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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들고 쪽방촌 찾는 정치권... 정작 정책은 '거꾸로'

[2023 홈리스 추모제 기획연재 1] 모든 홈리스를 위한 적정 주거, 지금 당장!

등록 2023.12.14 13:55수정 2023.12.14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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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도부터 매해 동짓날(12.22.), 서울역 광장에서는 ‘홈리스추모제’가 열립니다. 12월 4일, 47개 인권사회단체들로 구성된 ‘2023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은 기자회견을 열고 ‘2023 홈리스 추모행동’을 선포하였습니다. 전체 인구집단보다 4배 이상 높은 홈리스의 사망률, 최근 8년간 10배 넘게 증가한 거리노숙 경험자의 사망률은 홈리스를 추모하는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지 가리킵니다.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은 추모행동 기간 동안 <오마이뉴스>를 통해 ‘주거’, ‘추모’, ‘공존’을 키워드로 우리 사회, 정책이 바뀌어야 할 점들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기자말]
"누가 주거는 인권이라 했나요? 그 전에 주거는 의사입니다. 건강하게 살려면 주거가 필수입니다." 

재작년, 한 여성 홈리스 당사자가 토론회에서 한 발언입니다. 매년 동짓날 열리는 '홈리스추모제'(Homeless Memorial Day)를 앞두고, 주거의 의미를 이보다 더 분명하게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홈리스'란 주거의 박탈 내지 비적정 주거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모든 홈리스의 공통이자 우선적 필요는 '주거'입니다. 주거를 바탕으로, 홈리스 각 개인에 필요한 고용, 의료, 급식 등의 지원을 배치해야 합니다. 그만큼 홈리스 주거 정책은 홈리스 정책의 토대와도 같습니다.      

아무 데나 들어가 살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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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도 집이 있는데, 집도 없이 흘러다니는 삶입니다." ⓒ 2023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노숙인복지법)'은 '노숙인 등'에 대한 주거지원의 하나로 '임시주거비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거리 홈리스에게 임시주거에 들어갈 수 있도록 비용을 지원하도록 하는 정책입니다. 정책 명에서 나타나듯, '주거'가 아니라 주거 '비용'을 지원하는 정책이다 보니 생기는 문제가 있습니다. 제공되는 임시주거의 품질이 열악하다는 것입니다.

서울시의 경우, 임시주거로 활용된 거처는 고시원·여인숙 648명, 쪽방 85명, 가정집 월세 7명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2020년 기준). 쪽방과 고시원 등의 과소·과밀하고 열악한 환경은 널리 알려졌고, 최근 서울지역 빈대 발생 건수의 절반 가까이가(44%) 고시원인 것으로 나타나 그 열악함이 단적으로 드러난 바 있습니다. 특히 비용 지원 상한액이 주거급여 임차급여(2023년=33만 원)로 맞춰져 있어 임시주거비 지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은 고시원 등 비적정 주거 중에서도 수준이 매우 낮은 곳에 국한됩니다.

그럼에도 홈리스가 밀집한 서울역 일대의 고시원과 여인숙 등지의 공실은 아예 없다시피 합니다. 임시주거비 지원이라는 주거정책이 홈리스의 주거권 보장에는 실패하는 반면, 빈곤 비즈니스를 부양하는 부작용이 고착된 지 오래입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임시주거 '비용'이 아닌, 적정 수준을 갖춘 임시 '주거'를 직접 제공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참고할 만한 정책 예도 많이 있습니다. 2020년, 국토교통부는 청년 독신가구 주거대책으로 노후고시원 매입·리모델링 사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서울시도 '리모델링형 사회주택'(직접매입형) 사업을 통해 고시원을 개선하여 사회주택으로 제공하는 정책을 시행한 바 있습니다. '임시주거비 지원' 역시 고시원, 숙박시설 등의 매입과 기능 개선을 통해 적정수준을 갖춘 임시주거 즉, 영구적인 임대주택으로 주거상향 수 있는 발판이 되는 경과적 주거를 직접 제공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개선이 없는 현재의 임시주거비 지원사업의 효과는 빈곤 비즈니스의 부양 내지 거리 홈리스 수 통제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눌수록 커지는 소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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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해 7월 1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을 찾아 '약자와 동행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있다. ⓒ 서울시 제공

