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베이비페어에서 참관객들이 출산 육아 용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둘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아이가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살아야지 했던 생각이 무색하게도 막상 낳아 키워 본 아이는 정말이지 예뻤다. 태어나자마자 나를 홀린 한 인간에게 푹 빠져 지냈던 4년의 시간이었다(자기 전에 엄마가 제일 예뻐, 라고 말해주는 아이에게 누군들 빠지지 않겠는가!). 누군가의 시작과 성장을 매일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실로 형언하기 어려운 축복임을 그제야 알았다. 다시 겪어도 새롭고 기쁨일 것 같은 과정이었다. 게다가 아이를 생각한다면 혼자보다는 둘이 좋을 것 같아 공원이나 어린이집에서 마주치는 형제, 남매들을 유심히 보던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내 인생에 둘째는 없을 것이다. 아이 둘을 '홀로' 키울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남편이 있고, 비상시에 아이를 부탁해볼 수 있는 '엄마 찬스'도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아이를 돌보는 일상 중간 중간 혼자라고 느낀다.
아이와 함께 생긴 부부 관계의 틈
육아는 자연스럽게 나의 몫이 되었다. 나는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었던 반면, 남편의 일은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았고 퇴근시간도 일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육아 불균형이 시작되더니 휴직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육아 4년 차에 들어서서는 아이의 식사 준비, 아이에게 필요한 물품을 확인하고 구매하기, 주말에 아이와 놀아주기, 아이옷 세탁, 교육, 아이의 목욕, 잠자리 준비, 병원 동행, 아이의 어린이집과 관련된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남편이 참여할 때는 내가 부재할 때뿐이다. 나와 남편이 모두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경우, 다른 누군가에게 부탁하고 일정을 조율해서 보육의 공백이 없도록 만들어 내야 하는 것도 나의 몫이었다. 누군가 돌보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고 생각해왔는데 돌봄노동은 빠르게 나의 정체성이 되어 버렸다.
싱글맘들에게 실례인 줄 알면서도 이 정도면 싱글맘 같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알게 모르게 남편에 대한 불만과 피해의식이 쌓여가고 마음 속 남편의 지분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남편 따위'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아이를 돌보는 일상을 문제없이 수행하는 것 만으로도 에너지가 부족했다. 아이에게는 꿀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말하다가도 남편에게는 짜증이 한껏 묻은 어투가 나왔다. 남편은 남편대로 서운해하고 나의 신경질에 같이 신경이 날카로워져 갔다. 나름대로 '가장의 무게'를 느끼며 잘 살아보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일 텐데 집에서 하찮은 대우를 받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렇지만 이해한다고 할 말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아니 조선시대에는 대가족이란 울타리라도 있었지 지금은 완전한 독박육아에 임금노동까지. 해도 해도 너무 한 거 아니냔 말이다. 무언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우리는 신기할 정도로 오랜 시간 갈등이나 권태 없이 지내오던 커플이었다. 서로가 신기해할 정도였다. 참 잘 만났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이가 육아로 인해 뒤집어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그런데 주위를 살펴보면 이건 우리 집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21세기에도 육아는 여전히 여성의 몫
A는 대기업에서 임원 비서를 지냈다. 안정적인 일자리였고 회사 내에서 인정도 받고 있었다. 결혼하면서 직장을 그만두어 현재는 '전업맘'으로 아이와 가사를 돌보며 지내고 있다. 외부적인 경제활동 없이 지내는 게 혹시 불편할 때는 없느냐는 나의 질문에 A는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데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아이의 옷을 구매하는 것으로 푼다고 답했다.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B는 육아휴직 이후 직장에 복귀한 다음에도 육아를 전담하고 있다. 남편은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은 생각보다 즐겁지만 그렇다고 힘이 들지 않는 건 아니다. 남편이 "그래도 너는 육아하는 게 즐겁지 않느냐"라고 말할 때 정말 열이 받는다고 한다.
C와 남편은 수입이나 일에 대한 욕심이 비슷했다. 첫째 아이까지는 사람을 고용하며 육아와 직장을 병행했지만 둘째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했다. 남편은 새벽에 출근하여 밤에 귀가하는 직종에 종사 중이라 그나마 휴직이 가능한 사람이 C였다. 차분하고 침착한 성향의 C는 요즘 아이들을 향해 고함을 지르는 게 일상이다.
D는 전공을 바꾸어 뒤늦게 시작한 대학원을 다니며 아이를 낳았고, 현재는 석사를 마친 후 전업으로 아이를 돌보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싶지만 한번씩 아이가 크게 아프거나 하는 일이 생기면 계획에 차질이 생겨 지지부진한 상태다. 계획대로 커리어를 쌓고 있는 동료들을 볼 때면 자신의 처지가 답답하고 조급한 마음이 든다.
시대가 변하여 남성들이 이전보다 가사와 육아에 많이 참여하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내 주위의 여성들은 육아휴직을 하거나 일을 그만두는 형식으로 육아를 전담하고 있다. 직장에 다니는 경우에도 여성이 육아의 총괄 디렉터 역할을 맡기 일쑤다. 이들은 모두 다른 가정환경과 학력, 성향, 삶의 지향 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박육아의 고충과 남편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지점에서 약속이나 한 듯 만나고 있었다. 이들의 배우자들은 과중하거나 불규칙한 바깥 노동을 이유로 가사나 육아에 거의 참여하고 있지 않거나 못했다.
삶은 육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