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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해줄 테니 애 낳을래?' 하기엔 한국은 늦었다"

[22대 총선,이것을 말하자④-저출생] 신경아 교수 "문화·관행·의식·제도, 다 바꿔야 가능"

등록 2024.02.06 07:04수정 2024.02.07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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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심판·양당체제타파·혁신·통합 등 22대 총선을 앞두고 여의도 안팎이 분주합니다. 그러나 갈수록 심화되는 기후위기, 불평등, 돌봄, 재난, 저출생, 지방소멸을 비롯한 복합위기에 대한 해법에 대해서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2대 총선을 앞두고 가장 필요한 문제들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와 해법을 전하고자 합니다.[편집자말]
 신경아 한림대 교수 (자료사진)
신경아 한림대 교수 (자료사진) 권우성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EBS 초저출생 기획프로그램 인터뷰에 나와 '합계출산율 0.78명' 소리를 들은 미국 조앤 윌리엄스 교수가 머리를 움켜쥐며 소리치는 장면은 '밈'이 돼 청년 세대들의 SNS를 달구고, 저출생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여기에 유치원·어린이집 폐업, 그리고 초등학교 폐교까지 이미 오랜 경보처럼 뉴스에 오르내린다. 국민이 위기를 현실에서 절감하고 있을 때, 정치권의 주요 공약은 현금성 지원이나 인구부 신설이 주를 이룬다. 

총선을 두 달 여 앞둔 정치권의 주요 키워드는 '저출생'이다. 공약집 단골 의제라고 치부하기엔 정당 간 정책 대결이 심상치 않다. 거대 양당이 같은 날 저출생 공약을 내놓는가 하면, 공천관리위원회 면접을 치른 민주당 예비후보 대다수가 '저출생 대책을 설명하라'는 질문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정책 몇 개 찍어서 '이거, 이거 해줄테니 아이 낳을래?' 하기엔 대한민국은 이미 너무 늦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1월 29일 서울의 한 사무실에서 진행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양당 정책들 이면에는 정작 정책 대상을 위한 비전이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당신의 삶은 안정될 것"이라는 마음을 심어줄 '방향 전환' 제시가 먼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오랫동안 노동시장의 성별 불평등에 관한 연구를 해온 신 교수는 스웨덴 성평등 정책의 핵심인 '평등한 노동'에 대한 연구를 위해 스웨덴에서 연구년을 보내기도 했다.

그는 무엇보다 생명권, 인권, 노동권이 모두 올바른 자리를 찾아야, 청년의 마음을 열 수 있다는 제언도 덧붙였다.


지난해 만난 한 외국학자가 159명의 생명이 희생된 이태원참사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보고 "이렇게 많은 청년이 죽었는데 (정부가) 어떻게 그러느냐"고 한탄했다는 말도 전했다. "이런 정부에서 아이를 낳으라 한들, 누구도 아이의 미래를 (국가에서) 보장해줄 것이라 믿지 않는다"는 우려다.  

아래는 신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여당 공약, 전기차에 휘발유 잔뜩 넣은 느낌"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월 18일 서울 강남구 휴레이포지티브에서 저출생 관련 공약인 '일·가족 모두행복'을 발표하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월 18일 서울 강남구 휴레이포지티브에서 저출생 관련 공약인 '일·가족 모두행복'을 발표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 저출생 공약 경쟁이 뜨겁다. 국민의힘은 배우자 출산 휴가 확대와 유급 자녀 돌봄 휴가 등을 제시했다. 여성가족부를 흡수해 인구부를 설치하겠다고도 했다.  

"우선 배우자 1개월 유급 출산휴가는 좋은 대책이다. (육아휴직자의) 동료 수당이나 중소기업에 대체 인력 지원을 위한 비용을 주겠다는 건 현 제도의 일부를 개선하겠다는 안이다. 문제는 여가부를 폐지하고 인구부를 신설하겠다는 것이다. 개선안은 성평등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만 여가부 폐지는 성평등 목표를 삭제한다. 정책적 충돌이다. 따라서 실효성이 의심된다. (지금 대부분) 맞벌이, 맞돌봄이다. (파트너끼리) 함께 협력하는 수평적 관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성평등을 추구해야 하는데 이를 담당하는 여가부를 없앤다고 한다."

- 여가부 폐지란 기조부터 잘못됐다는 지적인가? 

"(여가부) 폐지 자체가 이익이냐, 아니냐를 떠나, (이 논의는)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할 성평등 사회라는 비전을 버리겠다는 것이다. 2030 청년의 의식조사 등을 봐도 성역할 고정관념이 약해지고 성평등으로 변화되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수단을 지우겠다고 하면, 여성들에겐 먼저 감정적으로 반감을 불러일으킨다. 지금은 (출산을 위해선) 남녀가 합의해야 하고, 특히 여성들의 결정권이 중요하다. (결정을 위한) 첫 행위자인 여성들에게 반감을 사고, 마음의 문을 닫는 기조다.