 
지난해 말 대통령의 배우자는 종교기관들이 주최하는 물품 나눔 행사에 참여해 남대문로5가 쪽방주민들에게 선물 상자를 전달했습니다. 지난 4일, 올해 들어 또다시 열린 행사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참석해 같은 지역 쪽방 주민들에게 선물 상자를 전달했습니다. 오세훈 시장은 그 자리에서 "더 이상의 소외되는 이웃이 없도록 약자와의 동행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정부와 여권 인사들의 쪽방 방문은 연례 행사를 넘어 제집 드나들 듯합니다. 쪽방을 찾은 그들은 몇몇 주민들과 대화하거나 방을 방문하고, 선물을 주며, 손을 잡습니다. 그렇게 현장을 중시하는 정치인들이 어찌된 일인지 쪽방 주민들의 면담 요청은 단 한 번도 들어주지 않습니다. 남대문로5가 쪽방 주민 자치모임인 양동 쪽방주민회는 지난 9월, 현재 진행되는 재개발과 관련된 현안 논의를 위해 서울시 실무부서에 면담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담당 부서 공무원은 민원 답신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주민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단계가 되면 해당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그들에게 쪽방 주민은 '설명'의 대상일지언정 '논의' 상대로는 가당치 않은 존재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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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0일, 동자동 쪽방촌에 방문한 오세훈 시장. 동자동 쪽방 주민들의 공공주택사업 요구를 외면한 채 지나치고 있다. ⓒ 2023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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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4일, 물품나눔 행사에 참여한 오세훈 시장. 권리중심 일자리 등 내년도 장애인 복지 예산 삭감 철회를 요구하는 활동가들을 외면한 채 지나치고 있다. ⓒ 2023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

   
결국, '약자 동행'은 '약자 동원'이었습니다. 정치인들은 쪽방 주민을 약자로 규정하고, 약자 복지의 현장으로 쪽방을 찾고 그들에게 선물 보따리를 나눠주었으나 그럴수록 쪽방 주민들은 더 가장자리로 내몰렸습니다. 쪽방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겠다 했으나 언제나 드러나는 것은 그들의 목소리였습니다. '최고의 약자 복지는 공공주택사업', '물건 말고 주거권'을 외치는 주민들은 약자성이 오염된 이단아로 취급 당했습니다.

이렇게 약자 동원 정치가 계속되는 사이 동자동 쪽방지역에 임대주택을 짓기로 한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은 한치의 진전도 없습니다. 쪽방과 다르지 않은 좁고, 열악한 거처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서울시가 지정한 쪽방이 아니라는 이유로 장소 기반 복지의 사각에 처해 있습니다.

확대하라 공공임대, 오래살자 공공임대

2022년 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오피스텔을 제외한 '주택이외의 거처' 거주 가구는 57만2279가구로 182만9932명이 집이 아닌 곳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구원 수 기준 전년보다 4만1632명, 2.3% 증가한 수치입니다. 주택 이외의 거처 중에서도 고시원, 숙박업소의 객실, 판잣집 등 취약 거처 거주 가구는 44만3126가구로 2017년 36만9501가구보다 약 20% 증가하였습니다(2022년 '주택 이외의 거처 주거실태조사').

