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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총선에서 개표조작 시비 원천 차단하려면

[주장] 투표지 분류기의 '인쇄 기능'을 없애라

등록 2023.12.27 11:31수정 2023.12.2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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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대선 여수 개표장 여수 진남 체육관에 마련된 제20대 대선 개표장. 투표함들이 보이는 곳 바로 앞이 개함부 탁자, 그다음이 투표지분류기 운영부이고 마지막이 심사집계부 탁자이다. 단상에는 위원장과 선관위 사무총장이 있고 그 옆쪽에는 보고석이 있다. ⓒ 정병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아래 중앙선관위)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대국민 신뢰를 제고하기 위해 투·개표관리절차 개선방안을 검토" 중이다. 특히 개표 절차 가운데 하나인 '심사집계부'의 "심사계수 이전 단계에서 사람 손으로 한 번 더 확인하는 절차를 추가하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다. "투표지 분류기를 통한 개표 조작 등 부정선거 의혹"이 계속 제기되고 있어 이처럼 개표 절차를 개선하려는 것이다.

국가정보원(아래 국정원)은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중앙선관위 등과 선관위 내부망과 시스템 전반에 대해 지난 7월 17일부터 9월 22일까지 합동 보안점검을 진행하였다. 국정원은 지난 10월 그 결과를 발표하면서 "선관위 내부망 해킹이 가능하고 사전투표 등 투·개표 시스템 조작이 기술적으로 가능"함을 지적해 큰 논란을 낳았다. 이리하여 선관위로서는 내년 총선에 대한 대국민 신뢰도 확보가 시급해 투·개표 개선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행 개표 절차

현행 공직선거 개표 절차는 개함부(투표지를 탁자에 쏟아 가지런히 정리)→투표지분류기운영부(투표지의 후보자별 자동 분류와 득표수 합산, 개표상황표 출력) →심사집계부(재확인대상 투표지 수작업 개표, 투표지심사계수기 이용한 득표수 확인 심사)→개표상황표 확인점검(개표상황표 오류 확인)→위원검열석(투표지와 개표상황표 대조 확인)→위원장석(개표 결과 공표)→개표결과 전송 순으로 이어진다.

이 절차 중에 개표조작 시비가 가장 잦은 단계가 투표지분류기운영부와 심사집계부이다. 투표지분류기운영부는 '해킹'이나 '프로그램 조작' 또는 '오류'에 의한 개표조작 시비이고, 심사집계부는 개표사무원들의 의도적인 투표수 증감 행위 관련 의혹을 받곤 한다.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같이 굵직한 공직선거가 끝난 뒤 으레 이어지는 '개표조작' 관련 각종 의혹과 소송으로 선관위로서는 어지간히 골머리를 앓는 상황이다.

투표지분류기운영부에서는 '제어용PC'가 부착돼 있는 기기를 사용해 투표지를 자동 분류한다. 이어 개표 결과를 자동 합산한 '개표상황표'라는 문서를 인쇄기로 출력한다. 투표지분류기가 재확인대상투표지(미분류표)에 해당하는 투표지들의 후보자별 득표수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머지 95% 이상의 후보자별 득표수의 개표 결과는 개표상황표에 자동 합산돼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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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지심사계수기 투표지심사계수기로 투표지의 매수와 혼표 유무를 작업하는 개표사무원들 ⓒ 정병진

 
투표지심사계수기 도입 배경

투표지분류기가 자동 분류한 뒤 득표수를 자동 합산한 투표지 다발도 심사집계부 단계에서 '투표지심사계수기'라는 기기를 사용해 확인하는 절차를 밟기는 한다. 이때 사용하는 기기의 명칭이 '계수기'가 아니라 '투표지심사계수기'라는 사실에 유의하기 바란다.

계수기는 은행에서 돈의 매수를 세는 기기처럼 투표지가 몇 매인지 단순히 빠른 속도로 세기만 한다. 반면 '투표지심사계수기'는 '투표지'를 1분당 150매에서 300매 정도로 비교적 천천히 넘기게 하여 개표사무원이 혹시 다른 후보자의 섞인 표(혼표)가 있는지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한다는 차이가 있다.