김영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교체 소식(기획재정부 출신의 주형환 전 산자부 장관 검토)도 마찬가지다. (교체 이유가) 성과가 없다는 거다. 언론 보도를 보면 기획재정부 등 타 부처의 협조를 얻지 못했다는 것인데, 장관급이라고 해도 작은 위원회의 대표가 무슨 힘이 있을까. 조직 위상이 갖는 문제를 개인 책임으로 돌린 것밖에 되지 않는다. (저출생 대책 효과는) 최소 3년은 기다려야 판단할 수 있는 문제다."
 

- 여당은 또 육아기 유연근무를 취업규칙과 근로계약서에 정기적으로 공지하게 하는 등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역시 정부 기조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은 배제하고 기업에 편향돼 왔다. 그런데 (공약들은) 기업들이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정책이다. 이런저런 표현을 썼다고 해서, (기업들이) 얼마나 이행할까. 정말 (공약이) 그렇다면 노동정책 기조를 먼저 바꿔야 하는데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전기차에 휘발유를 잔뜩 넣은 느낌이다."

"출생기본소득? 그건 저출생 대책이 아니라 복지정책"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저출생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월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저출생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남소연
 
- 민주당은 '신혼부부 10년 만기 1억 원 대출', '자녀 수 따른 공공임대 주택공급' 등 주거정책과 저출생 문제를 연계하고, 이재명 대표는 신년기자회견에서 '출생기본소득'을 제시했다.

"그게 어떻게 저출생 대책인가. 이건 복지정책이다. 사회복지정책 차원에서 저소득층, 청년층의 주거 안정과 가족 구성원의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한 방향으로 가면 되는데 (이 문제를) 저출생 대책으로 끌어오는 건 청년들의 반감만 산다. 출생기본소득도 의미가 없다. 이미 아동수당이 있는데 그를 확대해 이행할 방안이 없잖나. 돌봄 인프라, 여성 육아휴직과 출산휴가 등 제도 개선은 손대지 않고 현금을 살포하는 식은 옳지 않다."

- 언론 기고에서 현금지원성 정책은 "지속성을 확신할 수 없고, 정책의 효과도 제한적"이라고 했다.

"(저출생 대책에서) 임대주택 등 주거 관련한 부분은 아직까지 한국 문화에선 주로 남성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정책이다. 총선에서 청년 남성들의 표를 얻어오기 아닌 전략이 아닌지 되묻고 싶다. 비정규직이 절반 이상인 여성들이 아이를 낳으면 직장을 그만두고, 정규직도 육아휴직을 쓰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여성들을 위해 민주당은 무엇을 해왔나.

저출생이 경제적 문제 때문만이라면, 중산층 여성들은 왜 아이를 낳지 않겠나. 회사에서 잘리고, 자기 인생을 포기해야 해서다. 내 삶이 불안정해서다. 그런 복합적인 불안을 해소해줘야 한다. 또 해소될 수 있다는 신뢰를 줘야 한다."

- 여야 모두 '인구부' 신설을 말했다. 이를 통한 인구위기 관리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신설된 인구부) 직원들 100명 이상은 되나? 자칫하면 여가부 꼴 날 수 있다. 인구부든 저출산고령화위원회든 기획재정부·여성가족부·고용노동부·국토교통부 등 주요 부처 인원들이 들어와야 한다. 정권 눈치 보는 사람들 말고 각계 전문가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수렴하면서 새로운 시스템을 힘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

"청년들에게 당신의 삶은 안정될 거란 비전 줘야"

-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정책 몇 개 찍어서 '이거, 이거 해줄테니 아이 낳을래?' 하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문화·관행·의식·제도가 다 바뀌어야 한다. 지금 청년들을 '생존세대'라 하지 않나.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나도 살기 힘든데 아이를 낳아 어쩌란 말인가'라고 한다. 이런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 지금 당장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아이를 낳을 땐 지금 당장이 아니라 5년 후, 10년 후를 본다. 돈 풀어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반의 방향을 전환하면서 '당신의 삶은 안정될 것'이란 장기적 비전을 마련해줘야 한다." 

- 어떠한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보나.

