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본 화살(왼쪽)과 죽시(오른쪽)
김경준
그래서 국궁에 입문하면 초심자들은 카본 활로 먼저 활쏘기를 익힌다. 그러다 나중에 본인이 흥미가 생기고, 재정적 여유도 뒷받침 되면 각궁으로 넘어가곤 한다. 대한궁도협회 규정에 따르면 5단 이상부터는 승단 심사시 각궁을 쓰도록 의무화했기에 승단 욕심이 있는 궁사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언젠가 각궁을 잡아야만 한다.
굳이 승단 욕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각궁으로 넘어가지 않고 평생 카본 활에만 머물러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이미 카본 활에 익숙해진 마당에 굳이 '고비용 저효율'의 각궁을 잡을 까닭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통을 사랑하는 사주의 소유자답게, 국궁에 입문한 직후부터 "언젠가 반드시 각궁을 잡겠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 아무리 카본 활이 저렴하고 편하다 하더라도, 전통 방식으로 만들었고 선조들의 지혜가 집약된 우리의 전통 각궁을 잡아야만 '진짜배기' 전통활쏘기를 한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두 눈 질끈 감고 주문한 첫 각궁... "미루다 보면 결국 못해요"
감사하게도 각궁과의 인연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2022년 여름 전통활쏘기를 공부하는 한 모임에 참여하게 되면서부터였다. 모임원들은 나만 빼고 전부 각궁을 쓰고 있었다. 옆에서 각궁 쏘는 모습을 보면서 그게 부럽기도 하고, 나만 없으니 살짝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다. 카본 활보다 각궁이 훨씬 좋다고, 입이 마르도록 찬양하는 것을 들으면서 나도 얼른 각궁을 잡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럼에도 계속 망설였던 것은 '비용' 때문이었다. 장인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일일이 만드는 각궁은 가격이 70만 원대로, 기껏해봐야 20만 원대인 카본 활에 비해 훨씬 비싸다. 화살은 또 어떻고. 각궁에만 쓰는 죽시는 한 발에 4만 원 가까이 되는데, 이는 카본 화살에 비하면 무려 4배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2022년 기준).
아마 이런 만만찮은 비용 탓에, 사람들이 호기심을 느껴도 쉬이 각궁에 입문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한다. 더군다나 그때 당시 나는 일정한 수입도 없는 백수 신분이었기에 지금 당장 각궁을 잡는 건 더더욱 사치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취직을 하고 목돈이 좀 생기면, 그때 각궁을 잡아야겠다고 스스로를 달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활쏘기 모임을 함께 하는 접장님께서 그런 내게 한 말씀 툭 던지셨다.
"미루고 미루다보면, 결국 늙어 죽을 때까지 못 해요."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간과 비용 등 이런 저런 핑계로 미루고 미루다 결국 실천하지 못했던 버킷리스트들이 생각났다. 결국 두 눈 질끈 감고 각궁을 주문했다. 그때 마침 학술회의에서 발표하고 받은 원고료 80만 원이 통장에 들어온 직후였는데, 이 피 같은 돈 역시 화살값으로 몽땅 날아갔다.
그렇게 2023년 여름, 생애 첫 각궁을 손에 쥐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