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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장소를 따로 찍은 사진작가 아버지와 아들

[입춘굿 맞이 제주 여행 1편] 용담동 '다끈개' 포구

등록 2024.02.08 09:25수정 2024.02.12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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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춘 전날에 그린 제주 다끈개 포구 전경. 풍랑이 일고 있고 먹구름이 가득하다.
입춘 전날에 그린 제주 다끈개 포구 전경. 풍랑이 일고 있고 먹구름이 가득하다.오창환

지난 3일 아침, 제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제주도에서는 해마다 입춘굿을 크게 하는데 구경도 하고 취재도 할 겸 제주여행을 계획했다. 작년 연말에 전국의 탈꾼들이 연합해서 탈춤 공연을 하면서 만난 제주도 춤꾼들이 꼭 한번 제주에 오라고 했으니 심심치는 않을 것 같았다.

체류하는 3일 내내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걱정이 되긴 하지만 예정된 일정을 바꿀 수는 없었다. 아침부터 세차게 내리던 비가 제주공항에서 도착할 때쯤에는 어느 정도 잦아들었다. 첫 번째 갈 곳은 공항 북쪽 해변에 있는 용담포구다.


공항에서 버스로 가면 30분이면 가고 걸어서 가면 40~50분 걸린다. 난 당연히 걷는 쪽을 택했다. 이번 여행은 스케치 여행이니 급할 것도 없고 바쁠 일도 없다. 과정이 목적인 여행이다.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나그네라고나 할까.

용담포구의 옛 이름은 '다끈개'라 하는데 제주도 포구들은 갯가에 살짝 만을 이루는 곳에 있기도 하고, 드물게는 건천(乾川) 하류에 위치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곳은 해안선이 전체적으로 완만하여 포구를 만들만한 '개'가 없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정으로 갯가의 바위를 쪼아 '닦아' 지금의 포구를 만들었다. 그래서 이 포구를 '다끈개'라 하였고 그 동네의 이름을 다끄네라 하게 된 것이다. 다끄네동네는 제주공항 확장공사로 지금은 철거되어 버렸지만, 다끈개 포구는 지금도 여전히 구실을 한다(큰바다영 제공 - 고광민 선생의 포구 이야기 참조).  

내가 용담 포구로 간 이유는 사진작가이자 대학선배인 고경대 작가가 추천해 준 곳이기 때문이다. 고경대 작가의 부친이신 고영일(1926-2009) 선생님은 제주일보 전신인 제주신보에 기자로 입사하셔서 1945년부터 1961년까지 근무하시다가 5‧16 군사쿠데타 후 신문사를 떠났다.

그 후 선생은 제주카메라클럽을 창설하고 제남신문과  '월간 제주'에서 일하셨다. 무엇보다도 당신은 사진작가로서 사랑하는 제주를 수만 장의 사진으로 남기셨다. 기록으로 보나 예술로 보나 엄청난 작업이다.


고경대 작가는 고영일 작가가 찍은 1960-1970년대 제주 사진에 나오는 곳을 찾아가 같은 프레임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찍은 사진으로 2015년 서울 갤러리 브레송에서 첫 사진전 <부전자전父傳子展>을 열었다.

고 작가님은 KBS 제주의 '탐나는 제주' 프로그램에서 <사진 속 제주 다시보기>를 진행하는데 고영일 작가님이 찍은 사진과 자신이 찍은 사진을 현재와 비교하여 소개 하신다.
 
 용담동 다끈개. 1970년대 사진. 고영일 작가의 작품이다.  오른쪽 위로 도대불이 보인다.
용담동 다끈개. 1970년대 사진. 고영일 작가의 작품이다. 오른쪽 위로 도대불이 보인다.고영일
 
 
 고경대 작가의 2015년 작품. 지금 보다 접안 시설이 더 많다.
고경대 작가의 2015년 작품. 지금 보다 접안 시설이 더 많다. 고경대

용담포구에 도착해서 두 고 작가님들이 사진을 찍은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이리저리 둘러봤다. 고영일 작가의 사진 프레임을 찾아보았던 고경대 작가도 이렇게 했을 것 같다. '여기다' 하는 곳을 거의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사진 오른쪽 멀리 보이는, 둥그렇게 쌓인 돌무덤 같은 것은 제주에만 유일하게 남아있는 옛 등대 '도대불'이다.


고영일 작가의 사진에  있는 포구는 돌로 만들어진 반면 고경대 작가 사진에는 형태는 그대로이지만 콘크리트로 축조되어 있다. 다만 포구 안쪽 부두가 철거되어 그곳에 배가 정박되어 있다. 아마도 포구 내부가 좁아서 확장 공사를 한 것 같다. 그림을 그리려 자리를 폈지만 비가 너무 쏟아져서 옆에 있는 카페로 자리를 옮겨서 그림을 마무리했다. 

그림을 마치고 입춘굿이 열리는 관덕정으로 향했다. 해안가 도로를 천천히 걸어서 이동했는데 비가 점점 많이 쏟아지고 바람도 많이 불고 우산이 뒤집어진다. 그러나 구름 끼고 우울한 날씨에 홀로 걸으면서 드는 센티멘털한, 이런 느낌이 너무 좋다. 나의 입에서는 저절로의 노래가 흥얼흥얼 흘러나왔는데, 그 노래는 이장희의 '비의 나그네'. 

옛날 이야기에는 나그네가 단골로 나오는데 무슨 연유인지 갈길이 바빴던 것 같다. 안 되겠다 싶으면 미리 숙소를 구해야 하는데 꼭 무리해서 가다가 밤 늦게 그만 길을 잃고 만다. 그리고 인적 드문 곳에서 멀리 보이는 불빛을 발견한다. 하룻밤을 청하러 문을 두드렸을 때 예쁜 여인이 나타나서 누추하지만 하룻밤 자고 가라고 하는데 그녀를 따라가면서 사달이 나는 거 아닌가.

나는 숙소도 미리 정해두었고 밤늦게 돌아다닐 일도 없으니 걱정 없다. 용두암을 지나 해변 도로를 걷는데 '서자복'이 있다는 안내판을 봤다. 재작년 제주에 왔을 때 동자복 그림도 그리고 기사도 썼다. 여기 서자복이 있다니. 서자복을 보러 계단을 올랐다(관련기사 : 공항에서 시작하는 여행 스케치 1순위는? https://omn.kr/1ypp0).

- 입춘굿 맞이 제주 여행 2편으로 이어집니다.
#탐라국입춘굿 #용담포구 #다끈개 #고영일 #고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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