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배출은 남편이 맡은 일이었다.
최혜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남편은 일찍부터 일어나 대중목욕탕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딸아이를 만나 굳이 차로 학교에 데려다줬다. 다녀와서는 익숙하게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자동차 엔진오일을 갈고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다.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생활 기반이 있는 여기에서만 할 수 있는 일들을 부지런히 해나가는 남편을 보니, 체코에서 혼자 지내는 동안 여기서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었던 일들을 얼마나 하고 싶어했을까 싶었다.
재택근무를 하는 내가 업무를 마칠 즈음 돌아와서 오랜만에 4인 가족 완전체로 집밥을 먹었다. 원래 밥을 많이 먹지 않는 사람인데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체코에 간 이후 처음으로 먹는 밥 같은 밥이라며 감개무량해했다.
체코에 김치찌개 제대로 하는 한식당이 한 개만 있으면 좋겠다고 다시 한번 말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니 남편이 사는 동네에 맛있는 한국음식점이 들어서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남편에게는 '한국 식재료 수입해서 외지에서 가게 여는데 드는 품이 같다면 이왕이면 시장이 더 큰 곳으로들 가겠지요?'라고 말했지만, 나도 혼자 사는 외로움을 달래줄 한국 음식점이 하나 생겼으면 하고 진심으로 바란다.
남편이 가기 전에 우리는 내 회사 일이 끝나고 같이 식사를 한 후에 꼭 한 시간쯤은 걸었었다. 내가 온라인으로 강의를 듣거나, 모임을 할 때는 혼자라도 나가서 걸었다. 저녁 시간에 온라인 모임이 있는 날엔 남편 혼자 걷고 왔다. 남편이 돌아왔을 때 나도 온라인 모임을 끝내고 나와 모두 거실에 모였다.
남편이 아이에게 배우 이경영씨를 패러디하는 코믹 콘텐츠를 보자고 한다. 아빠와 아들이 '진행시켜' '좋았어' 같은 성대모사를 하며 꺽꺽대며 웃는 소리에 남편이 없는 몇 달간 우리집에서 사라졌던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아이들과 나만 있는 우리집은 서로 부딪힐 일도 딱히 없었지만 박장대소하며 웃을 일도 없었던 것이다. 대충대충 쓰기 편한 방식으로 정리하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손이 한 번 더 가더라도 지저분한 것이 눈에 안 보이도록 깔끔하게 정리하고 사는 사람이다.
돌아오자마자 베란다 창고를 정리해준 남편은 아이들 방에 차례로 들어가 정리 좀 하라고 잔소리를 했다.
"슈야, 아빠 여기서도 공부해야 돼. 너 학교 간 동안 니 책상을 써야되니까 방 정리 좀 할래?"
"간장아, 방 정리 좀 해."
나도 옆에서 거들었다.
"얘들아, 각오해. 아빠가 계신 동안은 '정리 지옥'에 빠져서 살아야 할 테니까."
그렇다. 그가 돌아왔다. 한 사람이 돌아왔는데 우리 집엔 유쾌한 웃음소리와 정리하라는 잔소리도 함께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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