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점, 보험회사 지사, 신문사 지국, 당구장, 개인택시 등 다양한 분야에 사업을 펼쳤던 남편은 등산 애호가 였다고 한다.
오희수
남편을 도와 바지 단 뜯고, 단춧구멍 내는 등의 일을 하면서 어깨너머로 배운 옷수선 기술이 오씨의 평생업이 될 줄이야. 그에 따르면 남편은 다소 '돈키호테' 같은 면이 있었던 모양이다.
"양복점은 4년 운영했지. 기성복이 나오면서 수지가 맞지 않아 결국 포기했어. 그러다가 시작한 사업이 택시운송사업이야. 말이 택시운송사업이지, 운전면허증도 없이 덜컥 택시 1대부터 구입한 거야. 운전기사를 고용해 운영하다가 그해 운전면허증을 따고 직접 몰기도 했는데, 1년도 안돼 그만뒀지. 운전을 잘 못했어."
그 뒤 남편의 사업은 보험회사, 신문사지국, 세탁소, 당구장, 건강보조식품 대리점 등 다양한 분야로 이어졌다. 오씨는 "직업이 12가지면 먹을 게 없다고 했는데, 딱 그짝이야. 아무튼 (남편이)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던 것 같아. 대신 남편 때문에 내가 마음 고생을 좀 했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면서 "큰 딸 낳기 전에 옷수선을 시작했으니까, 50년 가까이 옷수선을 했지. 그저 옷수선만 매달렸어. 남편은 이 공간에서 조선일보 덕산지국을 한 30년 운영했구. 중간에 동아일보, 한국경제신문도 다뤘는데 조선일보를 가장 오래했어. 그러다가 남편이 7년 전에 암 판정을 받고 그해 세상을 떠나면서, 신문사 지국 일도 자연스럽게 정리한 거야"라며 "지금은 크게 돈 벌 생각이 있는 건 아니고, 그래도 옷수선을 하면서 용돈벌이 하고, 가겟세 정도는 내니까. 또 시력도 받춰주니까 손을 놓지 않는 거지"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