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야구소녀> 스틸컷
싸이더스
첫 장면. 교장실 밖에 야구부 선수들이 손을 비비며 일렬로 서 있다. 겨울인 듯하다. 여자 선수가 눈에 띈다. 교장실 안의 교장 선생님, 야구팀 감독님, 프로구단 관계자는 얘기를 다 나누었는지 악수를 하고 밖으로 나온다. 모두 자기 이름이 호명되길 기다리는 선수들. 그러나 호명된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지명되지 못한 고3 선수 중 몇몇은 "에이, 야구 그만둬야지"라고 말하며 자리를 뜬다.
장면이 바뀐다. 여자선수가 집에 도착했다. 선수의 이름은 주수인(이주영 분)이다. 방바닥에 '천재 야구소녀 주수인'이란 제목의 예전 기사들이 뒹굴고 있다. 선수의 아빠는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 중이고 엄마가 식당에서 일하며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다. 엄마의 말투로 보아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된 것 같다.
주수인은 계속 야구를 하고 싶다. 트라이아웃(선수 선발 테스트)에 원서를 내지만 접수 직원은 여자인 주수인에게 관심이 없다. 선수의 엄마는 "안 되는 거면 빨리 포기해. 그거 부끄러운 거 아니야"라고 말하고 새로 온 코치는 "프로선수라도 되게? 너 같은 애는 어차피 안 돼"라고 한다.
그러나 주수인은 프로팀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새벽에 나와 운동장을 뛰고 재학생과 같이 야구 연습을 한다. 코끝이 찡하더니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새해가 된 후 올해도 전처럼 공모전 응모를 계속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안 되는 걸 내 욕심에 하고 있는 것 같기도, 열정이 식은 것 같기도 하다.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뭔가를 붙잡고 있는 게 현명한 것일까. 아니면 포기하는 게 현명한 것일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꽉 차 있는데 이 영화를 보게 됐다.
"안 되는 거면 빨리 포기해. 그거 부끄러운 거 아니야."
"너 같은 애는 어차피 안 돼."
주수인의 엄마가 주수인에게 하는 말이, 코치가 주수인에게 하는 말이 꼭 나에게 하는 것 같다. 그 말을 듣는데 자꾸 눈물이 났다. 그러니까, 나는 계속 글을 쓰고 싶은가 보다.
이 영화에는 꿈을 포기하지 못하는 세 명과 이미 꿈을 포기한 한 명이 나온다. 꿈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은 몇 년째 공인중개사 시험을 보고 있는 주수인의 아빠, 가수가 되려고 끊임없이 오디션을 보는 주수인의 친구, 그리고 지명을 받지 못했음에도 계속 야구를 하는 주수인이다.
꿈을 포기한 사람은 프로팀에 가지 못하고 고등학교의 코치로 부임한 야구부 코치다. 사실 꿈을 포기하지 않는 것도, 오래 쫓던 꿈을 포기하는 것도 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영화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모든 사람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야구부 코치는 프로에 입단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럽다. 그러나 선수를 가르치는 일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일이라는 말을 주변 사람으로부터 듣는다. 이후 코치는 주수인의 훈련을 돕는다. 과연 그는 명코치였다.
"단점은 절대 보완되지 않아. 단점을 보완하려면 장점을 키워야 해."
코치는 주수인의 구속을 강하게 하는 훈련 대신 볼 끝이 매서운 장점을 키워주는 훈련을 한다. 희망찬 상황과 절망스런 상황이 반복된다. 가장 역할을 부인에게 맡기고 시험공부를 하던 아빠는 시험에서 떨어지자 대리운전을 시작한다. 춤을 연습해 가수 오디션을 보던 친구는 오디션에서 떨어지자 자신에게 익숙한 기타를 잡는다.
이런저런 사건이 많았지만, 주수인은 프로구단에 영입된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주수인의 어머니에게 프로구단 단장은 말한다.
"그런데 어머니, 주수인 선수 지금부터가 더 힘들어질 겁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해서 어떤 목표를 성취한 후에, 그곳이 다시 시작점 됨을 여러 번 경험했다. 대학도 그랬고 취업도 그랬다. 삶은 성취한 지점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우리의 노력도 또 다른 무대로 옮겨질 뿐이다. 영화는 주수인이 유니폼을 입고 구장을 바라보는 것으로 끝난다. 성취의 기쁨으로 활짝 웃는 표정이 아니라 뭔가를 주시하는 표정으로.
중요한 건 태도