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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깎아주며 결혼 독려? 이 정책의 숨은 목적

결혼증여공제 1억, 상류층 결혼에 나라가 축의금 내주는 꼴... 자산격차만 벌릴 것

등록 2023.12.06 20:29수정 2023.12.06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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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자료사진) ⓒ 픽사베이

 
지난 11월 30일, 결혼 또는 출산시 1억 원의 증여재산 추가 공제를 제공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를 넘어섰다. 

자녀가 결혼 또는 출산을 하는 경우 주택자금 등을 증여하게 되면, 기본공제포함 총 1억 5000만원까지 증여재산 공제를 해 주겠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5000만 원 이상의 증여에 대해서는 세금을 내야 했지만, 이제는 1억 5000만 원까지는 증여세 없이 증여를 할 수 있게 된다. 

정의당만 격렬히 반대하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밀실 합의에 가까운 절차를 거쳐 해당 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심사소위에서 반대 의사를 표명했던 민주당이 왜 돌연 마음을 바꿨는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시장경제의 불평등한 분배구조를 개선'하고 '누진적 보편증세 및 조세지출제도를 개편하여 복지국가의 발전에 필요한 세수기반을 확충한다'는 더불어민주당 강령과는 정확히 반대 방향의 결정이라는 점이다. 문제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상위 몇 퍼센트에게 혜택이 가는가?

먼저 혼인증여공제로 혜택을 받는 가구가 어느 정도가 되느냐부터 분석이 필요하다. 언론에서부터 의원실발 분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견해가 있다. 상위 13% 수준에 그친다는 견해도 있고, 전체의 78%까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국회 전문위원은 하위 70% 수준의 가구까지도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이런 분석들은 대체로 가계금융복지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수만 가구의 샘플 중 구체적으로 증여세를 낼 만할 가구가 어떤 가구인지 찾아내는 것이다. 따라서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는지에 따라 범위가 크게 바뀔 수밖에 없다. 어떤 입장이 사실에 부합할까?

혼인증여공제로 평균 이상의 가구가 혜택을 본다는 분석들은 기준을 지나치게 느슨하게 잡았다는 문제들이 있다. 저축성 금융자산이 아닌 순자산이나 금융자산을 기준으로 잡는 방식은 곤란하다. 순자산 5억 원이 있으면 자녀에게 5억 원의 증여 여력이 있는 것인가? 당연히 아니다. 대한민국 가구의 자산은 대부분 부동산이다. 부모가 자기 집을 팔아서 자녀에게 결혼자금을 증여하는 것은 더러 있기야 하겠지만 비현실적인 가정이고 권장해서도 안 될 일이다. 마찬가지로 금융자산 기준도 곤란하다. 전·월세보증금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축성 금융자산 기준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것조차도 사실 꽤 느슨하게 본 측면이 있는데, 깰 가능성이 희박한 보장성보험이나 연금 등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는 넘어가 주자. 

둘째로 자녀 수다. 국민 다수가 혜택을 본다는 분석들은 미혼 자녀 한명에게만 증여한다고 가정하는데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30년 전 평균 출산자녀수는 2명이었다. 부모들이 1명에게만 몰아서 증여할 리는 없으니 이 점도 감안해야 한다. 

셋째로 전통적으로 세법상 비과세되는 항목들이다. 이를테면 혼수나 예식홀, 예단, 신혼여행 같은 비용들은 증여한다 해도 세법상 과세하는 일이 없다. 듀오웨드의 조사에 따르면 해당 항목의 평균 비용이 5073만 원에 달한다. 즉 부모가 해당 비용을 지원해 준다면 어차피 과세되지 않는 것이니 관례상 공제액이 사실상 추가적으로 존재하는 셈이다. 역시 고려가 필요하다. 

이상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가계금융복지조사 마이크로데이터상으로 혼인증여공제 신설을 통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가구는 자산상위 10~20% 이상인 것으로 나타난다. 더 늘려 잡을 수도 있겠지만 이 경우에는 약간의 가정이 필요하다. 보증금을 빼서 증여를 한다거나 혼수비용은 지원하지 않은 채 집만 해 준다거나. 썩 현실적인 상황은 아닐 듯하다.   

