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어진 벽담초토화한 중문리 섯단마을의 허물어진 벽체 안에 자란 거대한 삼나무가 60여 년 세월의 흐름을 말해준다.
이봉수
"중문관광단지로 알려진 중문은 제주도에서도 조천과 함께 민족의식이 강한 지역이었습니다. 일제 때는 항일운동을 이끈 선각자들이 많이 나왔고, 친일세력을 앞세운 미군정의 억압과 남한 단독 총선거에 반대해서 일어난 4.3항쟁에도 주민들이 적극 가담했죠."
제주4.3평화투어 기획위원장을 지낸 오승국 시인은 지난 2일 "저도 두 번째 가는 유령의 마을 같은 곳"이라며 4.3유적지답사단을 인적이 완전히 끊긴 서귀포시 중문동 밀림 속으로 끌고 들어간 뒤 "마을이 통째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중문2리 중심이던 섯단마을(사단마을)은 1948년 11월 11일 중산간지역 초토화작전이 시작되자 마자 마을 전체가 불타고 수많은 희생자를 냈다. 이들 마을이 지금까지 폐촌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뭘까?
육지를 오가며 읽은 여성작가 소설 3편
제주4.3평화재단이 연 시민아카데미의 다섯 차례 강연과 답사에 참가한 뒤, 6일간 대구와 서울에 볼일이 있어 다녀왔다. 섬 생활은 육지를 오가는 게 불편하지만 '강제독서'를 하게 되는 장점도 있다. 시외버스와 비행기, KTX와 지하철에서 뭘 읽을까 생각하다가 미리 구해 둔 소설책 3권을 여행가방에 넣었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와 <소년이 온다> 그리고 조선희의 <그리고 봄>.
요즘 소설책은 판형이 작아 휴대하기도 편하다. 키아오라리조트에 묵는 여행객도 책을 가져왔다 하면 대개 소설이나 에세이고 카페에서 집어 드는 책도 그렇다. 한강은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려고 제주에서 한달살이를 하며 4.3 관련 이야기를 취재했는데, 2021년 가을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고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라 생각했고, 결국은 우리가 연결돼 있다는 믿음을 붙잡고 소설을 썼습니다. … 작별할 수 없는 마음, 작별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는 마음 앞에 깊이 머리 숙입니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주인공 경하는 광주5.18항쟁에 관한 소설을 쓰다가 악몽을 꾸게 되는데 주인공은 바로 작가 자신이기도 하다. 그는 2014년에 쓴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계엄군에 대항하다 죽게 되는 중학생과 주변 인물들의 고통받는 내면 세계를 그렸다.
경하가 인선의 긴급호출을 받은 것은 그 친구가 김포공항에서 가까운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제주 중산간지역 외딴집에서 홀로 목공예를 하며 생계를 꾸리는 인선은 전기톱에 손가락이 잘려 과다출혈로 졸도했다가 봉합수술 전문의가 없는 제주를 떠나온 거였다. 인선은 사흘간 방치된 앵무새가 굶어 죽었을지도 모른다며 바로 지금 자기 집에 가 있어 달라고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