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라만상이 들어있는 학생의 글을 읽다 보면 내가 이 귀한 마음들을 이렇게 쉽게 알아도 되나? 종종 벅차고 조급해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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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어시간에 쓴 글로 <오마이뉴스>에 기고하여 청소년 시민기자가 된 제자, 권대환 학생의 기사 '내 보호자는 할머니, 할아버지입니다'는 이런 문장으로 끝난다.
"이 이야기를 마음속에 담고 있을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표현할 기회가 생겨서 더 좋다."
속 깊은 대환이의 글에 답이 있다. 표현하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 국어 교사인 나는 표현하도록 판을 벌여주어야 한다는 것.
표현하는 것으로 충분하니까
교실에서 나는 자주 회복탄력성을 말한다. 세상 누구나 힘들고 좌절한다. 그런 순간이 살면서 꼭 온다. 그럴 때 쓰러져 울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했다가 가능하면 쉬어라. 쉬고 버텨라. 내 힘으로 무언가 할 수 없는 힘듦이라면 그냥 버티다 다시 꼭 일어나렴.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일상을 살아주렴.
힘이 조금 남는다면 글을 썼으면 좋겠다. 잘 쓰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기만 했으면 좋겠다. 내가 읽어줄게. 너의 글을 읽는 독자를 만들어 줄게. 교실의 글쓰기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확장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우리 학생들이 용기 내어, 마음을 다해 표현한 글에 독자를 만들어 주고 싶었던 것.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내 이야기에 공감해 주고 응원의 댓글을 달아주는 벅참, 그것으로 툭툭 털고 일어날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중학생들에게 글쓰기를 시키고 시민기자에 도전해 보자고 말을 뗄 땐 좀 더 가볍게 접근한다. "얘들아! 선생님 원고료 볼래? 이거 봐라. 엄청 많지? 이거 다 <오마이뉴스>에 글 써서 받은 원고료다. 너희들도 받을 수 있어. 한 번 써볼까?" 돈으로 꼬셔 놓고 글쓰기를 시작한다.
모든 학생이 교실에서 글을 쓴다. 완성한 글은 희망자에 한해 나와 일대일로 기사로 고쳐쓰기를 진행한다. 혹은 학생이 희망하진 않았지만 좋은 이야기다 싶으면 내가 학생에게 기사로 내보내자고 설득하기도 한다.
돈으로 꼬셨지만 돈 때문은 아닌
그렇게 첫 청소년 시민기자가 된 학생은 말을 더듬는 학생이었다. 주말에 조부모님 댁에 가서 농사를 돕는 이야기를 썼다. 핸드폰과 한 몸인 청소년은 농사가 얼마나 힘든지 깨달았고, 농삿일로 몸이 고되면 핸드폰 할 체력도 없다는 사실을 기사로 재미나게 썼다. 나는 녀석이 말을 더듬는 걸로 위축되지 않았으면 했다. 말이 조금 어려우면 글로 하면 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첫 시민기자의 글이 오마이뉴스 메인에 나가고 녀석과 반 친구들, 옆 반 친구들, 담임선생님과 부모님, 일가친척들까지 한마음으로 기사에 댓글을 달고 '좋은 기사 원고료'로 응원을 해주었다. 학생은 받은 원고료로 반에 햄버거와 음료수를 돌리며 모두의 즐거운 이벤트로 마무리 지었다.
두 번째 시민기자는 지금 근무하는 강원도 두메의 작은 학교에서 나왔다. 학교 앞 도로에 인도 없이 차도만 있는 실태를 알리며 조속히 인도가 설치되어 곧 입학하는 동생과 함께 안전하게 등교하기를 바란다는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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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사는 중학생인데요, 등굣길이 이모양입니다 https://omn.kr/218e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