이건 국세청 자료에도 부합하는 결과다. 지난해 결혼한 30대는 19만명인데, 5000만 원이상 증여받고 증여세 낸 30대는 4만명 남짓이다. 증여세를 내기만 했어도 상위 25%라는 이야기인데, 30대 증여 전부가 결혼 때문일 리가 없으니 실제로는 비율이 훨씬 낮다고 봐야 한다. 2019년의 한국보건사회연구소의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자녀 결혼시 주거자금을 아예 주지 못한 부모가 전체의 61%였고, 증여세를 거의 내지 않는 6000만 원 미만으로 보면 80%에 달했다. 

그러니 국민 대부분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종류의 분석은 신빙성이 매우 떨어진다. 명백히 상위 10~20% 이상을 위한 정책이라는 점은 인정하고 가야 한다. 2022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기준으로 자산상위 15%는 순자산이 8억 원, 연소득이 9000만 원 가량인 집단이다. 

혼인증여공제 확대 정책의 숨은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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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 11월 15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서 류성걸 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여기에서 바로 의문이 생긴다. 저 순자산이 8억 원이고 연소득이 9000만 원인 가구의 자녀에게 증여세를 깎아주면, 정부가 말하는 대로 결혼을 장려하는 효과가 있을 것인가?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한국노동연구원의 <노동과 출산 의향의 동태적 분석>을 보면 모든 연령층에서 소득이 높을수록 혼인 비율이 증가하는 양상이 나타난다. 30대 중후반 남성의 경우, 소득 하위 10%중 결혼경험이 있는 사람은 47%에 불과했지만 상위 20%는 92%에 달했다. 

'혼인율을 높여야 한다'는 정책목표의 정당성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정책의 수혜자가 이미 집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 여건이 풍족한 이들인데 이들에게 대규모의 세금혜택을 주는 것이 결혼지원 정책일 수가 없다. '상류층의 혼인에 나라가 거액의 축의금을 내 주는 것'이 혼인증여공제 정책의 현실적 양태다. 

국민들도 이미 이 정책이 혼인율과 상관없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인지하고 있다. 한 결혼정보업체가 지난 8월에 25~39세 미혼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혼인증여재산 공제가 혼인율 상승에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다는 의견이 56%에 달했다.

정부 당국자들도 해당 정책이 혼인율 제고에 도움이 될 거라고 진심으로 믿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이 정책의 숨은 목적은 따로 있다고 봐야 한다. 직접적으로 밝히지는 않고 있지만, 최근의 흐름을 봤을 때 상속·증여세 전반을 개편하기 위한 전초전 차원이라는 추론이 유력하다. 

상속세의 유산취득세로의 전환이나 상속·증여세율 조정, 공제 확대와 같은 감세 정책에 대한 리트머스 시험지 성격이라는 것이다. 결혼을 명목으로 한 증여 공제 확대로 야당의 반응과 여론의 추이를 보면서 상속·증여세를 중심으로 한 집권 후반기 감세 드라이브를 노린다는 전략이다. 혼인율 같은 목표는 머릿속에서 지우고, 부자감세의 맥락에서 봐야 할 정책이라는 뜻이다.

운으로 생긴 1억 5000만 원 소득에 비과세가 합당?

이 혼인증여공제라는 제도의 핵심 서사는 이런 것이다. "(수도권) 집값이 많이 올랐으니 3억짜리 전세 하나 정도를 장만하는 데 양가 부모가 1억 5000만 원씩 지원해 주는 정도로는 세금을 내지 않게 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검토해야 할 여러 사항들이 있지만 가장 먼저 반문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갑작스럽게 부모 찬스로 1억 5000만 원의 소득이 생겼는데 이를 전액 비과세해야 하는 근거는 또 무엇인가?"

국세통계연보 자료를 근거로 계산해 보면, 2021년 전체 증여재산가액 대비 증여세액은 16.7%(증여재산가액 53.8조 원, 결정세액 9.0조 원)로 법인세 실효세율과 유사한 수준이다. 1인당 평균 10억 원을 증여받은 증여세 상위 10% 집단의 증여재산가액 대비 증여세액도 22.0%(증여재산가액 27.8조원, 결정세액 6.1조원)에 그친다. 1인당 평균 1억 원을 증여받은 상위 50% 집단의 증여재산 대비 증여세액은 8.3%(증여재산가액 2.7조원, 결정세액 0.2조원) 로 근로소득세 실효세율 6.5%와 비슷한 수준까지 하락한다. 

