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보릿고개 버텨 살아있으라 격려하는 노래

구전동요 어깨동무 노래 속 감정... "보리가 나도록 살아라"

등록 2023.12.28 14:07수정 2023.12.28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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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어깨동무를 "상대편의 어깨에 서로 팔을 얹어 끼고 나란히 섬. 또는 그렇게 하고 노는 아이들의 놀이"라 했다. 풀이는 정확하지만, 어깨동무의 사전적 의미는 어쩐지 건조한 느낌이다. 어깨동무를 행위로만 설명하면 그 바탕의 감성을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깨동무를 아무나 붙들고 하지 않으며, 아무 때나 하지도 않는다. 어깨동무는 친밀감, 유대감, 일체감 등 그런 친화적 감정의 표출이거나 연출이다. 동창회의 친구들, 직장모임의 동료들, 거리의 취객들로부터 어쩌다 보게 되는 어깨동무도 그런 감정의 발현이다. 축구선수 손흥민이 골을 넣고 도움 준 동료와 어깨동무하며 기뻐하는 모습도 맥락이 다르지 않다.  


어깨동무는 아무래도 아이들이 해야 제격이다. 아이들의 어깨동무는 무엇보다 천진해서 보기 좋다. 그들의 어깨동무는 동기도 특별하지 않다. 등교하며 문방구에 함께 갈 때, 하교길에 집을 향해 교문을 나설 때, 아이들이 모이는 동네 골목에 놀러 나갈 때, 어딘가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기분이 되어 어깨동무를 한다.
 
  마음에 맞는 친구가 있어 좋다. 함께 할 무엇이 있어 좋다. 어깨동무로 기분이 즐거워진다
마음에 맞는 친구가 있어 좋다. 함께 할 무엇이 있어 좋다. 어깨동무로 기분이 즐거워진다 capsaku
 
어깨동무를 하고 걸으면 걸음마다 친밀감과 유대감이 돋아나고 어느새 즐거움이 세상을 가득 채운다. 아동문학가 윤석중은 동시 '어깨동무'를 통해 아이들의 이런 어깨동무 정서를 다음과 같이 그려냈다.

동무동무 어깨동무 언제든지 같이 놀고
동무동무 어깨동무 어디든지 같이 가고
동무동무 어깨동무 천리길도 멀지않고
동무동무 어깨동무 해도달도 따라오고
-'어깨동무', 윤석중, <가정지우(家庭之友> 제30호, 조선금융연합회, 1940.


언제든지 같이 놀고, 어디든지 같이 가고 싶다. 천리길도 멀리 느끼지 않는다. 해와 달도 우리를 따라와 비춰주며 응원하는 듯하다. 세상이 온통 밝고 아름답다. 아이들의 어깨동무 마음을 윤석중이 제대로 읽었다. 구전동요 어깨동무 노래도 같은 마음을 담고 있는 것이 있다. '동무동무 일촌동무'가 그런 것이다.

동무동무 일촌동무
자네집이 어디인고
대추나무 아홉선데
우물있는 겹질일세
-김소운, <조선구전민요>, 1933, 경상북도 영천


어깨동무하며 친구를 '일촌동무'라 했다. 더없이 가까운 절친이라 한 것이다. 이어서 친구 집에 대해 물었다. 대추나무 아홉그루가 서 있고, 우물이 있는 겹집이라 했다. 속신으로 대추나무는 아들과 관계된다. 또한 겹집은 가옥 여러 채가 늘어선 집이다. 거기에 집에 우물까지 있다. 그렇다면 노래 속의 집은 규모도 있고 자손도 왕성하여 전통사회의 시각에서 복이 가득한 집에 해당한다.


친구 집을 몰라서 물었겠는가? 노래는 친구와 함께 부르는 것이기에 그 집은 너의 집도 아니고, 나의 집도 아니다. 요컨대 노래의 집에 관한 문답은 실용적 대화가 아니다. 그것은 어깨동무하며 친구와 어울린 즐거운 기분을 집으로 표상하며 그린 판타지다. 어깨동무의 정서가 빚어낸 밝고 아름다운 상상이다.   그런데 구전동요가 그린 어깨동무의 세상이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이들도 삶의 현실을 체감하며 사는 존재들이다. 다음의 '동무동무 씨동무'의 세상에는 이런 상황이 놓여 있다.

어깨동무 씨동무
보리가 나도록 살아라
-김소운, <조선구전민요>, 1933, 울산



친구가 흉년을 잘 지나길 바라는 마음  

'씨동무'는 소중한 친구를 말한다. 그러므로 "어깨동무 씨동무"에는 친구를 아끼는 애정 어린 마음이 담겨 있다. 노래는 그런 친구에게 당부의 말을 붙였다. 보리가 나도록, 곧 보리 수확 때까지 살라는 것이다. 보리 수확 때까지 살라고? 참 뜬금없는 말이다. 맥락을 잃은 것 같기도 하다.

여기서 '보리가 나도록'은 식량부족에 시달렸던 과거 춘궁기를 반영한 말이다. 가을에 수확한 곡식이 겨울을 지나며 줄어들면 배곯음이 시작되고, 그나마 아껴먹던 식량조차 떨어지면 보리를 거둘 때까지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채취해 연명하며 견뎌야 했다. 이른바 보릿고개라는 국면이다. 가을에 흉년이 들기라도 하면 다가오는 보릿고개는 더욱 혹독했다.

'보리가 나도록 ~', 이 부분 역시 어깨동무 친구들이 함께 부른다. 그러므로 보리가 나도록 살라는 말도 일방적이지 않다. 실상 서로에게 당부하는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보릿고개의 어려운 현실을 잘 견뎌내도록 상호 격려하며 그런 의지를 함께 다짐하는 말이다.

아이들은 꿈을 먹고 자란다. 그러므로 구전동요의 밝고 아름다운 상상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구전동요가 이처럼 삶의 현실적 수난을 거의 그대로 수용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러한 점에서 '보리가 나도록 살라'는 말은 동요적 표현으로는 특이하다. 동요 가사로서는 엄중하고 무겁다.

상황이 그래서일까? 이 노래의 해당 부분을 지금은 '보리가 나도록 놀아라'로 바꾸어 통용하고 있다. 동요다운 맛이 한결 살아난 느낌이다. 대신 정황은 다소 부자연스러워졌다. 보리를 수확할 때까지 놀라고 했으니, 말의 맥락이 어색하고 불분명해진 것이다.

보릿고개로 이어지는 겨울나기와 굶주림은 전통사회 아이들이 견뎌야 하는 반복적 시련이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어깨동무하면서 보릿고개를 화제 삼은 바탕에는 추위와 굶주림의 고난을 견뎌내겠다는 단단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어려움에 위축되지 않는 건강한 동심이다.

추위와 굶주림은 결국 경제적 문제이다. 이제 보릿고개는 옛말이 되었지만, 우리 시대에도 서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여전하다. 특히 근래 고물가가 만든 경제적 한파에 서민들의 삶은 더욱 위축되고 있다. 일자리도 마땅치 않고, 실직과 폐업 또한 만만치 않다.

'보리가 나도록 살라'는 말을 새삼스레 떠올려본다. 건강한 동심을 생각해본다.
#구전동요 #어깨동무 #윤석중 #씨동무 #보릿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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