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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부엉이와 수달이 사는 대구 속 자연... 부디 지켜주시길

겨울 팔현습지에서 본 풍경... 탐방로 내는 보도교 사업이 우려되는 이유

등록 2024.01.01 11:28수정 2024.01.0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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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현습지를 찾은 쇠오리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2023년 마지막날인 31일 오후 대구 금호강 팔현습지를 다시 찾았다. 해가 바뀌기 전에 겨울 팔현습지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팔현습지는 겨울인지라 강물은 더욱 맑고 힘차게 흘렀고, 철새들이 군데군데 군집을 이뤄 열심히 먹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쇠오리, 청둥오리, 알락오리, 비오리 같은 오리류가 대부분이고 중대백로와 왜가리, 민물가마우지, 갈매기까지 눈에 들어온다. 오리들은 모두 얼굴을 강물 속으로 박고 궁둥이는 하늘로 올린 채로 열심히 강바닥의 먹이를 긁어먹고 있었다. 그 모습이 무척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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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치를 쳐들고 열심히 먹이 활동중인 오리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수리부엉이, 물닭을 삼키다

익숙한 동선대로 동구 방촌동 금호강 제방을 시작으로 해서 강촌햇살교를 넘어 팔현습지 입간판이 서 있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 팔현습지 하천숲으로 들었다.

왕버들과 수양버들이 사이좋게 들어찬 이 공간이 홀쭉해졌다. 나무들이 잎을 다 떨구었기 때문이다. 홀쭉하고, 나무색인 잿빛으로 변한 하천숲은 쓸쓸해 보였다. 그러나 그것마저 아름다웠다. '쓸쓸한 아름다움'이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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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만 쓸쓸히 남은 겨울 하천숲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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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부엉이 부부가 둥지를 튼 팔현습지 하식애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하천숲을 따라 더 내려가면 수리부엉이 부부가 살고 있는 금호강 하식애를 만난다. 가까이 다가가면 눈동자의 움직임이 바빠진다. 열심히 수리부엉이 부부가 앉아 있을 법한 곳을 눈으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멀어서 잘 보이진 않지만 날개의 황금빛 실루엣이 보이기 마련이라, 그 흔적을 육안으로 확인하고 가져온 망원경을 통해 녀석의 존재를 완전히 확인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날은 아무리 찾아도 수리부엉이 부부의 모습을 보이질 않았다. 아마도 눈에 잘 띄지 않는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둥지에 있을 거라 짐작해본다.
       
꾸룩새연구소 정다미 소장의 말에 따르면 "지금이 딱 포란기이기 때문에 둥지를 잡아 알을 낳고 알을 품는 시기라서 적어도 암컷인 '현이'는 늘 둥지를 지킬 수밖에 없는" 계절일 것이다. 이 무렵 먹이 활동은 순전히 숫컷인 '팔이'의 몫이 된다.
   
이날 녀석들의 모습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녀석들이 남긴 확실한 흔적은 발견했다. 하식애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수리부엉이 '팔이'가 물닭을 사냥해 먹어치운 것으로 추정되는 잔해를 발견한 것. 거기까지만 보면 삵이 사냥을 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지만, 그것이 수리부엉이의 소행임을 알리는 결정적 단서가 하나 더 발견됐다.

먹이를 통으로 삼킬 수밖에 없는 수리부엉이는 소화가 안 되고 남은 것이 생길 수밖에 없어 다시 토해내게 되는데, 그것을 '펠릿'이라고 부른다. 펠릿은 수리부엉이 탐구의 중요한 매개가 된다. 수리부엉이가 뭘 사냥해서 먹고 사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펠릿을 분석해보면 동물의 뼈와 털 같은 소화가 안되는 것이 빼곡이 들어차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여간 이를 통해 그곳의 먹이 군집도 확인하면서 수리부엉이 생존의 중요한 단서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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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현습지에 물닭이 지천이다. 이들 중 한 녀석이 어젯밤 수리부엉이에게 당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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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닭의 털 뭉치 바로 옆에서 발견된 수리부엉이가 뱉어놓은 펠릿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필자가 수습한 펠릿은 어젯밤 막 뱉어놓았는지 아직 축축함이 남아 있었다. 잘 말려서 나중에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중요한 학습도구로 삼아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수리부엉이 식사 장면을 뒤로 하고 더 안쪽에 자리잡은 왕버들숲까지 이동해 들어갔다.


왕버들도 잎을 다 떨구어 앙상한 나목만 연속해 서 있다. 그 모습이 싫지 않다. 겨울 앙상한 왕버들숲이지만 그 나름의 매력이 분명히 있다.
      
그 순간 큰오색딱다구리 한 마리가 왕버들 가지에 날아와 앉더니 열심히 부리를 쪼기 시작한다. 그 모습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온다. 잎을 다 떨구고 나목이 된 왕버들이 선사하는 선물인가 생각해 본다.

더 안쪽까지 들어가자 강변엔 수달이 또 흔적을 남겼다. 바윗돌 위에 영역을 표시하는지 찍찍 배설해 놓았다. 그 배설한 흔적이 전혀 밉지 않고 너무 반갑다. 수달이 팔현습지에서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팔현습지에는 다양한 야생의 흔적들이 목격된다. 주로 배설물을 통해서 그 흔적들을 확인한다. 그래서 그 흔적을 찾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공존의 단서이기 때문이다. 그곳에 그들이 살고 있음을 확인해주는 명백한 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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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한 가지만 남은 겨울 왕버들숲. 그러나 쓸쓸한 아름다움을 선사해준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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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오색딱따구리가 열심히 부리를 쪼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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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달이 바윗돌 위에 찍찍 똥을 사질러놨다. 그들의 일종의 영역 표시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멸종위기종 서식처에 탐방로를 내겠다는 환경부, 각성하라

이렇게 멸종위기종이 서식하는 명백한 증거들이 있음에도 이곳에서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환경청의 '토건 삽질'이 현재 진행중이다. 지금은 제방 확장공사를 진행하는 중이고, 2024년 여름경부터는 팔현습지의 핵심 생태구간이자 멸종위기종들의 마지막 피난처인 '숨은 서식처', 즉 하식애 앞으로 탐방로를 내는 보도교 사업이 예정돼 있다.

보도교 사업이 그대로 강행된다면 큰 충돌이 예상된다. 환경단체와 팔현습지를 사랑하는 시민들은 이 보도교 사업만큼은 반드시 막아낸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보도교가 들어서면 산과 강이 온전히 연결된, 금호강 대구 구간의 거의 유일한 생태계에서 산과 강이 단절돼 야생동물들이 안전하게 산과 강을 드나들 수 없게 된다. 

이런 생태계 단절 내지는 파괴사업을 환경부가 벌인다는 것이 말이 되나. 낙동강유역환경청은 지금이라도 문제의 보도교 사업을 철회하고, 멸종위기종들이 이곳에서 평화로이 공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환경부의 참 역할이자 의무다. 환경부 산하 낙동강유역환경청의 각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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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하식애 앞으로 8미터 높이의 교량형 탐방로를 건설하겠다는 환경부. 도대체 환경부가 뭘 하는 부서인지 묻고 싶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덧붙이는 글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금호강 #팔현습지 #수리부엉이 #겨울철새 #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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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깎이지 않아야 하고, 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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