이미 실질적인 증여세 부담이 근로소득세 부담과 유사한 지경인데, 이것마저 면제해주는 것이 형평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증여는 노동이나 사업과 같은 사회적으로 권장되는 경제적 성취의 결과물이 아니라 순전히 운에 의한 소득이기에 높은 세율로 과세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각종 경제신문 등은 대한민국 증여세의 높은 명목최고세율이나 낮은 공제금액을 근거로 증여세 축소를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OECD국가들의 전체적으로 높은 조세 부담, 특히 한국보다 월등히 높은 소득세율이나 자본이득세의 존재 같은 것은 말하지 않는다. 조세정책적으로 소득세율이나 보유세, 자본이익에 대한 과세율을 높일 것인지, 아니면 상속증여세의 비율을 높일지는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세정책 전반의 고려 없이 상속증여세 합리화의 탈을 쓰고 시도하는 윤석열 정부의 원포인트 감세가 이미 상위 20%의 자산이 하위 20%의 64배에 달하는 엄청난 수준의 자산격차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바람직한 방향일지는 의문이다. 

올해 세법개정안에는 출산 및 결혼 관련 조세지원이 여럿 포함되어 있는데, 국회예산정책처의 분석에 따르면 1인당 세수효과가 최대 연 54만 원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 혼인증여공제 확대 하나로 신혼부부간 엄청난 격차가 발생한다. 3억 원을 증여받을 수 있는 부부의 경우 바로 2000만 원의 혜택이 발생하고, 증여세의 누진구조상 증여액이 커질수록 혜택은 더 크게 증가하게 된다. 

즉 찔끔찔끔 시행하는, '부스러기' 조세정책 모음을 한방에 아득히 능가하는 자산격차를 만들어내는 게 바로 이 혼인증여공제 정책인 것이다.

'세대간 부의 이전'의 허구성

정부여당은 정책 추진의 또다른 명분으로 '세대간 부의 이전'을 내세운다. 고령층에 집중되어 있는 부를 청년 세대들에게 분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가 많은 주장이다. 우선 전제부터 이상하다. 혼인증여공제가 생긴다고 하지 않을 결혼을 더 하고, 하지 않을 증여를 더 할 것인지는 전혀 검증되지 않았다. 세율이 높다는 이유로 상류층 부모가 결혼자금이 필요한 자식에게 증여를 하지 않을 것인가? 도무지 그렇게 생각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증여세율과 상관없이 국민들의 자산 증가에 따라 증여세와 상속세 규모는 대폭 늘고 있다. 국세통계연보상 2018년 27조 4000억 원이었던 증여재산가액은 2021년 50조 5000억 원까지 늘었다. 2018년 20조 6000억 원이었던 총 상속재산가액은 2021년 66조 원으로 확대됐다. 설령 정부의 말대로 증여 촉진 효과를 미미하게 인정한다 해도 조삼모사에 가까운 일이다. 어차피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에 의해 세대간 부의 이전은 언젠가 이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정부 자신이 부의 재분배 기능을 포기하는 증여 확대를 세대간 부의 이전으로 포장하는 것이 난센스다. 증여에 의한 세대간 부의 이전은 '핏줄에 따른 이전'으로 한 가문 내에서 이뤄지는 일이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이들은 애초 월등한 교육기회와 직업적 성취를 획득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가문 내 부의 이전은 세대 내 불평등 강화를 의미할 뿐이다. 

나라가 정말로 청년세대를 걱정한다면 핏줄에 의한 부의 이전을 보호하고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재분배 강화를 통해 극심한 불평등이 공정한 기회를 박탈하는 것, 특권계급이 고착화하는 것을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 기후위기와 지역소멸과 같은 미래 세대 공통의 위협에 맞서는 데 재정을 투입해야 하지 않겠는가. 무엇이 중한가?
덧붙이는 글 필자는 국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결혼 #증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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