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한 갱년기 우울증을 앓았던 아버지에게 아들은 더 없는 친구가 돼 주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제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의 벗이 되어주려 한다.
하지권
사실, 아버지 최인복님은 그간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고역의 나날들이었다. 몸을 움직이는 것도, 마음을 다잡는 것도 벅찼다. 일찍이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이상했다. 심지어는 극단의 안 좋은 생각조차 들 때도 있었다.
"갱년기인가 본데... 이럴 수가 있을까 싶었어요. 남들은 쉽게 지나가기도 한다던데."
식구들의 걱정스러운 눈길, 그것조차 성에 차지 않았다. 사다주는 약을 먹어봐도 소용이 없었다. 온몸에 한가득 불길이 치솟는 것 같았다. 가족들을 생각해서 이러지 말아야지 생각했다가도 금세 원위치.
꿈을 꾼다. 혼자만 있는 꿈. 깊은 산속에 오두막을 짓고 고요히 혼자 사는 꿈. 아궁이에 불 지피고 볕 좋은 툇마루에 나와 앉아 앞산의 나무와 새들을 바라본다면. 혹은 좌고우면 않고 전국을 무념무상으로 캠핑카를 타고 다녀보는 꿈. 가다가 배고프면 밥 지어 먹고 졸리면 차 세우고 그 자리에서 자보는 일. 강이나 바닷가에 낚시 드리우고 코발트 빛 수면을 한없이 바라보는 상상.
"혼자 있는 걸 좋아했어요. 성격인가 봐. 술자리가 있어도 조용히 밥만 먹고 빠져나와서 집에 들어오는 게 좋지, 사람들하고 어울려 떠드는 게 나는 별로더라고. 안 맞아. 지금 생각하면 나가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살았어야 스트레스도 덜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긴 들지만서도."
큰 수술을 세 번이나 한 것도 이 탓이 컸지 싶다. 대신 집에서 가만히 있는 건 아니었다. 무엇을 이리저리 가꾸는 일이 좋았다. 나무를 옮겨서 마당 바깥으로 심어보기도 하고 돌담을 가지런하게 다시 쌓아보기도 하고. 다행히 손재주가 있어 그가 만드는 것은 대부분 '작품'이 됐다.
전남 구례 광의면 방광마을에 자리 잡은 한옥스테이 '노고마주 기와'도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툭 떨어진 집이었다. 경매 사이트에서다. 누군지는 몰라도 심혈을 기울여 지은 집이란 걸 그는 한눈에 알아차렸다. 아들에게 단숨에 전화했다. "석우야, 우리 이 집 한번 고쳐 살아볼까?" 눈썰미로 치면 아버지 못지않은 아들도 집을 보자마자 썩 마음에 들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