"먼저 생명권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태원 참사로 159명이 숨졌는데 정부가 책임지지 않는다. 정부가 이 사건을 통해 인간생명을 존중하고 소중히 지켜가겠다는 책임을 공표했어야 했다. 작년 10월 한국에 왔던 한 외국학자는 '이렇게 많은 청년이 죽었는데 (정부가) 어떻게 그러냐'고 했다. 이런 정부에서 '아이를 낳으라' 한들, 누구도 아이의 미래를 (국가에서) 보장해줄 것이라 믿지 않는다.

그 다음 얘기하고 싶은 건 인권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기능이 완전히 상실되고 있다. 심지어 경찰은 인권위의 권고사항을 수용 않는 것을 성과로 자랑한다. 국민의 인권보다 사법권과 공권력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누가 아이를 낳겠나. 노동권은 말할 것도 없다. 노동권에 대한 일말의 고민도 않는 사회다. 사회를 바꾸겠다고 천명하고 그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으면 청년들의 마음은 닫힌다."

- 정치권에서 가장 먼저 제시해야 할 의제는 뭔가.

"평등이다. 성평등 뿐 아니라 격차 해소를 위한 평등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 기조에 방해되는 장애물이 있다면 가차 없이 쳐내겠다는 의지가 관철돼야 한다."

"출산·육아휴직자 승진현황 등 ESG 경영에 적용토록 법제화 해야"
 
'2024년 임신, 출산, 양육 지원사업' 현장 홍보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과 김영미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부위원장 등 보건복지부와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가 1월 5일 오후 서울역에서 '2024년 임신, 출산, 양육 지원사업' 대국민 현장 홍보를 하고 있다.
'2024년 임신, 출산, 양육 지원사업' 현장 홍보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과 김영미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부위원장 등 보건복지부와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가 1월 5일 오후 서울역에서 '2024년 임신, 출산, 양육 지원사업' 대국민 현장 홍보를 하고 있다.이정민
 
- 최근 저출생 극복 모델로 '일하는 방식'을 개혁한 일본을 언급하기도 한다.

"일본에선 여성들이 조용한 혁명을 일으켰다고 말한다. (사회가) 가부장적이고, (여성 일자리도) 파트타임만 주로 시키다보니 출산파업을 했다. 출산율이 너무 떨어지니 아베 총리가 2015년 노동시간을 줄이고 돌봄 필요에 따라 노동을 유연화해주겠다고 했다. 그 후 약간 출산율이 올랐는데 최근 기시다 총리가 '의회에서 예산을 못 준다고 하니 '일하는 방식' 변화를 못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일본 청년들이 해외 이민을 많이 간다는데 그 중 3분의 2가 청년 여성이라고 한다."

-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위해선 기업의 변화도 필요하다.

"현금 뿌리기보다 그 예산을 일하는 방식 변화를 위해 과감히 쓰면 어떨까. 기업 중에선 일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는데 안 하는 곳도 많다. 그걸 정부가 견인하는 것이다. 또 (노동방식 변화를) EGS 경영에 적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직원들이)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매년 얼마나 어떻게 썼는지 이사회에 보고하도록 하고, 출산·육아휴직자의 승진현황과 인사고과 불이익 여부, 관련 익명 설문조사 등을 법제화 하는 방안도 고민할 수 있다. 지금 저출생 정책은 계속 양치기 소년이 되고 있다. 제도의 실효성을 강화하겠다고 결심하고 본보기를 보여줘야 한다. 비정규직 직원의 육아휴직을 회사가 막는다면 큰 액수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왜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 걸까."

- 일·돌봄 방식을 확실히 바꾸기 위한 방안을 대책으로 내놔야 한다는 건가.

"우선 '계속 일할 수 있다'는 노동의 지속성, 즉 고용안정성을 보장해줘야 한다. 남성도 비정규직이 많고, 특히 여성은 출산과 육아휴직으로 불이익을 받거나 혹은 직장을 그만둔다. 다음으론 '독박육아' 해결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기업이고 그보다 더 큰 책임은 국가에 있다. 노동시간을 연장한다면 절대 출산율은 올라가지 않는다."

- 어떤 제도들이 구체적으로 필요할까.

"일하는 사람이 노동 시간과 장소를 선택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주 40시간 범위에서 아이가 아프거나 하면 조금 더 빨리 퇴근하는 식이다. 시간을 조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장소도 중요하다. 지난해 스웨덴에서 한 대기업 비서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주 이틀 재택근무를 한다고 하더라. 팬데믹 이후 서구사회에서는 그런 문화가 많이 늘었다. 하루나 이틀 재택할 수 있게 하면 모두가 그 제도를 사용한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아이가 아파도 소아과에 데리러 갈 수가 없다. 아이 낳고 싶겠나."

[인터뷰 후편] 380조 투입하고 0.78? "중년 남성 중심 국회 바꿔야"(https://omn.kr/27b8e)
#저출생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성평등 #22대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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