득을 규제하려는 힘과, 부동산을 통한 이익을 긍정하는 의지가 격렬하게 투쟁해 온 역사를 표상한다. 그 결말은 아직 알기 어렵지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정책을 원칙에 맞게 운용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이루려는 노력 없이는 제도적 불안정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정 과세대상자의 이해에만 충실한 윤석열 정부의 모습은 여기서 너무 멀리 있는 듯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최기원 시민기자는 국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종부세 #공정시장가액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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