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로 완결된 <티처스> 시즌1을 보는 데 딱 열흘이 걸렸다.
채널A
뭐니뭐니해도 최악의 실수는 딸아이에게 <티처스>에 대해 말했다는 것이다. 늘 친구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이기에 나는 아이가 내 말을 들어줄 거라 착각했다.
"C야. <티처스>라는 프로가 있는데 이런이런 내용이거든? 정말 엄마가 공부하라는 뜻이 아니고, 도움 되는 게 많이 나오더라고. 한번 봐봐. 그냥 프로그램 자체가 재밌어"
"그래요? 유튜브에서 보긴 했는데. 몇 화가 재밌어요? 엄마가 추천해주세요."
처음에는 호감이 있던 아이는, 내 말 속에 숨어 있는 뜻(공부해라. 정신 차려라)을 알아차린 것일까. 한 회를 다 보지도 않고,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며 더 이상 보지 않겠단다.
'네가 안 보겠다면, 내가 얘기해주면 되지, 뭐!'라는 쓸 데 없는 투지에 불탄 나는 틈만 나면 '이번에 티처스에 나온 애는...'으로 시작하는 잔소리를 시전했고, 결국 아이에게서 최후의 통첩이 떨어졌다.
"엄마. 이제 앞으로 <티처스> 얘기 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 거니까요."
아. 아이가 안 보겠다고 했을 때, 그때 멈췄어야 하는데. 엄마들은 입을 닫아야 할 때는 늘 한 박자 늦게 알아버린다.
엄마 체력을 올려준 <티처스>
열정은 끓어오르는데 얘기할 데도 없고, <티처스> 덕분에 알게 된 (얕은) 지식들도 많은데 이걸 어쩌지... 중학교에 올라가는 둘째 영어 단어 공부를 시켜? 아니면 이제 4학년이 되는 막둥이를? 오늘도 핸드폰 게임 아니면 포켓몬 카드 놀이에 열중하는 두 아이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그냥 고개를 저어버린다.
<티처스> 덕분에 얻은 성과도 분명히 있지만 <티처스> 때문에 잃은 것이 있다면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눈빛이었다. 핸드폰만 붙잡고 있다 싶다가도 베개 싸움을 하는 순수한 아이들이고, 영어 공부는 안 해도 소설책을 읽으며 문장 하나하나에 감탄하는 아이다. 예쁜 구석이 많은 이 아이들을 자꾸 세상의 잣대로만 보려 했다.
유튜브에서 <티처스> 몇 번 검색했다고, 이제는 온갖 관련 동영상들을 추천해준다. 개떡 같은 소신마저도 지키며 살아가기 참 어려운 세상이다. <티처스> 덕분에 한번 '씨게(세게)' 흔들렸다.
나는 아직 우리 아이들을 믿기로 했다. 아이들은 지금 아이들의 속도대로 잘 자라고 있을 거라고.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을 가르쳐주는 엄마가 되겠다고.
그나저나 이제 러닝머신할 때 뭘 봐야 하나? 한 시간짜리 재밌는 영상이 뭐가 있지? <티처스>가 아이들 성적은 책임져주지 못했지만, 내 체력 하나 챙겨준 것만큼은 확실하다. 기록이 그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