주거취약계층은 늘어만 가는데 정부 정책은 거꾸로 갑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4월 7일,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업무처리지침'을 개정해 주거취약계층에게 공급하는 매입, 전세임대주택 물량을 전체의 15%에서 30%로 2배 늘리도록 했습니다. 이대로 내년도 매입임대 공급 계획 물량(4만호)에 대입하면 2024년 공급 계획 물량은 1만2000호로 책정돼야 합니다. 그런데 정부 예산안의 주거취약계층 용 매입임대 물량은 2024년 역시 올해 등 평년과 똑같은 2000호에 불과합니다. 제도 따로 예산 계획 따로인 무책임 행정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어렵사리 매입임대주택에 들어갔다고 고민이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매입임대주택 거주기간은 최장 20년으로, 일부 예외 대상이 아닌 이상 그 후에 퇴거당하기 때문입니다. 내년이면 매입임대주택 제도 시행 20년으로 만기 퇴거자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20년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공임대주택 입주자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다가구매입임대주택 거주 가구 중 수급가구는 65.9%, 저축을 전혀 하고 있지 못하는 가구는 81.4%에 달하며, 92.4%의 가구가 이사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계할 공공주택 자원도 없이 퇴거당한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주거는 또다시 고시원, 쪽방, 반지하와 같은 취약 주거일 거처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부도 이런 사정을 모르지 않습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9월, '기존주택 전세임대 업무처리지침'을 개정하여 최대거주기간을 30년으로 확대하였습니다. 매입임대주택 지침 역시 최소한 이와 깉은 개정을 거쳐 만기 퇴거자 문제에 대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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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2일, '오래살자 임대주택 입주자 주민모임'이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매입임대주택 거주기간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 2023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으로 공급되는 주택이 매입, 전세임대주택으로 한정되는 문제 역시 개선이 필요합니다. 국토교통부는 주거취약계층에게 '건설임대' 주택도 공급하도록 지침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매해 공급 물량은 전국적으로 100호 가량에 지나지 않습니다. 공공임대주택 재공급을 위한 예비입주자는 '공공임대주택 예비입주자 업무처리지침'에 의해 규정되는데 '주거취약계층'은 우선 공급대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두 지침 사이 부조화 때문입니다. 우선지원대상으로 주거취약계층을 포함하도록 '공공임대주택 예비입주자 업무처리지침' 개정해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임대주택 입주 보증금 지원의 개선도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2023년부터 '지원'에서 '대출'로 퇴보한 지원방식을 종전과 같이 '지원'으로 되돌려야 합니다. 은행을 통한 대출 방식으로 운영되다보니 소액(50만 원)의 보증금반환채권양도방식으로 상환이 전면 보장되는 대출임에도 여느 대출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첨부서류와 신청서류를 구비해야 합니다. 개인회생, 파산, 금융채무연체자의 경우 '대출추천서'를 별도로 발부받아야 하며, 체납과 연체 등으로 압류 절차가 진행된 이는 대출이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복잡하고 불필요한 절차를 폐지하고, 종전과 같이 LH공사나 지방공사를 통한 지원 신청방식으로 전환해 접근성을 높여야 합니다.

주거의 권리가 유예되면 다른 모든 권리도 설 자리를 잃습니다. 가장 취약한 주거 상태에 처한 홈리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거리를 벗어날 수 있는 경과적 주거로서 적정 수준의 임시주거지원이 제공돼야 합니다. 선언으로 박제된 동자동 쪽방 공공주택사업의 신속 시행과 사각지대 쪽방을 지원 체계 내로 포함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합니다. 늘어만 가는 주거취약계층의 주거빈곤을 해소하기 위해 임대주택을 확대하고, 거주기간을 확대하여 입주자의 주거안정을 보장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본 기사는 진보적 장애인언론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홈리스 #노숙 #쪽방 #고시원 #주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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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행동은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약칭,노실사)'에서 전환, 2010년 출범한 단체입니다. 홈리스행동에서는 노숙,쪽방 등 홈리스 상태에 처한 이들과 함께 아랫마을 홈리스야학 인권지킴이, 미디어매체활동 등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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