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4월 30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세계노동절 맞이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쇠사슬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자료사진).
연합뉴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들의 인권보장 등을 위하여 근로시간과 휴일, 임금 등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 법 제63조는 '토지경작, 식물재배와 채취, 동물사육, 수산물 채취와 포획 등의 업무를 하는 노동자'를 따로 구분하여 근로시간과 휴게시간, 휴일 규정 적용에서 배제한다. 이 같은 업무가 대부분 이주민 노동자에 의해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업주가 이들을 착취할 수 있도록 법이 허용해준 것이나 다름없다.
모두 24명 사례가 실린 이 책 가운데는 미니어 만큼이나 어려운 상황에 봉착한 이들의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미니어는 활동가의 도움을 받아 업주와 법적 싸움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많은 수는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하며 종일 일하고 또 일해야만 할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만나고 기억하는 한국의 모습이라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스리랑카에서 이주해 12년 동안 한국에서 용접노동자로 일한 니로샨도 딱한 사정을 가졌다. 그는 고용허가제라 불리는 E-9비자로 입국해 숙련기능인력을 칭하는 E-7 비자를 따낸 노동자다. 앞서 적었듯 E-9비자는 사장으로부터 허락을 받지 않으면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고, 다른 회사를 찾을 수도 없다. 가족의 방문도 안 되고 일시 관광조차 까다롭다.
온갖 어려움 끝에 겨우 E-7 비자를 땄지만 니로샨은 여전히 제가 차별을 받는다고 느낀다. 회사의 용접업무를 도맡아 처리하는 숙련된 용접공이지만 월 200만원의 최저임금만 받고 일한다. E-7 비자를 딴 뒤 이직을 하려 했지만 출입국사무소에선 사장의 동의 없이는 직장을 바꿀 수 없다고 했다. 최저임금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없단 걸 깨달은 니로샨은 회사의 업무에 정성을 들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수시로 마주한다고 털어놨다.
온갖 어려움 끝에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노동조합 결성을 추진한 이들에 대한 한국정부의 강제추방 조치와 노동조합 신청 반려 등에도 불구하고 대법원까지 가는 싸움 끝에 마침내 탄생한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 바로 그것이다. 법외노조에서 합법노조가 되기까지 10년4개월이나 걸렸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노조에 보고된 수많은 인권침해 사례를 열거한다.
미니어의 사례에서와 마찬가지로 사업주가 100만원, 200만원을 요구한 경우는 흔하기까지 하다. 폭발사고로 동료들을 잃은 뒤 외상후 스트레스(PTSD)를 겪는 노동자가 사장에게 일을 그만두게 해달라고 애원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례, 독한 농약살포 업무로 괴로워하던 노동자가 불임이 된 사례, 용접가스로 고통 받다 그만두려 한 노동자를 코로나환자로 몰아 감금하고 협박한 사례 등 '현대판 노예노동'이라 불러도 좋을 사례가 수두룩하다.
이런 악조건과 현실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청구한 고용허가제에 대한 헌법소원을 헌법재판소는 두 차례 기각했다. 과연 한국사회가 이주민 노동자를 노예가 아닌 사회구성원으로 대하고 있는 것인지, 이쯤 되면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밖에도 책에는 참담한 사례가 수두룩하게 등장한다. 축산과 어업, 농업, 건설이며 공업과 서비스업에 이르기까지 이주민 노동자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 오늘의 한국에서 살아오면서도 이들의 목소리를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외면해왔다는 깨달음에 닿는다.
이주노조 조합장 우다야 라이는 말한다. "이주노동자 24만 명을 족쇄로 묶어놓고 얻는 부끄러운 이익보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추구해서 얻는 공정한 이익이 더 클 것"이라고 말이다. 이주민 노동자들에게 한국에 대한 애정과 제 노동에 대한 자긍심을 앗아가는 현실은 언제고 우리 자신을 겨냥한 비수가 될 것이다. 인구구조 붕괴로 이주민 노동자와의 더욱 긴밀한 공존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된 지금, 한국사회는 하루빨리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를 전환해야만 한다.
한국인도 외국 나가면 이주노동자인데
책을 읽으며 수시로 내 아버지가 떠올랐다. IMF 이후 실직하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홀로 미국에 가신 아버지, 비싼 비행기 값 탓에 7년 동안이나 돌아오지 못하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제 청춘을 바친 미국이란 나라를 여적 좋아하신다. 때때로 웃으며 그 시절을 회상하신다.
물론 그곳이라고 차별이 없었던 것은 아닐 테다. 그러나 법과 사람들이 아버지를 동등한 사람으로, 노동자로 대해주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그 시절을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보실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미국이 내 아버지를 한국이 미니어나 니로샨을 대하듯 대했다면 나는 그 나라를 결코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다.
5년 전 배 위에서 마주했던 필리핀 선원들을 떠올린다. 제 가족을 위하여 먼 바다로 나와 고된 일을 마다치 않는 그들이 종종 마주했던 부당함들을 떠올린다. 그들을 향하여 아무렇지 않게 '저들은 제 나라로 돌아가면 우리보다 훨씬 잘 산다'고 '그러니까 이 정도 차별은 괜찮다'고 말하던 이들을 떠올린다.
한국인과는 다른 계약으로, 하청에 하청을 거쳐 절반도 되지 않는 임금을 지급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던 그때의 우리를, 스스로를 반성한다. 최소한 우리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이미 '우리' 중 하나이고, 우리와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미래를 꿈꾸는 이주민입니다 - 더 나은 ‘함께’로 나아가는 한국 사회 이주민 24명의 이야기
이란주 (지은이), 순심(이나경) (그림),
한겨레출판,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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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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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주고도 못 그만두는 일터라니, 현대판 노예가 이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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