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나는 휘커스 씨족 마을부모 휘커스에서 꺾꽂이 한 아이들이 새 둥지에서 자신들의 공동체를 일구고 있다.
김현진
식물은 공동체를 지탱하는 뿌리와 잎에서 만들어진 양분을 누구 하나가 독차지 하지 않고 공동체 안의 모든 구성원이 동일하게 나누어 갖는다. 어떤 식물들은 자신(개체)은 말라 떨어져 나가면서 다음 세대를 위해 양분을 남겨 놓는다. 부모 세대가 자식 세대를 먹이고 키우면 자식 세대는 부모 세대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체가 되고, 그러면서 또 후대를 길러낸다.
끝없이 후손을 낳고 후대를 위해 양식을 만들고 먹이는 일을 식물은 당연하다는 듯 행한다. 그러니 인간 부모가 자식을 낳고 희생과 헌신으로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어떤 숭고함이나 특별함을 보여주는 면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가 갖는 보편적인 임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바로 자연의 원리라고.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 지금 누리는 것을 잘 보존하고 더 나은 것을 물려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마땅히 따라야할 삶의 방식이라고.
식물이 몸소 실행하고 있는 공생의 원리가 새삼 놀라운데 식물은 그 존재 자체로 지구 생명의 존속에 기여한다. 태양과 흙으로부터 스스로 에너지원, 즉 양분을 만들 수 있는 생명체는 오직 식물 밖에 없다. 그 밖의 동물과 사람은 식물을 먹거나 식물을 먹어 양분을 얻은 또 다른 동물을 먹음으로 에너지를 얻기 때문이다. 모두를 먹여 살리는 식물이 있어 지구 생명계는 다채로움과 풍성함을 입는다.
식물의 번식에 동물과 곤충이 기여하기도 한다. 동물은 식물을 먹고 배설물로 씨앗을 옮기거나 몸에 묻혀 씨를 나르면서 식물의 이동과 번식을 돕는다. 수술과 암술이 분리되어 존재하는 식물의 경우 식물의 꿀을 먹기 위해 꽃을 찾아온 곤충이 암술머리로 꽃가루를 옮기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동물과 곤충의 생존에 식물이 필수적이듯 식물의 삶에도 그들의 도움이 긴요하다.
이들 관계를 떠올리면 지구라는 생명계는 서로 다른 존재의 긴밀한 협력으로 생명을 나르는 모세혈관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치밀하게 짜인 그물망을 오가는 상생의 흐름이 없다면 전체 생명도 유지될 수 없다.
멈춰 있는 듯 보이는 식물조차 하나의 개체 안에서 공생과 상생, 후대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식물의 삶은 더할 나위 없이 동물과 유사하고, 자연을 구성하는 식물과 동물은 상생과 지속성이라는 자연의 원리를 충실히 따른다.
그렇다면 자연의 일부이자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고 언어를 통해 사고와 의사소통까지 가능한 인간은 어떻게 그 원리를 실천할 수 있을까. 공존을 위한 노력이 살아있는 존재와 공동체의 기본 원리라는 걸 기억하며 새해를 시작하고 싶다.
파브르 식물기
장 앙리 파브르 (지은이), 조은영 (옮긴이),
휴머니스트, 2023
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 3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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