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트비아-러시아 국경검문소라트비아 공무원은 아주 친절하다
오영식
그런데 조금 전에 내 서류를 갖고 갔던 여직원이 다시 나와서 물었다.
"비자도 주세요. 비자는 없나요?"
사실 처음에 비자를 달라고 할 때 말할까 망설였었기 때문에 비자를 달라고 말할 걸 예상했던 나는 바로 쓸데없는 말까지 붙여가며 우렁차게 대답했다.
"네, 저는 대한민국 사람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은 대부분 국가에서 비자가 필요 없습니다.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데 혼자 괜스레 뿌듯한 마음을 느끼며 대답하자 그 직원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잠시 뒤 바로 서류를 되돌려 받았다. 바로 옆에 있던 보험사에서 차량 보험에 가입한 후 국경을 빠져나왔다. 아들과 만세를 불렀다.
"태풍아, 우리 이제 러시아 완전히 빠져나왔다. 이제 라트비아야."
"어? 진짜? 이제 러시아 아니야?"
"어, 이제 아빠 카드도 쓸 수 있고, 예약이나 이런 것도 다 한국에서처럼 이용할 수 있어. 아휴~ 아빠, 너무 기분 좋다~"
"진짜야? 아빠, 그러면 우리 오늘 치킨 먹자~"
"그럴까? 치킨 먹고 파티하자."
"파티? 와~ 좋아~ 예쓰으~"
러시아는 은행뿐만 아니라 숙박 예약, 지도 그리고 각종 국제기업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사용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간단한 인터넷 예약이 아무것도 되지 않아 여간 고생한 게 아니었는데 이제 라트비아에서부터는 모든 게 해결돼 마치 한국에 입국한 것처럼 편안한 기분을 느꼈다. 마음이 조금 여유로워지자, 나는 그동안 여행하기에 조금 불편했을 뿐 러시아에도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지금의 나'를 만든 문장이 하나 있다. 30여 년 전, 당시 10대 소년이던 나의 심금을 울린 문장은 바로 TV <동물의 왕국>에서 나온 성우의 내레이션이었다. 사바나 초원 위로 붉게 물든 하늘을 보여주며 성우가 이렇게 내레이션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