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사는 단지 밥벌이로만 생각한다면 견디기 힘든 직업이다
유신준
호랑가시 나무는 이파리가 호랑이 발톱을 닮았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잎은 가죽처럼 두툼한데다 가시는 단단하고 날카롭다. 생긴 모습대로 귀신을 쫒는 나무로 알려져 정원수 구색 맞추는 용도로 많이 심는다. 맹아력도 출중해 가리코미(토피어리)로 쉽게 원하는 모양을 만들 수 있다.
가리코미는 정원수를 인공적인 모양으로 깎아 다듬는 기법이다. 말하자면 일본식 토피어리라 할까. 바닥에 크고 작은 구형을 만들거나 긴 사각 조형물을 만들어 정원을 다채롭게 꾸민다. 가지마다 밤톨을 올려 놓은 듯 깎아 다듬는 다마치라시(구슬뿌리기)는 일본정원의 대표적 가리코미 기법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가리코미는 14세기 무로마치 시대부터 시행되던 정원수 손질 방법이다. 조선 초기 사절단으로 10개월간 일본에 체류한 송희경의 노송당 일본행록에도 가리코미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서방사 정원의 나무는 위쪽을 잘라 단을 만들었다'고 적었다. 16세기 아즈치 모모야마시대에 전정가위가 만들어지고 17세기 에도시대에는 본격적인 가리코미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물론 요즘 정원손질도 가리코미가 주류를 이룬다. 일본 정원사(庭園史)는 가리코미 역사다.
오늘 손질 예정인 정원은 보기 드물게 넓은 곳이다. 정문을 들어서면 좌우에 묵은 호랑가시 나무가 제일 먼저 눈에 띈다. 그 뒤쪽으로 동백나무와 금목서가 적당한 간격을 두고 자태를 뽐내고 있다. 집 둘레에도 다양한 나무들로 구색을 갖춰 놓았다. 어느 집이든 메인 정원은 대부분 건물 앞 부분에 둔다. 거실과 시선이 연결되는 중요한 위치이기 때문이다.
메인 정원은 한 눈에도 전통적인 일본정원 스타일이다. 맨 앞에 자연석을 빙둘러 세워서 마당과 경계를 만들었고 그 위로 듬성듬성 철쭉을 깔았다. 뒷쪽으로 약방의 감초같은 마키나무를 군데군데 심고 가리코미로 다듬어 일본정원 특유의 단정한 분위기를 냈다. 가리코미는 개개의 디자인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구성도 의식하면서 진행해야한다. 정원사들은 예술적 감각도 중요하다.
마키나무 뒷쪽으로 담장 근처에는 가이즈카 향나무들이 우람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겨울에도 변치않는 상록수라서 이곳 사람들이 좋아한다. 향나무 사이를 먼나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먼나무는 쌍간으로 키웠는데 흉고직경이 1미터도 넘어 보인다. 그동안 여러 정원들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큰 나무들은 드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