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김장속을 만들고 아이들이 버무리던 우리집 김장날
최혜선
고등학생 딸아이가 방학에 자율학습을 하러 매일 학교에 간다. 급식이 제공되는 덕분에 편하게 지내온 엄마가 매일 도시락을 싸려면 힘들겠다 싶었는지 아이는 엄마의 짐을 덜어주겠다며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밥은 소금간을 조금 해서 참기름을 둘러주세요. 반찬은 볶음김치 하나면 돼요."
그날부터 방학 한 달 동안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집에 있던 김치로 볶음김치를 해서 도시락에 넣어줬다. 이제 물리지 않냐고 물어도 볶음김치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고, '이제 좀 지겨운가?' 생각이 들어도 막상 먹으면 매일 맛있다고 했다.
그렇게 항상 할머니의 김장김치로 볶아주다가 장례식을 치르면서 남은 김치로 이틀쯤 도시락을 싸줬더니 이건 그 맛이 아니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음식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라 그 김치를 다 먹은 후 다시 집에 있던 김장김치로 볶음김치를 해줬더니 이 맛이라고 엄지척을 날려줬다.
이게 우리집 김치맛이라고 느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아이만의 기준에는 그 아이의 17년간의 삶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삶에 매년 티나지 않게 반복되었던 할머니의 김장양념이 있었다. 어머님이 가시고 나니 공기처럼 그 자리에 있어서 배워야겠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내가 미처 배워두지 못했구나 싶어 후회가 된다.
이제는 내가 새로 그 시간을 쌓아가야 할 차례가 온 것을 느낀다. 음식맛으로는 어머님의 빈자리를 메우지 못하겠지만 명절에 가족들끼리 모여 어머님을 기억하며 왁자지껄하게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마음을 써보려 한다.
훗날 우리 아이들이 명절의 추억을 떠올릴 때 명절과 스트레스라는 말이 어떻게 연관단어가 되는지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우뚱할 만큼. 어머님이 계시던 시절의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8
읽고 쓰고 만드는 삶을 지향합니다.
https://brunch.co.kr/@swordni
공유하기
시어머니 없는 첫 명절, 19년차 며느리의 다짐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