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공사기간을 보내실 컨테이너가 자리를 잡았다. 집 철거를 앞두고, 엄마가 앞으로 몇 달을 보내셔야 하는 컨테이너를 가져다 놓았다. 엄마의 밭은 가을걷이를 끝냈고, 쓸쓸한 풍경 위로 무지개가 환하게 떠 올랐다.
이창희
"누나, 엄마는 겨울을 그냥 고향에서 지내고 싶으시대. 주변의 친척 집이나 우리 집에 오시는 것도, 다 불편하시다네."
"언니, 공사는 왜 시작을 안 하는 거야? 제대로 계약을 한 것은 맞아? 철거가 끝나면 바로 공사를 시작해야지, 왜 또 시간을 끌고 있는 거냐고."
겨울이 오고 있다. 11월이 되면서 공기는 급하게 차가워지고 있었고, 엄마가 지내시기로 한 컨테이너 주택은 쉽게 차가워졌다. 결국, 제일 하고 싶지 않았던 '겨울 공사'를 하게 되었지만, 어떻게든 엄마가 고생하시는 것은 피하고 싶었는데, 엄마가 원하는 삶의 방식이 있으니 태어나서 자라온 고향을 떠나고 싶지도 않고, 주변의 친척이나 고향마을의 지인들 도움도 받지 않으시겠다고 한다.
여든의 노모를 한겨울에 차가운 컨테이너에서 지내게 한다며, 전국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동생들은 계속 걱정을 뱉어낸다. 제일 큰 잘못은 이런 상황을 피하지 못한 나에게 있겠지만, 나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불만이었고, 애당초 들을 수밖에 없는 비난이었다.
그래도, 억울했다. 설상가상으로 11월 말에 엄마의 생일이 다가오니, 친척들을 모시고 팔순잔치를 하자는 말을 꺼냈더니 돌아온 엄마의 대답이 날카롭다.
"팔순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잔치를 한다는 거야? 난 싫다. 내년에 집 지어지면, 집들이나 해!"
내게 엄마의 팔순은 중요했다. 아빠는 칠순 잔치도 못 치르고 돌아가셨고, 부모님의 환갑에도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했다. 그러니, 더더욱 친척들을 모시고 엄마의 여든 번째 생일잔치는 제대로 해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지역의 식당에 잔치를 예약하겠다며 몇 분이나 모셔야 할지 물어보는 중 돌아온 대답이었다.
아팠다. 동생들의 눈초리는 따가웠지만 참을 수 있었는데, 엄마의 솔직한 말씀은 쉽게 넘길 수가 없었다. 냉정하게 돌아보자, 지금 우리 집 상황은 정말 최악이다. 엄마는 지내실 집도 없는 상태로 추운 겨울을 컨테이너에서 보내셔야 하는데, 아직 새 집의 공사는 시작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늦어지는 공사... 가시방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