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신청서 첨부서면 목록파산신청서에는 채무자회생법이 요구하는 파산신청 조건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심사하기 위해 각종 첨부서면을 붙여야 한다. 이 문서들은 채무자 자신이 살아온 삶의 기록이자 증명서이다.
배운기
회생법원에서 회생파산 업무는 주로 판사나 회생위원이 담당한다. 각종 회생파산 신청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신청인과 경제적 삶의 현황과 복잡다단한 여정이 보인다.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떻게 사회생활을 해왔으며, 현 경제상황이 어떠한지가 적나라하게 기재되어 있다.
기록을 살펴보면 경제적 파탄 상황에 있는 한 개인의 삶의 고비와 굴곡을 엿볼 수 있다. 신청서에 첨부해야할 서면에 가족관계나 개인 신분증명과 직업에 관한 사항, 채무 등의 부채증명, 현재의 직업과 수입 등 모든 상황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나는 누구이며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떻게 경제활동을 하였는지를 말해야 한다. 개인회생이나 파산신청서에는 자신이 현재 채무초과 사실과 자신의 직업에 관한 사항을 기재한다. 직업사항을 보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직업들이 망라된다. 그만큼 다양한 직업세계를 가진 사람들이 어떤 연유로든지 경제적 파탄을 겪는다는 사실이다. 전문직이나 연예인이라 해서 예외는 없다. 오히려 잘 나가는 직업군의 파탄은 그 규모도 예사롭지 않다. 직업은 현재형과 과거형 시제가 공존한다.
신청인 개인의 개인정보부터 혼인여부나 가족관계 등이 첨부된다. 가족구성원의 수는 특히 회생신청에서 의미가 있다. 최저생계비를 산정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파산의 경우에는 경제적 회생불능에 이르는 주요한 경력을 빠짐없이 기록해야하고, 지급불능의 시기와 사유를 진술해야 한다.
둘째는 누구로부터 빚을 얻고 현재의 상황이 얼마만큼 채무초과인지를 설명하고 증명해야 한다. 채무자인 신청인의 수입과 지출에 관한 현황과 현재의 생활상황을 기록한다. 현재의 재산목록을 상세하게 보여줘야 하며 거주상황에 대한 정보도 기재해야 한다. 자가 소유인지 임차인인지, 각종 세금 정보 근로소득에 관한 사실도 드러내야 한다.
채권자 목록을 통해 자신이 누구로부터 돈을 빌리고 어느 정도 변제금액이 남아있는지도 나타내야 하며, 이에 관한 부채증명서도 첨부해야 한다. 채권자는 신청시점을 기준으로 빠뜨리지 않고 기재하는 것이 타당하다. 만약 고의로 채권자를 누락하는 경우 법이 정하는 면책의 효력을 받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어떤 사정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이 파탄이 되고 결국 회생파산제도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을 기록해야 한다. 그 사정에는 실직과 영업파탄, 생계비용과 사업비용 등에 대한 설명을 적실하게 드러내야 한다. 이런 저런 사정 때문에 채무초과 상황이 되었지만, 현재 경제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회생신청을 통해 일정액의 변제하고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게 바람직스러움을 말해야 한다. 반면 직업 활동과 미래소득이 보장되지 않는 이들은 파산신청을 통해 채무를 탕감 받는 게 타당하다는 증명을 하여야 한다.
신청인이 제출한 서면은 평면적이고 객관적이지만, 개인의 고통은 입체적이며 주관적이다. 메말라 보이는 여러 서면(최근에는 재판사무시스템의 화면)을 보다보면 채무자의 인생궤적과 남다른 고통의 뿌리가 보인다. 물론 채권자들의 억울함과 쓰라림도 읽지 않을 수 없다. 이는 타인의 경제적 실패를 검증하고 새출발을 가능케 하는 심사자들이 가져야하는 운명이자 멍에다.
넷째는 사건을 처리하는 담당자들의 고뇌도 엿볼 수 있다. 회생파산신청의 경우에는 법에 각하사유와 기각사유를 정하고 있어 어떤 사건이 중간에 중단될 수도 있다. 왜 어떤 사건은 중간에 중단했고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왜 어떤 사건은 지지부진하고 판단과 결정 과정이 어렵게 거칠 수밖에 없었는가를 살필 수 있다. 사건이 복잡하거나 규모가 크거나 채권자들의 수가 많을수록 담당자들의 부담과 결정의 어려움도 커진다.
'보통의 우리'가 기억해야할 삶의 기록은?
순간의 삶을 기억하기 위해 우리는 사진을 찍는다. 사진은 수십 년 전의 내 모습과 가족들의 얼굴을 보여준다. 그 속에는 풀어낼 이야기와 잊히지 않는 웃음과 시간이 담겨있다. 비록 경제적 삶이 한 장의 종이에 담기는 것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기억하고 소망하고 싶은 사항을 기록하고픈 욕구는 있을 터이다. 누구에게나...
우리의 삶은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들을 지켜내기 위한 애잔한 투쟁이다. 한 개인의 삶은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부분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양자는 서로 교차하며 명암을 주고받는다. 개인의 삶속에서 양측의 형식과 실질을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이렇게 공사 양면으로 나아가는 삶은 다양한 공적 사적 서면에 성취와 좌절의 기록을 남긴다. 공사다망(公私多忙)이라는 표현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누군가가 태어나면 가족관계등록부에 출생자로 신규 기록되고, 학생이 되면 학생생활기록부에 흔적이 남으며, 경제활동을 하게 되면 은행계좌와 직업이력이 만들어진다. 부동산을 구입하면 부동산등기부와 대장에 권리자로 기재되고, 분쟁과 갈등이 재판으로 치달으면 소송기록과 다른 공적장부에 남게 되며,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면 개인회생신청이나 파산면책 사건의 당사자로서 여러 공적기록에 남는다.
어떤 개인의 삶이 성공적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을까? 자신만의 만족과 사회적인 평가가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자기의 이유로 자신답게 살았는가?'에 대한 답이 중요하지 않을까.
누구나 소년등과(少年登科)와 유방백세(流芳百世)를 꿈꾸지만, 현실은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소시민의 삶이 전부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소년등과한 이들이 오만과 독선으로 망치는 세상을 보았고, 유방백세가 아닌 유취만년(乳臭萬年)의 주인공이 되었던 이들을 봐온 경험이 있다. 지금도 그러하지 아니할까?
평범한 대부분의 삶은 채근담의 문장처럼 '낮은 곳에 거처한 뒤에야 높은 곳의 위태로움을 알고, 어두운 곳에 있은 뒤에야 밝은 곳을 향함이 지나치게 드러남'을 알게 된다. 수많은 삶의 굴곡에도 자신만의 멘탈과 리듬으로 극복하고 나아갔을 때 오롯이 나라는 존재로 기록될 것이다. 공적 사적 문서에 꽉 찬 존재가 아닌 동양화적 여백을 두었을 때 우리의 삶은 진정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수많은 이들의 삶의 기록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나의 이유로 나답게 살았는가, 살고 있는가? 내 인생성적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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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교육원 교수를 거쳐 현장에서 밥벌이 중입니다. 부모와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을 꿈꾸고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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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생파산신청서와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보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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