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의 결과쓰지도 않으면서 쌓여있는 다이어리들
이가은
내가 집주인인지 물건들이 집주인인지 모를 정도로 집 안은 이미 혼돈의 카오스가 되어있었다. 이렇게 마냥 무질서하게 사는 모습이 계속된다면 아이에게도 내게도 좋지 않을 것. 갑자기 내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 시기를 기점으로 해 나는 되도록이면 더는 물건을 사지 않기로 결심했다.
한동안은 잘 지켰다. 뭔가를 사지도 않았고, 안 쓰는 물건들은 정리했고. 그간 안 읽었으며 앞으로도 읽지 않을 책들은 중고서점에 다 가져다 팔았고, 작거나 낡은 옷들은 다 버렸다. 집 안의 오래된 타월도 싹 바꾸고 기타 등등 많이 버려내고 치웠다. '많이 치웠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집 안은 크게 달라지지가 않고 있었다.
이때 내가 간과한 한 가지. 물건을 사지 않는다고 해서 미니멀한 삶이 자동으로 구현되지는 않는다는 것. 이미 집은 물건들로 꽉 차 있었기에, 물건을 더 사지 않는 것만으로는 별 소용이 없었다. 또 버리고 치우고 정리를 한다고 해도, 보통은 표면적인 정리일 뿐이어서 정말 잘 정리해야 할 부분까지 도달하는 건 몹시 어려웠다.
유독 정리가 힘들었던 부분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로 의미가 있는 물건들이다. 정말 아끼고 아껴서 사용하긴 했지만, 나 결혼할 때 친엄마가 주신 영국 왕실의 금테 두른 접시라던가, 그동안 내가 작업했던 책들(작품들) 같은 것 말이다. 아이가 어버이날에 준 꼬깃꼬깃 카네이션같이,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는 물건들을 처분하는 것은 몹시도 어려웠다.
두 번째로는 덩치가 큰 물건들이었다. 예를 들어 코로나로 운동 다니기가 힘들어서 큰 마음을 먹고 구입했지만, 지금은 옷걸이로 전락해버린 실내 자전거. 신혼 때 집들이하느라 구매했던 교자상 같은 것은 바로 처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냥 버린다고 생각하고 치우면 될 텐데, 막상 치우려고 하면 또 금방 사용하게 될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중고로 팔자니 아까운 느낌, 내가 너무 손해 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나중에 유튜브에서 보니, '의미 있는 것은 사진으로 찍어서' 보관하라는 조언이 있었다. 이걸 알기 전엔 정리가 자꾸 막히다 보니 점점 미니멀 라이프가 요원해졌다. 집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처음처럼 복잡해졌고, 이렇게 한동안 나를 괴롭혔던 정리 이슈가 잊히는 듯할 즈음 한 해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