선관위는 투표지를 100매 단위로 묶고자 계수기를 쓰다가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이르러 '투표지심사계수기'를 도입하였다. 공직선거법의 개표 규정에 따르면 심사집계부 개표사무원들은 모든 투표지를 맨눈으로 '수작업 개표'를 하여야 한다. 그런데도 개표 사무원 다수는 투표지분류기의 자동 분류 결과를 과신한 나머지 한 장씩 확인하지 않고 투표지 다발을 대충 넘기며 보는 '휘리릭 개표'(일명 날림 개표)를 하는 사례가 많았다. 그래서 선관위는 부실한 개표를 개선하고자 '투표지심사계수기'를 제작해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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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표상황표 지난 20대 대선 울산 동구 방어동 관내 사전투표 개표상황표. 빨강 네모 박스 안에 든 득표수는 투표지분류기가 자동 합산해 출력한 결과이다.

 
선관위 개표 개선안의 문제점

심사집계부의 개표사무원들은 '재확인대상투표지'(미분류표)는 한 장씩 수작업 개표한다. '재확인대상투표지'는 투표지분류기가 "선거인의 다양한 기표 형태(중복 기표, 무 기표 등), 기표 용구 상태(이물질, 얼룩 등), 투표지분류기의 기능 장애(장비 노후화 등) 같은 다양한 원인 때문에 분류에 실패하여 쏟아낸 표들이다. 심사집계부 개표사무원은 그 표들을 어느 후보자에게 기표한 표인지, 유효표인지 무효표인지 직접 맨손으로 가리는 작업을 한다.

반면 투표지분류기가 자동 분류·합산한 투표지들은 투표지심사계수기에 넣어 분류하기에 한 장 한 장 꼼꼼하게 살피지는 못한다. 투표지심사계수기의 처리 속도를 1분당 150매로 늦춘다고 해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마찬가지이다. 개표사무원이 투표지가 떨어지는 장면을 계속 쳐다보는 단순 작업을 한다면 누구든 쉽게 피로감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선관위의 개선안은 '투표지심사계수기' 단계에 앞서 한 차례의 수작업 개표를 더 하겠다고 한다.

그러면 개표조작 시비가 사라질까? 아마 기대만큼 효과가 크지는 않을 거다. '투표지심사계수기' 도입 이전에 이미 '수작업 개표'를 하였으나 "심사집계부 개표사무원들이 부실한 '휘리릭 개표'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는 사실로 미루어 알 수 있다. 선관위의 의도와 달리 개표 현장에서는 또 다시 부실한 개표가 만연해 개표조작 시비를 더욱 증폭할 우려마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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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지분류기의 구성 투표지분류기 제작 입찰 제안서에 나오는 투표지분류기의 구성 ⓒ 중앙선관위 자료 사진 갈무리

 

분류기의 프린터기를 없애라

혹시 더 간편하고 좋은 개선안은 없을까? 있다. 투표지분류기운영부에서 쓰는 '투표지분류기'의 개표상황표 인쇄 기능을 없애면 된다. 지금도 '거소 투표지'는 전량 수작업 개표한 뒤 개표상황표를 수기로 작성한다. 거소투표지 개표할 때처럼, 일반 투표지를 개표할 때도 굳이 투표지분류기로 개표 결과를 자동 합산해 개표상황표를 출력하지 않아도 된다.

현행 공직선거법상으로도 투표지분류기가 개표 결과를 자동 합산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투표지분류기는 투표지를 후보자별, 유·무효별로 자동 분류하고 그다음은 심사집계부가 처리하게 하면 된다. 투표지분류기로 개표상황표를 자동 출력하지 않으면 심사집계부에서 수작업 개표한 뒤 개표상황표 양식에 후보자별 득표수를 기록해야 한다. 그래도 투표지분류기에 의한 1차 자동 분류는 하기에 개표 속도는 그다지 지체되지 않는다. 또한 해킹 등 컴퓨터 조작 시비를 차단한 '수작업 개표'가 이루어지는 효과가 있다.

선관위는 심사집계부에 투표지심사계수기 단계 이전에 '수작업 개표' 절차 단계를 하나 더 둘게 아니라, 투표지분류기의 개표상황표 '출력 기능'을 없애기 바란다. 투표지분류기가 개표 결과를 자동 합산하지 않고 후보자별, 유무효별로 자동 분류만 하는 게 '투표지분류기'라는 기기의 명칭에도 더 부합하다. 선관위는 오랫동안 이 기기에 대해 "'전자개표기'가 아니다"라 강변하였다. 그렇다면 개표상황표 '출력 기능'을 없애 개표 결과의 자동 합산을 하지 않고 후보자별 자동 분류만 하면 된다.
#투표지분류기 #심사집계부 #22대총선 #선거관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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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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