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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자복을 품은 용화사, 마당이 예쁩니다

[입춘굿 맞이 제주 여행 3편] 서자복과 용화사

등록 2024.02.12 16:00수정 2024.02.1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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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사 마당 한 가운데 있는 배롱나무가 멋지다. 참새들에게 먹이를 주는 보살님도 그려넣었다. ⓒ 오창환

 
지난 3일 입춘 전날 용담동 다끈개 포구를 스케치하고 관덕정으로 가기 위해 해변도로를 걸었다. 비가 많이 왔다. 용두암과 용연을 지나 동네로 들어가니 '서자복' 안내판이 보인다. 재작년 제주에 왔을 때 동자복 그림도 그리고 기사도 썼다. 여기 서자복이 있다니! 서자복을 보러 계단을 올랐다.

제주의 복신미륵(福神彌勒)은 사람의 수명과 행복을 관장하는 미륵 한 쌍으로  제주성을 중심으로 서쪽에 있는 것은 서자복 동쪽에 있는 것은 동자복이라고 하며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서자복(西資福)은 용화사 경내에 있으며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입상으로 몸에는 예복을 걸치고 두 손을 가슴에 가볍게 얹었으며, 소맷자락은 선명하지만 옷주름은 없다. 벙거지 모자를 썼는데, 이 모자는 후대에 만든 것이다.

서자복은 아들은 얻는데 효험이 있다고 하며, 제주성을 수호하는 기능도 하였고, 어업의 안전과 풍어, 가족의 행운을 빌면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해마다 재를 올리고 있다. (용화사 경내의 안내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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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자복 모습. 장난스러운 표정 때문에 친근하게 느껴진다. ⓒ 오창환

 
돌미륵의 소박한 조각과 빙긋 웃는 표정이 정겹다. 동자복과는 디테일이 조금 다르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비슷하다. 자복미륵은 제주 돌하르방의 원조라고 보기도 하고, 육지의 마을 입구에 놓았던 돌장승의 원형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서자복 옆에는 소박한 대웅전이 있고 그 옆으로 스님들이 사용하는 요사채가 있다. 마당과 정원이 아담하고 예뻐서 여염집 같다. 보살님 한 분이 나오셔서 참새들 먹으라고 쌀알을 뿌려주신다. 유난히 새가 많아서 절집이라 그런가 했더니 이런 이유가 있었다.

보살님과 인사를 몇 마디 나눴더니 잠시 들어와서 스님과 차 한잔하고 가라고 하신다. 주지 스님께서는 믹스커피와 크림빵을 내오셨다.

몸도 녹이고 목도 축이고 주지 스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케치를 하고 싶었지만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다음을 기약하고 관덕정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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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사 전경. 오른쪽 건물이 대웅전이고 앞으로 보이는 건물이 요사채다. ⓒ 오창환

 
다음날은 입춘굿을 구경했고 그다음 날 아침에 다시 용화사로 갔다. 용화사 터에는 원래 해륜사(海輪寺, 바다 수레바퀴라는 뜻)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절이 있었다. 그런데 1702년 문제적 인물 이형상 목사(지금으로는 도지사)가 부임한다. 그는 유능하고 청빈한 인물이었으며, <탐라순력도>라는 보물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타협을 모르는 유교 원칙주의자였다.


그가 쓴 '병와선생이공행장'(1733)에 따르면 "목사로 부임하여 불과 6개월여 만에 제주도의 신당 129개소를 불태우고 해륜사와 만수사를 헐어 관가의 건물을 짓도록 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에 따라 해륜사는 폐사되고 서자복 미륵만이 오랜 세월 해륜사의 옛 터를 지키고 서 있었다. 1939년 해륜사 터에 새롭게 사찰을 건립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용화사는 한국불교 태고종 사찰이고 제주도에서는 태고종 교세가 조계종과 맞먹을 만큼 크고 태고종단에서도 중요하게 여기는 지역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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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에도 동백나무에도 참새때가 가득하다. ⓒ 오창환

 
다시 찾은 용화사에는 아무도 안 계셔서 주인 없는 절집 마당에 앉아 스케치북을 펼쳤다. 잔디 마당에 있는 배롱나무(목백일홍)를 중심으로 정원과 요사채를 그렸다. 첫날 와서 봐 두었던, 보살님이 새들에 먹이 주는 모습도 그려 넣었다. 주민들 몇 분이 무심히 지나가셨고 참새 지저귀는 소리가 요란하다.

흔히 오래된 시골집을 수리하는 경우 서까래 관리가 힘드니까 추녀 아래를 그냥 막아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 대웅전도 추녀 아래를 막아놨고 지붕도 개량 양철 지붕으로 되어 있다. 양철 지붕을 걷어내고 기와를 올리고 서까래 단청을 복원하면 절충적 형식을 가진 제주 근대건축물로 문화적 가치가 높을 것 같다. 게다가 이 절은 제주의 돌로 지은 돌법당이다. 

그림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제주 할머니들의 미술관을 보러 선흘마을로 갔으나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밥만 먹고 돌아왔다. 그래도 식당 사장님 시어머니이신 고순자 할머니 작품이 식당에 전시되어 있어서 아쉽지만 그것만 보고 왔다.

혼자 떠난 제주 스케치 여행. 비가 와서 힘들었지만 좋은 추억거리도 많다. 나그네처럼 혼자 여행하면 심심할 때도 있지만, 절에서도 버스 정류장에서도 식당에서도 말을 거는 사람도 많고 더 잘 대해 주시는 것 같다. 여럿이 함께 가는 스케치 여행도 좋지만 혼자 여행도 이렇게 좋다.

(입춘굿 맞이 제주 여행 끝)
#서자복 #용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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