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 과일이 풍성하게 진열되어있지만 너무 비싼 가격에 선뜻 손이 가질 않는다.
심정화
장을 볼 때마다 처음에는 조금만 살 생각으로 마트에 준비되어 있는 장바구니를 들고 들어서지만, 이것저것 담다 보면 번번이 무거워져 이번에는 카트를 끌고 들어갔다. 설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다른 때에 비해 과일이 더욱 풍성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먼저 귤이 있는 쪽으로 갔다. 귤 상자가 평소보다 작다 싶더니 1.5kg짜리였다. 그런데 가격은 16990원. 그것도 세일 가격이라는데 개수를 세어보니 11개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귤 11개는 우리 네 식구가 한 번 먹기도 모자라는 양이다.
그 옆에 놓여있는 딸기는 한 팩(700g)에 15990원, 사과는 한 봉지(4~6개)에 16990원, 방울토마토는 한 팩(750g)에 10990원이었다. 죄다 빨간 글씨로 '할인'이라고 크게 쓰여 있었는데도 너무 비싼 가격에 입이 떡 벌어졌다. 조금이라도 싸게 보이기 위해서 끝자리를 '–990원'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았지만, 가격이 부담스러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결국 귤을 만지작거리다가 말고 대신에 8990원 하는 오렌지 한 봉지(7~9개)를 담았다. 평소 애국하는 마음으로 조금 비싸더라도 이왕이면 국산 과일을 사 먹으려고 하지만,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 앞에서 나라 걱정보다 우리 집 가계부 걱정이 먼저 앞섰다.
다음은 야채 코너로 갔다. 나박김치를 담그기 위해 우선 무 한 개를 집어 들고, 그다음으로 쪽파를 보았다.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오므려서 채 쥐어지지도 않을 양의 쪽파가 자그마치 5490원. 몇 번을 들었다 놨다 하다가 결국 사지 않았다.
결국 마트를 몇 바퀴 돌아 산 것이라고는 고작 계란 한 판에 돼지고기 한 팩, 라면, 두부와 콩나물 같은 반찬거리 몇 가지뿐으로 커다란 카트가 휑했다. 오랜만에 장 보는 데 따라와 엄마 찬스를 기대했던 딸아이도 비싼 물건 값에 한숨 쉬는 나를 보고는 차마 사달라는 말을 못하는 눈치였다.
작년쯤부터 장을 볼 때마다 계산된 금액의 앞자리가 바뀌었다 싶더니 별로 산 것도 없는데 6만 원을 훌쩍 넘어버렸다. 혹시나 싶어 영수증을 꼼꼼히 다시 훑어보았지만 계산은 정확했다. 그야말로 '장보기가 무섭다'는 말이 절실하게 와 닿았다.
이번 설은 돈보다 마음으로
"엄마, 오늘 저녁에 뭐 먹어?"
"김치찌개."
"또? 엄마 마트에 다녀왔다며?"
"그냥 먹어!"
"나 오랜만에 치킨 먹고 싶은데..."
현관문을 들어서는데 둘째가 장바구니에 시선을 꽂은 채로 물었다. 장을 봐왔어도 딱히 저녁 메뉴가 마땅치 않았는데, 입이 짧은 아이가 치킨을 먹고 싶다는 말에 못이기는 척 배달앱을 열었다.
매일 새로운 메뉴를 기대하는 식구들이지만 물가는 비싸고 마땅히 할 것도 없어 사흘이 멀다 하고 김치찌개만 끓였었다. 그나마 겨울에는 김장김치가 있으니 김치찌개라도 끓여서 밥상을 차릴 수 있어 다행이지만, 그것도 너무 자주 해주었더니 좀 질려 하는 것 같았다.
네 식구가 먹기에 치킨 한 마리로는 부족할 것 같아 2마리를 주문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이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치킨 한 마리 가격은 18000원. 치킨 2마리에 콜라 한 병, 거기에 배달료까지 계산하니 43500원이나 되었다. 치킨 한 번 먹는데 1인당 만 원이 넘게 들었다.
남편 월급만 빼놓고 모든 게 다 올랐다. 비싸지 않은 것이 없다. 옷은 안 사면 되고, 외식도 안 하면 그만이지만, 매일 먹어야 하는 찬거리들까지 죄다 오르니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도 한 달 생활비는 늘 빠듯하기만 하다. 돈을 벌지 못하는 대신 살림을 더 알뜰하게 하려고 아등바등 하는데도 치솟는 물가 앞에서는 그 노력이 헛되게 표시도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